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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린도전서강해6 진정한 패배 진정한 승리 
본문 고린도전서 6:1~11(신약268) 
날짜 2018-06-03 
설교자 전용표 목사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놀아준다고 공을 가지고 미니축구를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공을 잡았는데 아빠가 악착같이 해서 공을 빼앗아 골대에 차 넣었습니다. 일 대 영! 아빠 공격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공을 빼앗기 위해 다가오자 아빠는 전 속력으로 달려서 아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골대에 차 넣었습니다. 이 대 영! 아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합니다. 오랜만에 아들이 공을 잡고 슛을 날립니다. 그러자 아빠는 다이빙캐치를 해가며 공을 쳐냈습니다. 다시 아빠가 공을 잡고 슛을 합니다. 있는 힘을 다 실어서 강슛을 날립니다. 골! 최종스코어 십 대 영! 아빠의 완벽한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아들은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아빠 맞습니까? 아빠가 됐으면 어린 아들에게 져주는 맛이 있어야지요? 이런 일이 프로축구팀 간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박지성선수가 한창 활약하고 있을 당시 박지성선수의 팀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서울팀과 친선경기를 했습니다. 당시 세계최고였던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3골을 달아서 넣어서 3대 0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맨체스터선수들은 열심히는 뛰는데 골은 넣지 않았습니다. 표 나지 않게 봐주기를 하는 듯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대회라면 4대 0, 5대 0, 계속 넣었겠지만 친선경기에서 그렇게 넣는 것은 초청해 준 상대팀 선수들과 또 서울팀을 응원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 했던가 봅니다. 그러다가 맨체스터 선수 하나가 네 번째 골을 넣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동료들 누구도 축하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분위기 파악도 못한다 이거지요. 우리나라 방문을 마친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팀이 다음으로 방문한 나라는 중국인데 중국의 프로팀과 친선경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중국 프로팀들 실력이 아시아 최강에 속합니다만 당시 중국은 아직 프로축구 실력이 우리보다 한창 떨어지던 시절이라 맨체스터 팀에서는 유명선수 두 세 명만 뛰게 하고 나머지는 후보 선수들로 구성해서 시합을 했습니다. 그런데 6대 0으로 이겼습니다. 오랜만에 선발로 뛰게 되니 후보 선수들이 물불을 안 가리고 실력발휘를 하는 바람에 그래 됐습니다.

 세계 최강팀이 세계 3류 4류 팀과의 친선시합에서 상대팀 팬들의 마음을 짓밟아 버리는 잔인한 점수를 올린 것은 진짜 승리가 아니라 진짜 패배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놀아준다면서 있는 힘을 다해 이겨버리는 아빠는 성숙한 어른은 아닙니다. 여러분, 조절되지 않는 힘은 힘이 아닙니다. 조절되는 힘만이 진짜 힘입니다. 가진 힘을 조절할 줄 알아야 진정한 강자이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해야 하고 교회가 이러해야 합니다.

 

 

 

1. 주님의 심정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은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또 하나의 문제는 교인들끼리 재판이 붙은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 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1절)

 

 같은 교회 성도들 간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다툼이라는 단어가 물질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으로 봐서는 돈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다툼은 심각한 수준까지 깊어졌고 결국 사회법정에 고소를 해서 세상법정에서 재판이 붙게 되었습니다. ‘불의한 자들’이란 윤리도덕적으로 불의하다는 말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이란 뜻으로 세상법정을 의미합니다. 성도 앞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구태여 세상 법정까지 갔단 말인가? 바울이 기가 차서 하는 말입니다. 요즘도 소송을 하려고 변호사를 고용하면 기본 40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로마시대에는 변호사비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법정소송까지 불사하는 이 두 교인은 엄청난 돈을 써가면서 끝까지 가보자는 심사로 싸우는 겁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교회가 충분히 이렇게 되고도 남습니다.

 그토록 죽을 고비 넘겨가며 개척해 놓은 교회가 겨우 몇 년 만에 온갖 문제로 만신창이가 되고 또 교인 간에 재판까지 벌어졌단 말을 듣고 바울이 입을 여는데, 1~7절까지 보면 온통 질문공세입니다.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차라리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사람이 너무 화가 나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너무 비통한 심정이 되면 막 따지며 추궁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바울이 지금 그렇습니다. 이 바울의 마음이 곧 고린도교회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당신의 몸을 찢어놓는 이런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면서 너무 어이가 없으시고 너무 마음이 아프시고 너무 비통하신 겁니다. 자식 간에 싸울 때 부모생각하면 그거 못 싸웁니다. 부모마음 헤아리는 자식은 싸우지도 않고요. 우리가 무슨 일이 있을 때에 우선,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2. 교회지도자가 기울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교회 안에 이런 문제 하나 제대로 처리할 만한 지도자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놀라워합니다. 5, 6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5,6)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한다고 그럽니다. 노골적인 면박입니다. 뉘앙스를 살려보면 이런 말입니다. ‘그래, 평소에 그렇게 아는 체 하고, 지혜로운 체 하고, 영적인 체 하더니,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까지 간단 말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잘 난 체 하는 성도들이었습니까? 그런데 이런 다툼이 있을 때 결정 내려줄 권위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없는 이유는 첫째로 성도들에게 원인이 있어요. 네 개의 당파로 나눠서 싸우니까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어, 저거 저쪽 사람한테 유리하게 말하고 우리한테 불리하게 말하네!’ 이런 식으로 들어요. 그러니 설사 공정하게 말을 하더라도 곡해해서 듣습니다. 그러니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둘째로는 교회지도자들에게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본문에 명확히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고린도교회 지도자들은 자꾸 시비(是非)를 가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을 보면 고린도교회 지도자들이 그런 식으로 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바울이 다툼 이야기를 듣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가려줍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도대체가 그게 뭐 하는 짓이냐? 믿는 사람들끼리, 그것도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끼리 싸워서 고발이나 하고? 불신자들 앞에 가서 고개 조아리고 재판이나 받고? 그렇게까지 해서 이긴들 그게 이기는 것이냐? 세상 사람들이 이겼다고 박수를 쳐 주겠느냐? ‘예수 믿는 자들이, 그것도 같은 교회 다닌다는 자들이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하면서 욕하지 않겠느냐? 그런 식으로 교회의 영광 하나님 영광 다 가려가며 이겨본들 그게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지난주 살펴봤던 8장에서 ‘우상제물을 먹어도 되나 먹으면 안 되나’ 논쟁이 벌어졌을 때도 바울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초지종을 상세히 들었겠지만 옳은 사람, 그른 사람 가려주지 않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더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

 지도자는 이러해야 합니다. 미숙한 지도자는 자꾸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가, 시비를 가려주려고 듭니다. 잘 한 쪽 입장에서 잘 못한 쪽을 꾸짖으려 듭니다. 그러다보면 기웁니다. 그러나 정말 성숙한 지도자는 누가 잘 했고 누가 잘못했는가를 가려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에 앞서 예수의 피를 나눠 가진 믿음의 형제자매가 다투고, 분열하고, 한 치도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를 정죄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게 더 본질적인 것 아닙니까?

 내가 옳은데 목사님이 내 편 들어주지 않는다, 장로님이 내 편 들어주지 않는다, 서운해 하지 마세요. 목사와 장로가 맞장구 쳐주고 편들어 주면 마음이야 좋겠지만 머지않아 교회 깨집니다. 제가 사랑하는 한 교회가 최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장립집사로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핵심이 이러했습니다. 원로목사님은 성도들이 무슨 말을 해도 쉽게 누가 옳으니 그르니 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판단하는 말을 쉽게 하지 않으세요. 맞장구 치고 편들어주는 일은 일체 없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분명한 신앙의 큰 명분에 입각해서 가르치고 훈계 하시지 실리를 따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런 원칙으로 목회를 하시니까 그 분이 목회하시는 36년 동안 교회에 소소한 불협화음은 있어도 큰 문제는 터지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10년 전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는데 이 분은 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이 사람 이 말 하면 바로 호응하고, 저 사람 저 말 하면 또 바로 호응합니다. 이리 기울고 저리 기웁니다. 옳고 그름을 너무 빨리 판단하고 말합니다. 그러한 것이 쌓이고 쌓이더니 올 해 크게 터지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울처럼 해야 합니다. 시비 잘 가리는 좁은 마음이면 곤란합니다. 시비 가리다보면 기울어집니다. 쉽게 호응하고 맞장구쳐서도 안 됩니다. 신앙의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능선을 거느리고 우두커니 버티고 서 있는 지리산 천왕봉을 닮아야 해야 합니다.

 

 

 

3. 결국 십자가의 원리로 가야합니다

 

 죽기 살기로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차라리 당하고 속아주라고 외칩니다. 7, 8절을 봅니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7,8)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차라리 손해보고 차라리 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왜 손해보지 못하고 져주지 못합니까? 이유야 많지요. 분명히 내가 억울한 게 맞으니까! 이건 다른 문제도 아니고 진리의 문제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신앙적으로 맞으니까! 그런데 진짜 이유는 하나님 영광을 위할 마음이 없어서입니다. 아니, 하나님 영광 위해 살 능력이 없어서입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져주고 십자가 지신 주님의 가르침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38~42)

 

 오른손잡이가 내 오른편 뺨을 치려면 손등으로 때려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인간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상대가 나를 인간취급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해 주지 않습니다. 완전 무시합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하하 호호 하다가도 나만 가면 싸늘해집니다. 그런데도 내가 먼저 인사할 필요 있습니까? 간도 쓸개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하세요? 왼편도 돌려 대라! 하십니다.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하십니다. 악한 의도로 내 것 빼앗아 가려고 소송을 걸어온 것입니다. 재산 노리고 접근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하고 맞소송하지 말고 어떻게 하라고요? 차라리 겉옷까지 줘버려라!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합니다. 정말 싫은 사람이 자꾸 일 부탁하고 일 시킵니다. 목구멍까지 욕이 올라오는데, 주님은 그래 가지고는 네가 하나님 자녀 될 수 없다 합니다. 해주라 하십니다. 아니 부탁하고 시킨 것보다 더 해주라 하십니다.

 목사님, 말씀은 다 맞지요, 그런데 어디 세상 나가 보세요. 직장생활 해 보세요. 말씀처럼 그렇게 되는 줄 아십니까? 믿는 사람은 맨날 억울하게 당하고만 살아야 됩니까? 예수 믿는 사람도 억울하게 돈 떼인 것 있으면 소송도 걸 수 있고, 누가 자꾸 건드리면 한 번 따끔하게 본 떼를 보여줘서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할 수도 있지요, 안 그렇습니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가고 싶을 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예수 믿는 내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당했으면 당연히 갚아줄 수 있고 갚아줘야 한다는 세상 사람들의 이 생각이 곧 가인의 본성, 타락한 본성입니다.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대개의 경우 싸우면 어떤 사람이 이깁니까? 힘 센 사람요? 독한 사람이 이깁니다. 모질고 악한 사람이 이깁니다. 별의 별 야비한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마음이 선량한 사람은 그런 방법을 쓰질 못합니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벌렁벌렁해서 못 씁니다. 그래서 당해요. 그런데 독하고 악한 사람 만나 자꾸 맞서기 시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선량했던 사람도 덩달아서 독해집니다. 얼굴도 거칠어지고 말도 거칠어집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 사람보다 마음이 더 지옥이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 지시면서 부어주신 성령을 다 소멸해 버리고 성화의 길을 저버리는 것이니 얼마나 더 큰 손해입니까? 결국 이겨도 지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원수 갚는다고 평생을 칼 갈고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하느냐? 그래, 당연히 자존심 상하겠지? 그런데 그런다고 네가 죽는 것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이 아니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네가 그 몇 푼 잃어버렸다고 해서 당장에 집이 쫄딱 망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네가 그 문제에서 진다고 네가 영원히 지는 것이냐? 너는 이미 영원한 승리를 약속받은 사람이 아니야? 죽기 살기로 이기려 들지 말고 그 정도로 끝내라! 네가 움켜쥐고 있다고 축복이 네 손에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너의 축복은 내 손에 있는 것이다.’

 

 

 

맺는 말

 

 여러분,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 앞에 내가 죽을 수 있는 능력, 내가 져 줄 수있는능력, 이 정도에서 그칠 수 있는 능력을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져줌으로써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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