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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스더강해8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본문 에스더 7:1~10(구약756) 
날짜 2018-04-15 
설교자 전용표 목사 

 

   제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생생히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때 제가 구원의 확신문제로 정말 많이 고민하고 방황도 할 때였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기 위해 매일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야간학습 마치고 10시 반이 넘어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은 밤이었지만 오는 버스마다 꽤 복잡했습니다. 그때 버스가 한 대 멈췄는데 저쪽에서 어떤 비범하게 보이는 아저씨가 오시더니만 버스 쪽으로 가서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가리키면서 “너는 천국, 너는 지옥, 너는 지옥, 너는 천국, .....” 그러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버스가 떠나고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합니다. “너는 지옥, 너는 지옥, 너는 천국, ....” 제 앞에도 왔습니다. 와서는 “너는 지옥!” 그러는 겁니다. 그러더니만 저 쪽으로 갑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아저씨를 따라 가서 물었습니다. “아저씨 누구세요?” 평생 잊히지 않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나? 하나님이다!” 그러더니 무단횡단해서 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난 충격적인 기억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 말고도 우리나라에 살아있는 하나님이 마흔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가급적이면 안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역시 살아계시는구나’라고 깨닫고 인정하게 될 때가 언제입니까? 기대이상의 복을 받았을 때, 기도응답을 받았을 때, 예배나 찬양으로 감동을 받았을 때, 뭐 그럴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라고 인정하고 고백할 때는 언제일까요? 시편 5811에서는 의인이 결국 승리하고 악인이 정당한 벌을 받을 때 세상 사람들이 ‘과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라고 고백한다고 했습니다. 이삭이나 요셉을 보면 세상이 아무리 핍박하고 고난이 닥쳐와도 하나님의 자녀가 허물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 세상 사람들이 ‘너의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너는 하나님이 복주시는 사람이구나’라고 고백한다고 나옵니다. 마태복음 516에서는 믿는 자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때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도구로 삼으셔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는 일을 해나가시길 바라고 축복합니다.

 

 

 

1. 정확한 분별력을 주십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두 번째 잔치에 갑니다. 첫 번째 잔치 때는 하만이 한껏 기분이 좋고 우쭐한 모습이었지만 두 번째 잔치 때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루 종일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모르드개 태우고 마부노릇 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제대로 대책도 마련하기 전에 끌려오다시피 했습니다. 경황없고 초조합니다.

 왕은 또 다시 왕후 에스더에게 물어봅니다.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나라의 절반이라도 시행하겠노라.’ 이때 에스더가 드디어 입을 열어 말을 합니다. 3, 4절입니다.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라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하니 (3,4)

 

 ‘저를 살려주시고 제 민족을 살려주십시오. 우리가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펄쩍 뜁니다. 도대체 누가 왕후를 죽이려 하고 누가 왕후의 동족들을 진멸한단 말이요? 감히 그런 일을 계획한 자가 누구요? 그 자가 어디에 있소? 그때 에스더가 말합니다.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입니다.’ 폭탄선언입니다. 이 폭탄선언에 하만은 간이 철렁 내려앉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떨기 시작합니다. 왕은 화가 나서 왕궁 후원으로 나가버립니다. 하만의 꼬임에 넘어가 자칫 사랑하는 아내를 죽일 뻔 한 걸 생각하면 아찔하면서도 화가 치밉니다. 거기다가 전에 하만이 유다인은 백해무익한 족속이니 죽여야 된다며 고소했었는데(3:8,9), 모르드개나 왕후를 보면 유다인이야 말로 유익하기 그지없는 족속이었던 겁니다. 자신이 하만에게 철저히 속았고, 하만은 자기를 이용해 먹은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분노가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만은 굉장한 세력을 가진 자이기에 어떻게 처리할까 머리가 복잡한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에스더가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확실히 섰기 때문에 하만을 고소하였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토록 신임하던 하만을 모르드개 마부노릇 시키는 것을 보고는 왕의 마음이 하만에게서 돌아섰다 것을 간파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승부수를 던진 것입니다. 이것이 분별력(分別力)입니다. 때를 알고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때가 아닌데 밀어붙이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고, 때가 되었는데 좌우로 치우치다가 놓치기도 합니다. 대충 의지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에게 이 분별력을 주십니다(3:5,6). 잠언 36에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셨는데,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곧 분별력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왜 힘드냐? 불확실성(不確實性), 다시 말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불안하고 힘든 것입니다. 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잠재워보려고 사람들 만나서 이리저리 물어보고 조금이라도 확실한 뭔가를 건져보려고 애를 쓰는 것 아닙니까? 또 책임져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붙드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가 그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면 손대지 말아야할 방법까지 손대는 것 아닙니까? 그 결과 더 꼬이고 더 힘들어집니다.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십니다. 에스더가 한 번 기도하고 만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절박하게 마음을 다 쏟아가며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결과로 받은 분별력으로 정확한 때를 붙들어 수풀을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2. 악인이 뿌린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토록 자랑거리였던 자리가 하만에게는 사형선고 받는 자리가 됩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마음껏 호령하던 악인 하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졸지에 무너뜨리시는지 한 번 봅시다. 왕이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것을 보자 하만은 왕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 것을 직감합니다. 바로 어제까지는 에스더가 절박했고 모르드개가 절박했는데 이제는 하만이 절박합니다. 하만은 문제의 키를 잡고 있는 에스더 앞에 철퍼덕 엎어져 살려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때마침 그때 후원에 나갔던 왕이 다시 들어와서 그 장면을 봅니다. 8절입니다.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8)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에 엎어져 빌었던 건데 이게 공교롭게도 결정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지역의 걸상은 지금 우리가 쓰는 걸상이 아니고 베개를 옆구리에 끼고 옆으로 길게 드러눕도록 만들어진 침상 같은 걸상입니다. 거기에 에스더가 옆으로 누워 있는데 하만이 그 위에 엎어진 겁니다. 모양새가 좀 이상야릇합니다. 안 그래도 열 받아 있던 아하수에로 왕이 그 장면을 보자 그냥 폭발을 해버린 거예요. “저 자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호위병들이 하만의 얼굴을 보자기로 싸버렸습니다. 옛날에는 죄수의 얼굴을 보자기나 대나무 삿갓 같은 것으로 덮어 씌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고 하나님께서 적극 개입하시면 하만도 권불십년(權不十年)으로 막을 내리고 제아무리 철옹성 여리고도 무너지고야 맙니다. 하나님 앞에 버텨낼 것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정리하실 때 보면 뿌린 대로 되돌려 주십니다. 먼저 하만에게 해명(解明)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유다인을 다 진멸하기로 조서를 내렸을 때에 유다인들은 정당한 재판도 받지 못했습니다. 억울함을 어디 호소할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돌려주셨습니다. 두 번째, 하만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점입니다. 지난 번 하만은 무지막지한 권력으로 유다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힘을 막 과시하는 사람은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얼마나 힘들어 하며 무서워 떠는지,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그 공포감을 하만에게 그대로 돌려주셨습니다. 세 번째, 아무도 편들어 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만이 권세를 가지고 유다인들을 학살하려 들 때 감히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편들어 주지 않을 때 그 버려진 심정, 그 고통은 정말 잔인한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만에게 되돌려 주십니다. 오히려 그동안 말 못하고 눈치 보고 있던 자들이 나서서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장대 세운 것을 고발해 줍니다. 결국 하만은 그 장대에 달려 허무하게 죽고 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는 악인이 주도권을 잡고 의인은 억울함으로 울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어? 있다면 세상이 이래?’ 이런 말이 난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정리하실 때가 되면 뒤집힐 것 같지 않던 것이 뒤집힙니다.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철옹성이 깨집니다. 악인의 위세가 꺾이고 속이며 행하던 악한 일들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그때 사람들의 말이 달라집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구나!’(58:11) 그러므로 여러분, 현재가 다가 아닙니다. 현재의 억울함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힘을 내야 합니다.

 

 

 

3. 누적의 결과로 함께 합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깨달아야 할 것은 이런 일이 단 번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만은 나라의 2인자입니다. 아마 거대한 정치세력의 수장(首長)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한순간의 감정으로 처단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누적(累積)의 결과입니다. 처음에 아하수에로와 하만의 관계는 정치적 파트너로서 철떡 궁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왕과 하만의 관계에 서서히 균열이 발생합니다. 왕과 하만 둘 간에 사이가 벌어지더니만 결국에는 결별을 하게 되었고 하만을 처단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매달리는 기도의 누적! 우직하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순종과 인내의 누적! 결국 쌓이고 쌓여서 된 것이지 갑작스런 대박이 아니란 말입니다. 왜 그런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너무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요행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신앙이 판을 칩니다. 좀 정상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생각지 않으려 합니다. 좀 상식적으로 이해할만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닌 것같이 느낍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이야말로 개인의 신앙뿐 아니라 한국기독교의 수준을 하락시킵니다.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상섭리입니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역사는 누적의 결과입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의 연단의 기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고 그 누적의 결과로 약속하신 것을 얻었습니다. 노아는 심판의 경고를 듣고 120년 간 비난을 이겨가며 방주를 짓는 순종의 누적으로 심판을 면하고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렇지 않습니까? 바울의 선교열매는 요행의 결과가 아닌 성실한 노력의 결과가 아니던가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빛과 소금의 삶을 누적시키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끊임없이 누적시켜갈 때 세상은 충격을 받고 무너질 것은 무너집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그럽니다. ‘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투병 생활하는 아내를 둔 어떤 남자집사님이 쓰신 믿음의 글입니다. 아내는 10년째 입원중입니다. 하루에 치료를 4~5번 받습니다. 아내의 고되고 아내 곁을 지키는 남편도 힘이 듭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보면서 발견한 아내의 은사 한 가지가 있습니다. 잘 웃는 것입니다. 거닐다가 만난 작은 들꽃을 보고도 웃고, TV의 토크쇼를 보다가도 웃고, 저 사람이 투병생활 하는 사람이 맞나싶을 정도로 웃는다는 것입니다. 괴롭다고 24시간 내내 1초도 쉬지 않는 고통은 없고, 아무리 좋은 일도 24시간 내도록 웃고 즐거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한 병을 만났지만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좋아지고 있는 이유가 잘 웃는 데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분은 아내의 모습을 통해 오히려 인생을 깨닫고 신앙을 알아간다고 합니다. 이분의 기도제목이 ‘아내처럼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며, 어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믿음을 주십시오!’입니다. 그분은 투병생활 중에서도 감사하고 웃는 아내를 통해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치 않으면 거두리라(6:9) 하셨습니다. 압력이 있고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데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 기뻐하시는 방법을 놓지 않고 주님 기뻐하시는 길을 끝까지 가기란 어렵습니다. 피곤한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주님 보시기에 선한 순종의 삶, 진리의 삶, 타협 없는 삶, 섬김의 삶을 누적시켜 나가십시오. 단번에 일어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그 누적의 힘으로 여러분 앞에 놓여 있던 골짜기도 메워지고 높은 산도 낮아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맺는 말

 

 여러분 인생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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