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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스더강해7 새벽은 어떻게 오는가 
본문 에스더 6:1-14(구약755) 
날짜 2018-04-08 
설교자 전용표 목사 

 

   아침에 가족들이 사이좋게 인사를 나누고 출근하면 일의 능률이 20퍼센트 오르고 사고율은 50퍼센트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서로 다투고 불편한 마음으로 출근하면 일의 능률이 20퍼센트 떨어지고 사고율이 50퍼센트 높아진다고 합니다. 독일의 저명한 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랍니다. 여러분 아침에 출근할 때, 학교 갈 때 서로 얼굴 붉히는 일 만들지 마시고 가족들이 기분 좋게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런 작은 것도 결과와 보상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주를 위하여 전토와 집과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라고 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백배나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그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뭘 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진리의 길과 헌신에 보상이 따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생과 역사에 있어 새벽이 뭔가?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악인이 존귀(尊貴)를 누리며 의인이 굴욕(屈辱)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새벽을 여시면 악인은 굴욕을 당하고 의인은 존귀하게 여김 받는 일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시간, 새벽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빨리 죽이고 싶어서 왕의 허락을 받으러 한 밤 중에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 밤에 결정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왕이 역대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의 고발사건을 발견하고는 모르드개에게 상을 내리기로 한 것입니다. 더 높아지기를 바랐던 하만은 오히려 자신이 죽이려던 모르드개의 마부(馬夫)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깊은 밤이 가고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1. 악인에게는 굴욕을

 

 새벽은 전혀 뜻하지 않은 우연한 사건을 통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쪽에서 길을 여십니다. 모르드개에게 새벽은 아하수에로의 불면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날이 언제입니까?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장대를 세우고 왕의 허락을 받으러 오는 바로 그날입니다. 아무리 잠을 청하려 해도 정신이 말똥말똥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신경이 쓰여서입니다. 도대체 왕비 에스더가 무슨 이유 때문에 부부지간 일에 하만을 자꾸 끼우는 것이며, 그 둘 사이에 진짜 뭔가 있는 건 아닌지? 어째서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는데 그토록 뜸을 들이는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잠이 안 옵니다. 잠이 오지 않은 차에 역대일기를 읽다가 모르드개가 자기를 암살하려던 음모를 고발했던 사건을 알고는 깜짝 놀랍니다. ‘아하,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여봐라, 모르드개에게 무슨 존귀와 관작을 베풀었느냐?”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어허, 어찌 그런 일이?’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에게 어떤 상을 줄지 고민하던 중 때마침 밖에 와 있던 하만에게 안을 내도록 합니다. 그런데 왕은 ‘모르드개가 이러 이러한 일을 하였는데 어떤 상을 내리면 되겠느냐’고 묻지 않고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하만에 대해 이미 의심의 눈초리를 갖기 시작한 아하수에로가 하만을 한 번 떠보려는 의도도 있어 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러자 하만이 속으로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신이 나서 의견을 말합니다. 7~9절 읽습니다.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7~9)

 

 ‘왕이시여 몇 단계 진급과 아울러 포상금으로 10억 하사 하소서’ 이래야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왕의 옷도 왕관도 왕이 타는 말도 다 벗겨서 도성행차를 시켜주십시오! 좀 이상한 포상입니다. 속내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자기가 뭐가 되고 싶다는 말입니까? 왕이 되고 싶다는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하만은 속으로 이 나라의 실제 왕은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습니까? 옥쇄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사실 나라의 실질적 왕은 자신이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다고도 보입니다.

 교만이 이런 것입니다. 교만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환각제입니다. 가장 돋보이는 자리는 내 자리라야 하고 칭찬은 내가 들어야지 다른 사람 칭찬 듣는 것 들으면 소화불량 걸립니다. 교만이라는 환각제에 빠지면 절대 정도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잠언 256에 보면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왕 앞에서 높은 체하는 것은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교만에 사로잡히니까 사리분별이 없어요. 높은 체 막 합니다. ‘아하, 저 놈 봐라! 저런 속셈이 있었구나!’ 아하수에로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생각 안 했겠습니까? 안 그래도 하만을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이젠 의심이 확신 단계로 접어드는 겁니다. 하만은 결국 속에 품은 교만과 욕심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입니다.

 왕이 명령을 내립니다. 너는 네가 한 말대로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속히 행하되 하나도 빠짐없이 하라! 대충격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왕관을 씌우고 말에 태워서 그 앞에서 말을 끌고 다니면서 모르드개를 높이는 말을 목청껏 외치면서 그 넓은 도성을 한 바퀴 돕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습니다. 하만이 심히 번뇌하면서 머리를 감싸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그러자 지혜 있는 친구들이 그러지요, 모르드개가 유다인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했으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반드시 그 앞에 엎드러질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술을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의 심부름꾼들이 와서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하만을 급히 데리고 가버립니다. 무슨 대책 세울 겨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하만을 최후 심판대로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고 일하시면 악인에게 여유를 주시지 않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 위에서 회오리칠 것이라’(30:23)

 하나님은 악인이 존귀를 누리도록 절대로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악인의 성공은 한때 무성한 풀과 같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한 치의 오차 없이 악인을 낮추십니다. 그때가 되면 높이 올라갔을수록 더 심하게 떨어집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새벽입니다.

 

 

 

2. 의인에게는 존귀를

 

 모르드개를 보십시오. 난데없이 자기를 그토록 미워하고 죽이려들던 하만이 오더니만 왕의 옷을 입혀주고 왕관을 씌워주고 왕의 말을 태우더니만 도성행렬을 합니다. 하만은 그 앞에서 마부가 되어서 목이 터지라고 외치는데, 자기를 존귀한 사람이라고 외쳐댑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영광입니까?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床)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모르드개가 시편 23편이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자, 보십시오. 이것이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인가를 보십시오. 지금 하만은 모르드개 죽이는 일 허락받으러 왔습니다. 모르드개의 목숨은 영락없이 사냥꾼의 올무에 갇힌 새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니까 안 되겠거든요? 지나가시면서 올무의 문을 슬쩍 열어버리십니다. 벗어나도록! ‘오, 올무가 끊어졌네 해방되었네 우리 도움은 주의 이름!’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존귀로 관을 씌워주십니다. 왕의 옷을 입고 왕의 말을 타고 왕관을 쓰고 도성전체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도성의 모든 사람들이 모르드개를 다 보았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높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때가 되니까 이렇게 높여주십니다. 여러분 내가 높이려고 하면 그 모양새가 우스꽝스럽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묵묵히 주님 뜻 행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높여주십니다.

 또 보십시오. 모르드개가 정직히 행하면서 공을 세웠던 것, 잊혔습니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만약 그때 보상받았다면 포상금 얼마 받고 끝났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 잊히게 하셨다가 결정적일 때 보상을 받게 하시는데, 생명을 건지도록 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선을 행할 때 알아주지 않는다고, 보상이 없다고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기억하셨다가 어떤 방편으로든 갚아 주십니다.

 제가 매주 예배 인도하러 가는 칠곡휴게소는 대신기업이라는 기업에 속해 있습니다. 대신기업을 창업하신 장로님은 집이 가난하여 일찍 돈 벌러 나갔는데, 대전의 한 금은방에서 세공기술자로 일을 했습니다. 금 세공하다 나오는 금가루를 다른 기술자들은 주머니에 쓱 닦아 넣어 가는데, 장로님은 그걸 다 모아서 주인에게 내놓습니다. 옆에서 싫어도 하고 어리석다고도 합니다. 나중에 장로님이 금은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있었고 전쟁 후 사람들이 갖고 있던 패물을 팔아서 식량을 장만하는데, 감정을 해보니 순금반지라고 샀는데 순금이 아닙니다.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한 집 반지나 목걸이는 정말 순금이 맞습니다. 장로님 금은방입니다. 소문이 나자 대전 사람들이 패물하러 장로님 집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렇게 사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며 거두리라’(6:9)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어리석다 하고 주변에서 압력도 넣고 해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사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억울하게 당해도 불의한 방법으로 맞대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사람, 기억하셨다가 반드시 존귀로 관을 씌워주십니다. 세상은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새벽입니다.

 

 

 

3. 밤의 정점을 찍으면 새벽이 온다

 

 여러분 우리는 모르드개와 하만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새벽을 열어 가시는 것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벽이 언제 오는 것 같습니까? 밤이 정점을 찍으면 새벽이 옵니다. 밤이 끝까지 가면 새벽이 옵니다. 밤이 정점을 찍는다는 것은 악인의 권세가 최고조(最高潮)가 되고 그 악행이 극악으로 치달을 때, 달리 말하자면 의인의 고난이 극도(極度)로 심해져서 이제 다 포기하고 싶고 그저 죽고 싶은 심정이 들 때입니다. 6절을 읽읍시다.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6)

 

 나 외에 누구리요? 이것이 교만의 정점이자, 악인의 정점입니다. 보세요. 하만이 얼마나 기고만장한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깁니다. 왕이 되려는 속셈까지 있습니다. 눈에 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럴수록 모르드개는 더 괴롭습니다. 악인이 갈수록 권세를 얻고, 갈수록 마음대로 하고, 막아서던 사람들 다 나가떨어지고 더 이상 브레이크 거는 사람도 없고 하면 절망스럽습니다. 하나님이 무심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것이 새벽이 오는 모습입니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고, 꽃이 화려하면 지는 법입니다. 끝까지 가면 끝이 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도 이것이 복이다 하고 주시지 않습니다. 고난이 모습으로 옵니다. 새벽을 주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극도로 심해지면 새벽이 옵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토록 변하지 않던 사람도 끝까지 가면 돌아옵니다.

 어제 병원심방을 갔다가 우리교우 옆 침대에 있는 모르는 분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자다가 뇌졸중이 와서 병원에 온 환자였습니다. 왼쪽 팔다리가 제대로 말을 안 듣고, 말이 조금 어눌합니다. 나이가 마흔 여섯밖에 안 되었습니다. 얼굴이 너무 어두웠습니다. 너무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심한 위장병으로 고생고생을 하다가 경우 진정이 좀 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오른쪽 다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여러 개의 철판을 집어넣고 핀을 박는 대수술을 받고 핀을 뽑아내는 수술을 받고 굳어진 관절을 꺾는 피눈물 나는 재활과정을 겨우 마쳤을 때 뇌졸중이 또 찾아온 것입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죽는 것이라 했습니다.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이제 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믿는 어머니 밑에서 주일학교를 다녔고, 커서도 어머니 곁에 있을 때는 주일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때는 참 마음이 편했다고 합니다. 설비일을 하면서 객지를 떠돌아다니면서 교회도 멀어지고 하나님도 멀어지면서 마음에 무거운 것이 가득 쌓이게 되면서 인생이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꽉 들어차자 몸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했습니다. 그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끌어안고 기도를 했습니다. 울면서 정말 간절히 기도하더군요. 제발 불쌍히 여겨달라고, 제발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다고... 다시 보자며 손을 잡아주고 왔습니다.

 

 

 

맺는 말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화려하면 집니다. 고통도 극도로 달하면 이제 새벽이 오는 소리입니다.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제 고집도 꺾이고 때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낮출 자를 낮추시고 높일 자를 높이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변화될 자를 변화시키시고 보상할 자를 보상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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