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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상수훈6 어디에다 집을 지을 것인가 
본문 마태복음 7:24-27 
날짜 2016-02-14 
설교자 전용표 목사 

 

 

히말라야 고산족들은 양을 사고 양의 키나 몸무게에 따라 값을 매기지 않고 양의 성질에 따라 값을 매깁니다. 양을 팔 사람과 살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파른 산비탈 중간지대까지 양을 몰고 가서 풀어놓습니다. 그러고는 양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지켜본 뒤 값을 흥정합니다. 양이 산비탈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풀을 뜯어먹으면 키가 작고 깡말랐더라도 값이 비싸지고, 산비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풀을 뜯어먹으면 양이 아무리 몸집이 크더라도 값이 떨어집니다.

살다 보면 좋지 않은 상황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아래쪽 풀이 다 말라 없어졌을 때, 편한 곳 찾아 다니는 것에만 익숙해진 양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지만 거친 환경에 익숙한 양은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무엇을 몸에 익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육신을 위하여 편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몸에 익히면 인생의 위기와 마지막 심판 날에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될 것이고, 힘들고 때로 어색해도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몸에 익히면 인생의 위기와 마지막 심판 날에 영원히 썩지 않을 좋은 것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신앙의 종류가 하늘과 차이로 갈라집니다. 목적을 복 받는 것에 두면 기복신앙이 됩니다. 기복이 목적이라면 굳이 주일마다 교회 와서 예배 드릴 필요 없고, 일 있을 때만 팔공산 갓바위 찾아서 절을 하든지 아니면 용하다는 처녀보살 찾아가서 부적 하나 받아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 됩니다. 신앙의 목적을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두면 명상종교가 됩니다. 요즘 주변에 ‘마음수련원’ 같은 명상센터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 곳 가서 전문적으로 명상을 배우면 마음 가라 앉히는 데는 더 큰 도움이 됩니다. 굳이 교회 와서 때로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면서 마음 고생할 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성화(聖化) 종교입니다. 변화의 종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심사(心事)가 변화되고 언행(言行)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되고 인간관계가 변화되고 인생이 변화되어 마침내 예수를 닮는 것이 성화입니다. 목적을 여기에 두고 신앙생활 해야 그 신앙이 성경적인 신앙이 됩니다.

 

 

 

집을 짓는 두 종류의 사람 : 자신에게 절망 하십시오!

 

 

오늘 산상설교의 최종결론을 살펴볼 차례인데, 산상설교를 마무리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듣고 행하라’,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실천하라’입니다.

대가는 길게 말하지 않습니다. 몇 마디 하지 않는데 그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의 대가(大家)이신 예수님은 ‘들었으면 가서 행하라’는 결론을 두 종류의 집 짓는 사람 이야기라는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시는데 그 속에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하십니다. 모래라고 하면 우리는 당장 해수욕장 모래사장이나 강변모래밭을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는가 의아해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모래는 ‘와디(Waddy)’라고 하는 계절천의 흙먼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졸졸졸’ 흐르는 것은 시냇물이라 그러고, ‘쫄쫄쫄’ 흐르면 도랑이라 하며, 마르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것은 강이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강을 일컫는 말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나하르(Nahar)’고 하나는 ‘와디(Waddy)’입니다. ‘나하르(Nahar)’는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강입니다. ‘와디(Waddy)’는 건기에는 바짝 말라버리는 계절천(건천)입니다. 물이 마르면 우리나라처럼 고운 금모래가 수북하게 쌓이는 것이 아니라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그 위에 흙먼지가 쌓입니다. 당장 보기에는 집짓기 좋습니다만 거기에 집을 지었다가는 몇 달 가지 않아 비 오는 우기가 되면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갑니다. 이스라엘은 집을 ‘텔’이라고 부르는 언덕 위에다가 짓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입니다. 자, 그렇다면 모래 위, 즉 와디 위에 집을 지은 사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청중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렇지, 어찌 와디 위에다가 집을 지어? 죽으려고 환장을 했지!’ 비웃었겠지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실컷 비웃다보니 자기도 말씀을 듣기는 자주 듣는데, 실천한 것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자기도 어떤 사람입니까?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쉽고 편하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안주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먼저는 이것을 깊이 깨달아야겠지요.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에서부터 참신앙은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 때문에 절망하는데, 진짜 절망해야할 대상은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사람 보고 절망하느냐? 지금까지 나를 바라본 것이 아니었단 말이냐? 너는 어찌하여 환경 보고 절망한단 말이냐? 지금까지 나를 세상을 다스리는 이로 믿었던 것이 아니었느냐? 너는 어찌하여 자신에 대해서는 절망하지 않느냐? 그토록 말씀을 들어도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자신에 대해, 너를 바라보는 나를 한없이 근심하게 하는 자신에 대해 정말 고민 하지 않고 사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구나? 자신에 대해 절망해 본 사람이라야 가난한 심령과 애통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견뎌낼 수 있을지 염려하십시오!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평화로울 때는 잘 모릅니다. 인생의 위기가 닥치면 그때 드러납니다. 주님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되라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나의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제 모교회 목사님은 2남 2녀를 두셨는데 첫째 아들이 27살 때 물에 빠진 사람 둘을 건져내고 파도에 휩쓸려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장례 치르고 바로 그 주일날 여전한 모습으로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오셨습니다. 그때 목사님 우시는 모습을 평생 처음 봤습니다. 눈물을 삼키시면서 감사를 하시더라고요.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라고 한 욥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말씀을 행하며 몸에 예수가 베여있는 사람의 진면목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치는 사람은 흉내조차 없는 영적내공 사람 인생을 견고히 세워갑니다.

인생의 위기의 순간 나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견고한 닻을 가지고 사십시오. 말씀을 행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분다’고 하셨는데, 궁극적으로는 내가 죽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를 의미합니다. 노아홍수 심판 때의 상황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그 인생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집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다고 당장 사고 나던가요? 병이 들던가요? 망하던가요? 당장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사람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서 들은 말씀대로 살지 않고, 그것이 쌓여서 아예 습관처럼 몸에 베여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아무리 교회 다닌다고 해도 마지막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이 능히 자기르 구원하겠느냐”(2:14,17)

 

이 말씀이 마지막 심판의 때를 의미한다는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심판이 임하지 않으니까 세상정욕과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추구하는 일에 흠뻑 빠져 삽니다. 이것이 영적인 잠이고, 이것이 마귀의 술책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말씀과 엇박자로 살게 합니다.

개혁을 외쳐야할 때는 현실도피적이거나 염세주의신앙으로 기울게 합니다. ‘세상 뭐 다 그렇고 그렇지! 뜯어고친다고 달라지겠어? 사람이 변하지 않는한 또 오염될 게 뻔한데! 괜히 튀지 말고 세상 둥글게 살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러다가 큰 일 나!’ 예! 둥글게 살아야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다 썩어 문들어지고, 교회가 세속주의에 온통 물들어 있다면 그때는 개혁을 외쳐야할 때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 때에도 둥글게 살라고 속삭입니다.

요즘은 주님 재림을 믿지 않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바라보며 주만 따라 가오리다!” 과거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런 노래를 눈물로 부르면서 재림을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속임수에 깊이 매수된 오늘날 성도들은 오로지 지금 복받고 더 잘 살게 되는 것이 최고입니다. 정말 재림신앙을 붙들어야할 때 현세기복주의로 기울게 하는 것이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반면 말씀은 우리를 세상과 엇박자로 살게 합니다. 세상이 고난을 저주라 말할 때, 고난이 축복이라 고백하게 만드십니다. 세상이 높아지고 성공하라 외칠 때, 낮아지고 섬기게 만드십니다.

 

말씀대로 사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넓은 문이 아닙니다.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고생이 있습니다. 손해보는 일이 있습니다. 때로 따돌림과 비난도 들어야 합니다. 언덕위는 온통 바위들입니다. 거기까지 건축자재를 옮기는 것은 평지인 와디에 집 짓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렵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고생해서 잘 지어놓은 집은 수백 년, 심지어 천년을 갑니다.

마귀는 자꾸 쉽게 살고, 쉽게 신앙생활 하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번만’ ‘오늘만’이라고 유혹해서 저 멀리까지 끌고 갑니다.

이번부터, 오늘부터, 이것부터, 작은 것부터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내 몸에 베입니다. 청년회 때 제가 속한 소그룹이 평일저녁에 모였는데, 교회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누님이 귤을 간식으로 사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넉넉한 형편들은 아니어서 모임에 간식을 사온다든지 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귤을 사 온 자초지종은 이러했습니다. 아침에 형제사랑에 관한 말씀묵상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그 말씀을 실천을 할까 고민하다가 귤을 사왔다는 겁니다. 그때 우리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지식적으로나 감상적으로 대하는 것이 익숙했지 실천으로 대하지는 않았거든요.

 

여러분, 작은 것부터 실천하십시오. 하루에 3장씩 성경을 읽으십시오. 피곤하고 고되어도 읽으십시오. 하루 5분이라도 개인기도시간을 가지십시오. 주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뭔가 하나라도 더 주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기로 결심하면 주님은 그 결심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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