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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스더강해5 기도와 익명의 하나님 
본문 에스더 5:1-8(구약754) 
날짜 2018-03-11 
설교자 전용표 목사 

 

   제가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어서 학교에서도 상을 타고 대회에 나가서도 상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이가 저보다 재능이 더 있어 보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예회를 한다 해서 그림을 그려갔습니다. 꽤 잘 그렸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아이 그림보다 못 그린 그림이 없었습니다. 다들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의 그림들을 출품했습니다. 알고 보니 미술 전공한 엄마가 그려준 그림, 미술학원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 미대 다니는 이모가 그려준 그림들이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인생은 부모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내가 사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는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을 다 지정해 주고 일일이 다 지시하는 부모도 있는데 그거 좋은 것 아닙니다. 그렇게 자라면 아이는 ‘결정장애’를 갖게 됩니다. 작은 것 하나 결정하는 것도 힘들어 하고 능동적으로 결정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스스로 하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때로 드러나지 않고 감지되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익명(匿名)의 하나님’으로 머물러 계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해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슬쩍 슬쩍 거드실 뿐이지 혼자 도맡아 하시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우리의 몫으로 우리에게 떠맡기십니다. 우리가 감당하게 하시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나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익명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깊이 깨달은 이들이 포로기 이후의 성도들입니다.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성경들인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같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시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다는 말이 아예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최소한으로 나옵니다. 포로기를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달은 것은 인생은 철저히 인간의 몫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익명으로 계시다가 인간이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기도한 다음 철저히 책임을 다할 때 거기에 함께 하신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도한 다음 요행(僥倖)이 일어나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기도한 다음 그 기도에 걸 맞는 최선의 노력과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에스더 성경에 하나님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장은 이런 신앙, 이런 하나님을 너무 잘 보여주는 장입니다. 자, 에스더가 기도한 후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그리고 익명의 하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거기에 부응해 주시는지 살펴봅시다.

 

 

 

1. 계기를 마련하시는 하나님

 

 먼저 1, 2절을 봅시다.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와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1,2)

 

 에스더는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강한 권고를 받고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서 민족의 문제를 아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냥 나가지 않고 기도하고 나아갑니다. 오빠 모르드개에게는 수산성 안의 유다인들을 모아서 삼일 간 금식하며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자기도 시녀들과 삼일 금식하며 기도한 후 나가겠다고 합니다. 이제 삼일이 지났습니다. 삼일 금식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삼일 금식하면 일어서서 걷기도 힘이 듭니다. 차라리 일주일 금식이 쉽습니다. 삼일 금식한 사람이 얼마나 초췌했겠습니까? 그런데 왕의 눈에 매우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금식기도만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짧은 찰나와 같은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느헤미야 2장을 보면 느헤미야가 황폐하게 버려진 고국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파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어째서 얼굴에 근심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느헤미야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면서 크게 두려워합니다. 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자가 뭔가 흑심을 품고 있다고 오해를 사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느헤미야가 고국 땅이 황폐하게 버려져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그렇다고 침착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이 뜻밖의 말을 합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때 느헤미야가 그 짧은 찰나 묵도로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금 왕이 제에게 묻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이렇게 했겠습니까? ‘주여, 역사하여 주소서!’ 딱 압축해서 요점만 기도합니다. 그런 다음 고국에 돌아가서 무너진 성읍을 재건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아룁니다. 왕을 섬기는 비서가 그 일을 내려놓고 고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허락이 떨어집니다. 덤으로 필요한 건축 자재까지 제공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기도하면 어떤 계기(契機)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뭔가 작은 계기라도 있어야 그것을 발판삼아 해보겠는데,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작은 계기가 하나 마련됩니다. 엘리야가 비오기를 기도하였을 때 먹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덮은 것이 아니라 손바닥마한 구름이 겨우 일어났습니다. 작은 계기를 주신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기도가 사라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신앙이 형식이 되고 메마른 지식이 됩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교회에 나와서 하든 집에서 하든,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해도 해도 쓸데없는 이야기로 다 때우지 마시고 혼자 따로 시간을 내서 잠시라도 기도하십시오. 제가 요즘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하루에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을 기도하는데 한 시간 기도할 때와 또 다릅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심령에 담대함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알게 모르게 길을 열어 가시기 시작합니다.

 

 

 

2. 조급함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에스더를 향해 사랑의 감정이 한껏 동한 왕은 소원을 말하라고 합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합니다. 이때 에스더는 소원을 곧바로 아뢰지 않고 뜸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4절을 봅시다.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4)

 

 오늘 잔치를 베풀었으니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라고 초청을 합니다. 이때부터 에스더는 잔치를 베풀고 왕과 하만을 초청하기를 반복합니다. 이 점이 에스더서의 변곡점(變曲點), 터닝포인트(turning point)인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에스더가 왜 이렇게 하는지를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조금 있다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선 에스더가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왕이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오면 당장 하만을 고발하면 될 것 같은데 에스더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時機尙早)이기 때문입니다. 왕과 하만의 관계는 보통관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볼 때 하만은 악인이지만 왕에게는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최측근입니다. 어떤 왕도 혼자의 힘으로 아무 것도 못합니다. 지지세력 없는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법입니다. 왕과 하만의 관계는 권력의 동반자관계인 셈입니다. 얼마나 가까우면 옥쇄인 인장반지까지 내 줬겠습니까? 왕이 오늘 참 예쁘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 테니 원하는 것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고 해서 결정적인 단서나 사건 없이 하만을 처단해 달라고 말했다가는 오히려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와스디처럼 쫓겨나는 것입니다. 왕의 마음을 하만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균열이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결정적인 때가 와야 합니다. 에스더는 조급함에 붙들리지 않고 일을 진행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도 자주 실수하는 점이 조급함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꾸 조급하게 이루려고 하고 조급하게 가지려 듭니다. 결국 일이 꼬이고 후유증을 겪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자식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자 조급함에 붙들려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자식을 덜컥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하갈이 위세를 부리면서 사라와 이틀이 멀다고 다투기를 시작합니다. 나중에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납니다만 이스마엘이 이삭을 구박합니다. 집안이 어떻겠습니까?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게 됩니다. 그래도 자식인데 그 마음이 오죽 했겠습니까?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면 후유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인생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잔치 작전을 쓰면서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가고 또 결정적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왜 기도해야 하느냐? 기도가 조급함을 이기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조급함에 한 번 붙들리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무리하게 추진하게 됩니다. 그것이 먹혀들더라도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을 토해 내야 합니다. 순리를 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조급한 마음을 이기도록! 무리수를 두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계획을 주시는 하나님

 

 어떤 아이가 아빠가 기도하시는 것을 보니 ‘누가 어렵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누구누구가 몸이 아픈데 병원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그럽니다. 하루는 아빠가 집에 와 보니 통장이 없어지고 폐물함에 모아둔 금반지 금목걸이가 없어졌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돌아와서 자기가 가져갔다고 합니다. 아빠가 기도만 해서 자기가 기도응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조금 극단적이고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핵심은 그것입니다. ‘기도했으면 그 기도에 내가 책임(責任)을 져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조급함에 빠지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에스더가 하는 것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되는 어떤 지혜의 번득임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같이 한 번 살펴보는데 잘 따라 오셔야 합니다. 4절을 다시 읽습니다.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4)

 

 

 우리 성경으로는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내가 왕을 위하여’가 아니라 ‘내가 그 분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로 되어 있습니다. 4절은 이런 분위기입니다. ‘내가 그 분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임금님만 괜찮으시다면 하만을 데리고 오십시오!’ 아직 어떤 느낌인지 감이 안 오는 분들이 계시는데 좀 더 와 닿는 상황으로 각색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미혼인데 아주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다고 쳐요. 백화점에 가서 선물을 하나 사 주겠다 했더니 그 아가씨가 하는 말이 “용표씨 혼자 오지 마시고 왜 있잖아요, 용표씨 친구 덕배씨, 덕배씨도 데리고 와 주세요!” 이래요. 그럼 제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안 좋겠습니까? 안 좋습니다. 왜 둘 사이에 덕배를 끼웁니까? 단 둘이 있고 싶은데! 왕이 에스더에게 사랑의 감정이 차올라서 단 둘이 있고 싶은데 에스더는 하만을 끼웁니다. 거기다가 ‘내가 당신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가 아니라 ‘그 분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그 분이 누굽니까? 또 거기다가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하만을 데리고 오십시오’라고 합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기분 나쁘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마음으로 왕은 저녁만찬에 하만을 데리고 갔습니다. 왕은 식사는 뒷전이고 조급증이 생겨 에스더에게 또 소원을 말해 보라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에스더는 바로 말하지 않고 뜸을 한 번 더 들입니다. 내일 또 잔치를 베풀 테니 또 하만을 데리고 오라는 겁니다. 8절 중반을 보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라고 했는데, 여기도 원문에는 ‘내가 그 분들을 위하여 베푼 잔치에 하만을 데리고 오십시오’로 되어 있습니다. 왕으로서는 계속 기분이 언짢은 겁니다. 도대체 선물 하나 주겠다고 하는데 왜 하만을 자꾸 끼우는 건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잔치인지? 그 분이 누구란 말인지? 도대체 왕비와 하만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만이 자꾸 신경 쓰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에스더가 의도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에스더의 지혜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지금 이런 미묘한 삼각관계 분위기를 일부러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왕이 하만을 달리 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저 사람 하만은 왕에게 덕이 될 사람이 아닙니다. 하만은 죽도록 충성할 위인이 아니라 결국 나중에는 왕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왕비인 저까지도 차지할 위인입니다. 하만은 악인 중의 악인입니다. 하만의 정체를 꿰뚫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메시지가 담겨있는 연출입니다.

 여러분, 에스더가 이런 계획을 언제 세웠을까요? 도대체 지혜가 어디서 왔을까요? 삼일 간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세웠을 겁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깊이 고민하면서 기도하다보면 처음에는 마음도 머리도 복잡합니다.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시간을 이겨내고 계속 기도하다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가라앉습니다. 거기서 더 기도하다보면 이 일이 되고 안 되고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래, 죽든 살든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러면서 ‘주님, 주님 뜻대로 하세요! 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됐습니다!’ 이런 기도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기도가 되면 그때서야 마음이 평안해 지는 단계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기 시작해요. 어떤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합니다. ‘아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래, 이 일은 이렇게 하고 그 다음에는 이것을 하고...’ 뭐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막 떠올라요.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안한 상태에서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어야 길이 열립니다. 내가 펄펄 살아있어서는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꺾이고 죽어야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때로 침묵하십니다. 아니 대체로 침묵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사라지십니다. 아니 대체로 사라져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그분은 일의 계기를 만드시고, 조급함을 이기게 하시고,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혜와 계획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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