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home
  • 주일설교

에스더강해4

2018.03.07 16:31

양승훈전도사 조회 수:86

제목 에스더강해4 
본문 에스더 4:1-17(구약753) 
날짜 2018-03-04 
설교자 전용표 목사 

 

   40년 전 김해에 살던 청년이 부산에서 직물 공장하는 친척을 찾아갔다가 천을 하나 얻어왔습니다. 거칠거칠한 천이었습니다. 청년 생각에 목욕탕 가서 때 밀 때 쓰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밀어보니까 정말 몸에서 우동면발이 밀리는 겁니다. 친척은 손을 넣어서 밀 수 있도록 박음질을 해서 이것을 제품으로 만들어내고 청년은 부산시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도시를 중심으로 대중목욕탕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때도 잘 탔던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대한민국 5대 발명품 중 하나인 ‘이태리타올’입니다. 그 때 사용했던 천이 이태리에서 개발한 원단이었기 때문에 이태리타올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태리타올이 지금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청년은 그야말로 ‘때 돈’을 벌었습니다. 사람의 노력과 시기(時期)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이루어진 사례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두 가지가 맞물려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攝理)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노력과 책임(責任)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만 믿고 내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신앙이요, 내 노력만으로 하려드는 것은 아예 불신앙에 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해 주셔야 하고, 또 내가 할 바를 최선을 다해 해야 합니다. 이 둘이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4장에 들어오면 이제 하만이 왕을 움직여 반포한 유다인 학살 조서로 인해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이 큰 충격을 받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모르드개는 부르짖기도 하지만 백방으로 노력을 합니다. 에스더에게 힘든 역할을 감당하라고 종용을 한 것이지요. 에스더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입니다만 집요하고 강력한 모르드개의 설득에 결국은 크게 깨닫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주실 것을 믿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라’고도 하시지만 기회를 따라(삼상10:7) 행동하라고도 하십니다. ‘기회를 따라’라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서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1. 부르짖어야 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 봅시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에게 사형선고가 떨어졌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왕의 어인이 찍힌 것은 바꿀 수도 없습니다. 망연자실(茫然自失)입니다. 이때 모르드개와 신실한 유다인들은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3절을 봅시다.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3)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크게 애통하는 마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금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울부짖음을 꺾일 수 없다는 몸부림입니다. 마음이 꺾이면 안 됩니다. 갑자기 병이 생기거나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사람이 기가 꺾입니다. 마음이 꺾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무너져 내립니다.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어요. 작은 충격은 맛있는 것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이브를 하거나 사람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추스를 수 있지만 큰 충격은 그런 것으로는 안 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소리 내어 부르짖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마음이 자꾸 가라앉습니다. 마음이 꺾이고 밑바닥으로 내려앉으면 그것이 몸을 상하게 하는 중병이 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고 하셨습니다. 평소는 묵상과 성찰의 기도로도 되지만 환난 날에는 부르짖는 기도라야 합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건지신다 하였습니다. 건짐 받는 은혜를 체험한 나를 통해 영광 받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크게 애통하는 마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금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여기서 단념하고 운명에 맡길 수 없다는 몸부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체념(諦念)의 신앙이 아닌 극복(克服)의 신앙입니다. 제가 중학생 때 우리교회에 공장 다니는 또래 여자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전라도에서 부산까지 돈 벌러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야학으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미라라는 이름을 가진 동생이 있었는데, 참 믿음이 좋았습니다. 자신의 불우한 형편을 조금도 비관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오빠, 저는 앞으로 이렇게 살 거예요. 이런 사람이 될 거예요!’ 가난해서 중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처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래희망이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제가 목사가 되었을 때 미라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신학대학을 나와서 전도사가 되어 전남 여수의 교회에서 이러이러한 사역을 하고 있다고 기별이었습니다. 자신이 꿈꾸며 말하던 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기독교는 극복의 종교입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는 것이 극복의 첫 관문입니다. 부르짖을 때 문이 열립니다.

 

 

 

2.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울며 부르짖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길을 모색합니다. 왕후로 있는 사촌동생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 것입니다. 에스더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한 발 뒤로 뺍니다. 10, 11절을 봅시다.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10,11)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함부로 왕 앞에 나가면 가차 없이 죽이는 것이 바사나라의 예법(禮法)을 이유로 왕 앞에 나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단 임의로 왕 앞에 나갔을 때 왕이 금 규를 내밀어주면 벌을 받지 않는 예외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왕이 자기를 부르지 않은지 이미 삼십일이나 되었으니 이것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결론은 못하겠다는 겁니다. 자식 같은 동생인데 죽을까봐 두려워서 못하겠다면 보통은 마음이 약해서 물러섭니다만 모르드개는 더 강하게 다그칩니다. 13, 14절을 봅시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13,14)

 

 나만 안전하면 된다고 생각지 말라고 합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홀로 목숨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아라!’ 부끄러운 일이지만 과거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지 않고 뒤로 물러서고 숨으라고 가르쳤습니다. ‘나서지 마라! 뒤로 빠져있어라! 중간만 해라! 아무리 불의가 기승을 부리고 정직한 사람이 당하고 살아도 너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잘못된 관행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려도 너하고 상관없는 일이면 가만히 있어라!’ 보신주의(保身主義), 이기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저도 부모가 되어보니 내 자식 안전이 우선이 됩니다만 실은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배우고 자라나면 절대 불의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당하고 불의한 사람이 이기는 역사가 무한히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침묵한 불의는 언젠가는 내 뒤통수를 치고 내 자식들 발목을 잡습니다.

 모르드개처럼 ‘너 혼자 살려고 하지 말아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정직을 가르치고 불의에 눈 감지 말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대가를 치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1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근에게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죽음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죽어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안중근 의사는 상소하지 않고 사형을 당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몸이 쇠약해지자 일본은 주목사님의 아내인 오정모사모님에게 남편 풀어줄 터이니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오정모사모님이 남편 면회 가서 한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내가 책임질 테니 목사님은 순교하시오. 목사님이 순교하셔야 한국교회가 삽니다!”

 세상이 바뀌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도록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누군가가 대가를 치러주겠지? 내가 치러야 합니다. 치러야할 대가를 내가 치를 때 그것과 하나님의 섭리가 맞물려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딸 같은 에스더에게 대가를 치르는 신앙을 요구하였습니다.

 

 

 

3.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에스더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후가 된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줍니다. 14절을 읽습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14)

 

 ‘네가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왕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너 그것 진지하게 생각해 봤느냐? 왜 하나님께서 너를 왕후의 자리에 앉혀 놓으셨는지, 무슨 일을 시키시려고, 어떤 역할을 감당하라고 이런 자리, 이런 형편에 이르게 하셨는지 그것 한 번 진지하게 헤아려 봤느냐?’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 우리는 대개 좋아하고만 끝이 납니다. 좋아하고 누리기에 급급합니다. 아닙니다.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나는 내 친구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태어났는가? 어째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인생이 더 잘 풀리는가? 어째서 내가 이런 자리, 이런 형편에 이르게 되었는가? 무슨 뜻이 있는가? 어떤 역할을 하라고 하시는 것인가?

 이것이 요셉이 고민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당해서 종으로 팔려왔습니다. 그 아픔을 이겨내고 열심히 했지만 억울한 누명 덮어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억울함을 겨우 이겨 냈을 때 초고속 승진의 길이 찾아왔습니다. 대제국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요셉은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도대체가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왜 내게 일어나는가?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극심한 기근에 양식이 떨어진 형들이 양식을 얻으러 찾아왔습니다. 자기를 팔아먹은 파렴치들입니다. 그때 요셉은 하나님의 뜻이 민족을 구원하는데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이루고 나서 그 자리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 오르고 나면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뜻을 헤아려 실행에 옮기는 사람, 그에 따른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행하는 사람이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히 해드리는 사람이 됩니다.

 어제 임직한 분들은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시험이 시작됩니다. 이제부터 교회봉사를 하면서 더 섭섭해진다? 그러면 사람들이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잘못된 것입니다. 역할을 감당하라고 세우신 것이니 역할을 감당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십시오. 섭섭해지는 것은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고 초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어려운 역할을 주어지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기회이고 복인 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맺는 말

 

 부르짖으면서, 대가를 치르면서,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번호 제목 본문 날짜 설교자
118 고린도전서강해2 하나됨,오해인가 이해인가 고린도전서 1:10~31(신약263)  2018-05-06  전용표 목사 
117 고린도전서강해1 그래도 교회인가? 고린도전서 1:1~9(신약263)  2018-04-29  전용표 목사 
116 에스더강해9 ‘무엇’보다 ‘어떻게’ 에스더 8:1~17(구약757)  2018-04-22  전용표 목사 
115 에스더강해8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에스더 7:1~10(구약756)  2018-04-15  전용표 목사 
114 에스더강해7 새벽은 어떻게 오는가 에스더 6:1-14(구약755)  2018-04-08  전용표 목사 
113 부활의 신앙 요한복음 20:19~23(신약183)  2018-04-01  전용표 목사 
112 거룩함과 은혜의 예식. 세례 마태복음 28:19-20(신약52)  2018-03-25  전용표 목사 
111 에스더강해6 악인과 익명의 하나님 에스더 5:9-14(구약754)  2018-03-18  전용표 목사 
110 에스더강해5 기도와 익명의 하나님 에스더 5:1-8(구약754)  2018-03-11  전용표 목사 
» 에스더강해4 에스더 4:1-17(구약753)  2018-03-04  전용표 목사 
108 에스더강해3 한밤 중에 부르는 노래 에스더 3:1-15(구약752)  2018-02-25  전용표 목사 
107 에스더강해2 높아짐과 잊혀짐이 다 은혜라 에스더 2:1-23(구약750)  2018-02-18  전용표 목사 
106 에스더강해1 앞 서 가시는 하나님 에스더 1:1-22(구약750)  2018-02-11  전용표 목사 
105 사도행전강해30 한 길 가는 순례자 사도행전 28:1-15절, 30-31절 (신약 236)  2018-02-04  전용표 목사 
104 사도행전강해29 소망이 되는 사람 사도행전 27:22-44 (신약 234)  2018-01-28  전용표 목사 
103 사도행전강해28 섭리로 사는 사람 사도행전 23:11-35 (신약 228)  2018-01-21  전용표 목사 
102 사도행전강해27 예수의 길을 가는 사람 사도행전 21:17-36 (신약 225)  2018-01-14  전용표 목사 
101 사도행전강해26 미지의 길을 가는 사람 사도행전 20:17-38 (신약 222)  2018-01-07  전용표 목사 
100 사도행전강해25 진짜 살이 사도행전 19:8-20 (신약 219)  2017-12-31  전용표 목사 
99 성탄절 설교) 마구간 예수 마구간 신앙 누가복음 2:1~7 (신약 89)  2017-12-25  전용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