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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스더강해3 한밤 중에 부르는 노래 
본문 에스더 3:1-15(구약752) 
날짜 2018-02-25 
설교자 전용표 목사 

 

   한밤중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산에 마지막 살던 곳이 유명한 곱창골목입니다. 한밤중에 음정박자편곡해서 부르는 노래에 밤잠 설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취객들이 한밤중에 잠 깨우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웃의 한 목사님은 부엉이 소리를 잘 내는데 연애시절 기숙사에 있는 사모님을 ‘부엉이가 세 번 울면 내려 와라!’며 몰래 불러내곤 하셨답니다. 한밤중은 연애하는 사람들의 사랑노래가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청년 때 밤에 예배당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다보면 들마루에 나와서 기타를 뜯으며 노래를 부르던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재미있고 웃기는 분인데 밤에 기타를 뜯으며 부르던 노래에는 아픔도 있고 슬픔도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한밤중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죄가 가득한 세상은 낮도 밤도 밤입니다. 말씀대로 진리대로 살려는 사람에게 세상은 더욱 밤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항상 우울하고 진지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죄 된 세상의 진면목(眞面目)과 맞닥뜨렸을 때 부를 수 있는 믿음의 노래는 있어야 합니다.

 3장은 하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불어 닥친 위기를 보도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이라는 악인(惡人)을 제국의 2인자로 높여주었습니다. 하만은 사람들에게 신처럼 군림합니다만 신앙의 사람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습니다.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에게 앙심을 품고 죽이려고 하는데 얼마나 미움과 증오가 컸으면 모르드개 뿐 아니라 모르드개의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왕에게 많은 돈을 상납하고 유다인을 죽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몰살당할 큰 위기에 빠집니다. 신앙으로 살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있고 때로 하나님은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악인 하만의 권세

 

 에스더가 천하제일 나라 바사 나라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집안의 경사이자 민족의 경사이지요. 그런 기쁨이 계속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얼마 가지 않아 큰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하만이라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1,2절을 봅시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1,2)

 

 왕이 하만을 가장 높은 벼슬을 주는데, 하만은 좋은 자가 아닙니다. 아주 욕심이 많고 악하고 잔인한 사람입니다. 벼슬이 높아지자 사람들로부터 절을 받으며 신처럼 권세를 휘두릅니다. 사람들은 그 앞에 굽실거립니다. 그런데 한 사람 모르드개가 절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것이 화근(禍根)이 하만은 모르드개뿐 아니라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다인 전체를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참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하여 그 사람을 죽이려 들고 그 사람뿐 아니라 그 민족 전체를 몰살하려고 들다니요? 그리고 이런 자가 정승의 자리에 올랐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재앙입니다. 의를 겸비한 사람이 힘을 가지면 모두가 그 덕(德)을 누리지만 의를 겸비하지 못한 자가 힘을 가지면 모두가 그 해악(害惡)에 시달리는 법입니다. 다윗 같은 이가 왕이 되니 가난이 해소되고 억울함이 풀리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사울 같은 이가 왕이 되니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여러분 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의로운 마음을 가졌느냐’입니다. 악인이 능력이 없으면 좀도둑에 그치고 말지만 악인이 능력까지 있어버리면 나라말아 먹는 큰 도둑이 됩니다. 의가 없고 자기유익만 좇고 술수를 부리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앉으면 공동체 전체가 몸살을 앓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 능력 있는 사람 뽑아 달라 하지 말고 의로운 마음이 있는 사람 뽑아달라고 하십시오. 능력 있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를 좇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힘이 생길 때 조심하십시오. 나에게 힘이 생겼느냐를 언제 알 수 있는가 하면, 동서들과 명절 음식 만들 때 내가 하고 싶은대로 되면 힘이 생긴 것입니다. 내 맘대로 되기 시작할 때, 그때가 위험할 때입니다. 대개 힘없는 약자일 때는 원칙을 지키자, 바르게 하자, 정의를 말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원칙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이 원칙, 저 때는 저 원칙, 입맛대로 합니다. 그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힘이 생길수록 이 사람 말, 저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취합하여 모두에게 유익한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물질이 불어날 때에도 어디선가 의롭지 않고 정직하지 않은 병폐가 자라나지 않는가를 자꾸 살피고 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질이 독이 되지 않고 약이 되며 길게 갑니다.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좇아야 합니다. 이것이 어두운 세상에서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2. 의인 모르드개의 절개

 

 그런데 참 이해하기 힘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만 같은 악인이 득세하도록 내버려 두실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 알 수 없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경륜(經綸)입니다. 하만 같은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그 앞에 줄 서는 사람, 아첨하는 사람, 뭔가 한 자리라도 얻어내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나라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맙니다. 구석구석 속속들이 썩어 문들어 집니다. 겉으로는 여상스럽게 돌아가는데 들쳐보면 다 썩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 앞에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않습니다. 신앙의 사람 모르드개입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압력을 넣습니다. 너는 뭔데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너 혼자 잘 났느냐? 왜 세상 그렇게 모나게 살아, 좀 둥글게 둥글게 살아 이 사람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래봤자 자네 혼자만 힘들지 누가 알아주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압박을 넣기도 하고 회유도 하지만 모르드개는 굽히지 않습니다. 어째서 하만에게 절하지 않느냐는 다그침에 자신은 유다인이라고 답합니다. 4절을 봅시다.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가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3,4)

 

 나는 유다인이다! 먼저는 민족적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말입니다. 하만은 아각의 후손으로 아말렉 족속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광야에서 어려운 처지로 살아갈 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후미를 쳐서 노략을 일삼던 승냥이 노릇하던 민족입니다. 유다인으로서 민족의 원수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유다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인에 해당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출세를 위해 아무에게나 넙죽넙죽 절하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한몫 챙길 수 있다면 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인이건,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건 상관없이 손 붙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여러분, 이런 신앙의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의 이런 신앙의 절개 때문에 모르드개 뿐 아니라 민족전체가 위험에 빠집니다. 6절을 봅시다.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6)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당장 좋은 결과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기가 찾아옵니다. 넓게 보면 ‘네가 그 믿음으로 끝까지 갈 수 있느냐? 이런 힘든 일이 생겨도,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네가 그 믿음으로 끝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 이런 시험이 꼭 찾아옵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 모르드개의 신앙의 절개로 인해 유다인 전체가 학살의 위험에 빠졌을 때에 사람들은 하만을 원망했을까요, 모르드개를 원망했을까요? 아마 모르드개를 원망했을 겁니다. 바로가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고 히브리인들을 더욱 못살게 굴었을 때에 히브리인들은 악한 바로를 원망하지 않고 의로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 꼭 희생자가 됩니다. 타협하는 사람은 욕먹을 일 없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모르드개더러 ‘문제인간’이라 합니다. 누가 ‘문제인간’입니까? 신앙의 절개를 가지고 불의에 타협하거나 절하지 않고 버틴 모르드개가 문제인간입니까, 아니면 권세를 이용해서 온갖 불의를 일삼고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다하여 한 민족을 학살하려 드는 하만이 문제인간입니까?

 다들 뒷돈 받고 하는데 한 사람 안 받으면 그 사람 때문에 분위기 이상해집니다. 신호 걸렸는데 반대편 차선에 차 없다고 슬금슬금 신호위반해서 다 가는데,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안 가고 딱 섭니다. 그러면 뒤에서 빵빵거리는 사람도 있고, 신호위반해서 옆으로 지나가면서 째려보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한 사람 왕따 시키는데, 나 혼자 왕따 당하는 사람과 밥 먹으러 가면 다음부터 눈초리가 쐐합니다. 문제인간 취급합니다. 누가 문제인간입니까?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숙명(宿命)입니다. 불의한 세상에서는 정도를 걷는 사람이 문제인물이 되고 불의를 일삼는 자가 능력자 취급을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싶겠지만, 굽히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막아설 수 있는 의인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렘5:1, 겔22:30). 한 사람 있으면 그 사람 통해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입니다. 그것을 믿고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바로 서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 때문에 시끄럽다, 너만 눈 감고 가만있으면 되는데, 왜 시끄럽게 하느냐?’ 하지만 희생을 치르는 시간이 지나면 돌같이 딱딱한 사람들의 양심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양심을 깨우는 일이 일어납니다. 어둠이 지나고 새벽이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르드개의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동족도 돌을 던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의 길이라면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곳에서 진리의 깃발을 꽂으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승리하게 하십시오.

 

 

 

3. 유다인 진멸 조서가 반포되다

 

 분노에 찬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을 충동(衝動)하여 제국 내 유다인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진멸시킨다는 조서를 받아 냅니다. 제비 뽑아 열두째 달인 아달월 13일로 날을 받습니다. 여기서 부림절이라는 유대인의 절기이름이 나왔습니다. 9절을 보면 하만은 은 일만 달란트를 아하수에로 왕의 개인금고에 상납합니다. 결국 여자에 약하고 돈에 약한 아하수에로왕은 자기 나라 백성을 학살하는 일에 옥쇄를 내주고 맙니다. 9~11절을 봅시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배겅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9~11)

 

 지도자가 돈 좋아하면 이렇게 됩니다. 교회지도자들이 돈 좋아하면 교회가 엉망이 됩니다. 지도자는 돈과 멀고 의와 가까워야 합니다.

 하만은 악인인데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참 괴롭습니다. 거기에 치이고 살아야 됩니다. 살맛이 안 나지요.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나 싶지요. ‘하나님 도대체 하나님은 계시기나 합니까?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도 하십니다. 어둠이 이기는 시간, 나쁜 사람이 이기는 시간! 그 시간도 하나님의 시간이고, 거기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따뜻한 봄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추운 겨울도 있습니다. 겨울이란 시간이 흘러가야 봄날이 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많이 겪어야 한다(행14:22)고 했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택한 백성들의 고난의 분량(分量)을 채우십니다. 어쩌면 내가 만난 어둠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시기 위해 고난의 분량을 채우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말기 암을 앓는 여자 분이 계십니다. 이화여대 나와서 방송국 기자가 되었습니다. 너무 착합니다. 착하니까 못된 사람의 표적이 됩니다. 갈굼과 시달림을 견디다 못해 그만 두고 나왔습니다. 그 스트레스를 이제 안 당해도 되는구나 했는데 가슴에 딱딱한 것이 잡힙니다. 암이었습니다. 당한 쪽은 난데 억울한 쪽은 난데 암까지 생겼습니다. 갈구던 사람은 승승장구하며 방송국 요직에 올라갑니다.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너무 소심하고 착해 소리도 못 지릅니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괴로워하다가 그 기간이 지나고부터 자기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습니다. 그것을 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찾습니다. 그것을 씁니다. 그러면서 죽어갑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생의 막바지 때, 찾아온 지인들에게 말을 합니다. 아픈 것도 축복이라고. 아픈 덕에 자기를 찾았기에 축복이고, 아프다는 것은 아직 진실한 삶을 더 찾아갈 시간이 조금은 남아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고난도 축복입니다. 상황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막 흘러갈 때, 내 인생을 캄캄한 밤중으로 휘몰아갈 때, 그저 살아있음만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눈물은 아래로 흐를지라도 숟가락은 위로 올려야 합니다. 덩달아 악한 방법 편법으로 맞서려는 유혹을 떨쳐내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견뎌야 합니다. 모든 고난 속에 있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때는 오고야 맙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생의 한밤을 만났을 때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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