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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행전강해28 섭리로 사는 사람 
본문 사도행전 23:11-35 (신약 228) 
날짜 2018-01-21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우리교회가 협력하는 태국 ○○○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선교사님의 둘째 딸 허은 이가 지난주일 저녁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허선교사님이 태국에 간 지 겨우 2년째입니다. ○○○ 선교사님은 저의 대학친구입니다. 은사와 환상 신유체험이 많았던 뜨거운 친구였습니다. 시험기간에도 어김없이 새벽에 2시간을 기도하고 성경 20장을 읽었습니다. 건드리기만 해도 예수가 튀어나오는 친구였습니다. 미국 이민 목회를 하던 중 선교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이민목회를 접고 태국에 선교사로 갔던 것입니다. 둘째 딸 허은이가 천식이 있었는데, 저녁에 잠을 자다가 숨쉬기가 힘들다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했습니다. 갖은 방법으로 응급조치를 취하였지만 20분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떻게 제대로 손 써볼 겨를도 없이 가고 말았습니다. ○○○ 선교사님과 통화를 하는데 하염없이 울더군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어떤 말도 그 고통에 다가갈 수 없는 사치스런 말로 느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같이 울었습니다.

 ○○○ 선교사님은 미국국적자입니다. 미국대사관에서 시신을 미국으로 데려갈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놓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만 ○○○ 선교사님 부부는 의논 끝에 딸의 시신을 태국에 안장(安葬)키로 하였습니다. 지금 딸의 시신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거기서 안장하고 나면 다시는 태국으로 돌아올 자신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딸을 잃은 아픔의 땅이지만 주님께서 뜻이 있어 보내신 땅이기에 그 땅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리가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모두의 죽음이 귀하고 잊혀서는 안 될 일이지만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들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해주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무심(無心)도 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사로 헌신한 사람인데 딸이 죽도록 내버려두시다니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 우리는 섣부르게 의미부여하는 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그림은 멀리 떨어져서 봐야 알 수 있듯이 먼 훗날이 되어야 선교사님 가정의 아픔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될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말을 아끼고 함께 아파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주님의 뜻을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바울의 생애도 이와 같았습니다. 넓게 봐야하고 멀리 봐야 비로소 보이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1. 주님이 기뻐하실 선한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천부장(千夫長)이 바울을 보호하고 나서자 바울을 고발합니다. 이튿날 천부장은 도대체 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때렸는지, 왜 또 고발을 하였는지 알고자 유대인들의 공회를 소집하고 그들이 바울을 직접 심문할 기회를 줍니다. 이것이 22장 30절부터 23장 10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심문을 받은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1절입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11)

 

 

 각오하고 올라왔다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인데? 동족에게 버림받은 정신적 고통에다 죽도록 두들겨 맞은 육체적 고통과 공포가 뒤섞여 힘든 밤입니다. 아무도 함께 할 수도, 누구와 나눌 수도 없는 고통의 밤입니다. 그 밤, 놀랍게도 주께서 바울 곁에 서 계셨습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건져달라고 부르짖지만 주님은 고통 속에 들어오십니다. 우리는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르짖지만 주님은 억울함을 같이 당하십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불가마 같은 포로생활에서 건져주지 않는다는 실망과 원망이 있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니엘의 세 친구를 통해 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억울하게 불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주님은 나갈 때가 되기까지 불구덩이에 들어와 같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임마누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네가 로마에 가서 거기서도 증언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그 일을 이루게 하리라!’ 이런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19장 21절을 보면 바울은 3차 선교를 마칠 때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면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황제숭배라든가 물질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영혼까지도 사고파는 로마를 세상의 심장부(心臟部)이자 땅끝이라 보았습니다. 세상의 심장부에 복음의 폭탄을 투하하려던 것이 바울이 품은 비전이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기억하고 계셨고 또 이루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 품었던 주님 뜻에 맞는 선한 꿈과 계획을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마치 ‘아빠, 엄마, 저는 커서 무엇이 될래요!’ 자녀가 어렸을 적 자신의 꿈을 말했던 것을 부모가 평생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기뻐하실 계획을 품으십시오. 내가 기뻐할 계획을 주님의 영광으로 포장한 것 말고 진정 주님이 기뻐하실 계획을 품으십시오. 주님께서 잊지 않고 기억하실 계획을 품으십시오. 주님이 거기까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가실만한 계획을 품으십시오. 정말 주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그곳까지 가게 하십니다. 저는 언젠가 선교지(宣敎地)를 돌면서 한국교회들이 세운 아주 초라한 예배당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급하게 날림으로 지은 예배당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만약 선교지에 예배당을 짓게 된다면 저렇게는 안 지어야지, 우리도 예배당 하나 지었다는 자랑거리를 위해서 뚝딱 짓는 예배당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지으려면 제대로 지어야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생각이 현실이 되게 하시네요.

 하나님은 바울이 가슴에 품었던 로마, 거기까지 데려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마음에 품은 생각까지 살피시면서 아주 세밀하게 섭리(攝理)하시는 분이십니다.

 

 

 

 

 

 

2. 주님의 방법대로 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의 바람대로 로마에 가게 하시는데 주님의 방법대로 가게 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주님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체포되어 재판받으러 가는 미결수(未決囚)의 신분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1차로 유대인의 공회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어떤 죄도 입증되지 않습니다. 풀려나야지요. 그런데 풀려나지 않습니다. 2차는 가이사랴 총독부에서 벨릭스총독에게 재판을 받습니다. 거기서도 죄가 입증되지 않습니다. 풀려나야지요. 그런데 풀려나지 않습니다. 베스도로 총독이 바뀝니다. 베스도가 지역의 분봉왕인 아그립바를 대동한 자리에서 또 바울을 재판합니다만 거기서도 죄가 입증되지 않습니다. 풀려나야지요. 그런데 풀려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최종적으로 황제의 법정인 로마법정에 상소를 합니다. 그래서 재판받으러 가는 미결수 신분으로 로마에 가게 됩니다. 사도행전 21장부터 28장 마지막까지가 실은 바울이 재판받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읽어보면 별로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성령께서는 인간저자인 누가를 감동하셔서 이 과정을 아주 길고도 소상하게 적게 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을 택하신 주님의 계획을 끝까지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을 보면 바울을 택하신 주님의 목적, 계획이 나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우리는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그릇으로만 기억합니다만 정확히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그릇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방인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울이 지금까지 줄곧 해오던 일입니다. 아직 하지 못한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임금들, 고관대작들, 로마의 권력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은 가장 낮은 자들로부터 가장 높은 자들 모두에게 전파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풀려나지 않고 계속해서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되게 하셨습니다. 급기야 미결수 신분으로 재판받기 위해 로마까지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3차 선교 때 그리스까지 갔었습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어렵잖게 로마로 갈 수 있습니다만 거기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고난을 받으라는 이해하기 힘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았었지요. 그래서 예루살렘에 왔던 것이고 체포된 것입니다. 만약 3차 선교를 마치고 곧장 로마로 갔더라면 유대인들에게 죽도록 매를 맞을 일도 없었고 체포될 일도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계속해서 받을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랬더라면 왕과 총독들 앞에서, 로마의 고관대작들 앞에서 폭포수와 같이 복음을 쏟아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임금들에게 전하여야 하리라 하신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겠습니까?

 결국 보십시오. 바울이 매를 맞고 잡히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재판을 받고 하는 그 쓰라린 과정이 실은 우연(偶然)이 아니라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려는 주님의 철저한 섭리 가운데 일어난 필연(必然)들이었습니다.

 샤르트르는 <존재와 무>라는 책에서 인간은 그저 ‘던져진 존재’, ‘세상에 버려진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철저히 주님의 섭리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결코 처량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섭리에 붙들린 존재들입니다. 지금 억울한 일이 마냥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계획이 거기에 들어있습니다. 지금 이해하기 힘든 일이 영원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그 속에 들어있었던 주님의 계획이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3. 힘들지만 가슴 떨리는 길, 섭리의 길

 

 바울이 품은 로마 선교를 이루어 가시되 당신의 뜻과 계획에 맞게 이루어 가시는 것이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거기에 억울함도 적지 않았고 고통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섭리 속에 살고 있는 바울을 철저히 보존(保存)하십니다. 보존한다는 말은 잘 간수해서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12절부터 35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보존해 가고 계시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 죽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암살단(暗殺團)이 조직됩니다. 그 숫자가 4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12,13절을 봅시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12,13)

 

 

 그들의 작전은 바울에게 더 물어볼 것이 있으니 다시 바울을 유대인의 공회에 데리고 와 달라고 천부장에게 부탁을 해서 천부장이 바울을 데리고 내려오는 길목에 매복했다가 바울을 암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간계를 바울의 생질(甥姪)이 듣고 천부장에게 고변(告變)을 합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예루살렘에 두었다가는 큰 일 나겠다.’ 해서 백부장 둘을 불러서 바울을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게 합니다. 바울을 호송하는 병사들 숫자가 어마어마합니다. 23절을 보면 보병 200명, 기병 70명, 창병 200명, 도합 470명입니다. 최정예 로마병사 470명이 겹겹이 에워싸고는 바울을 보호하여 가이사랴까지 갑니다.

 바울 암살 작전은 특급비밀인데 어떻게 해서 바울의 생질이 알게 되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우연처럼 보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에 우연이 어디 있나요? 지금은 모를 뿐이지 우연은 없습니다. 오로지 신적필연(神的必然)이 있을 뿐입니다. 최근 새벽에 에스더서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란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책이 에스더서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반대가 극심했던 책입니다. 그런데 에스더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나 선명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던 두 권력자의 계획을 우연히 알게 되고 그 사실을 고변합니다. 실사를 해보니 사실이어서 암살계획자 두 사람은 벌을 받고 그 사건은 궁중일기에 기록이 됩니다만, 놀랍게도 국왕암살계획을 고변한 모르드개는 아무런 상을 받지 못한 체 잊히고 맙니다. 그런데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결정적인 순간에 왕이 잠이 오지 않아 궁중일기를 읽다가 그 사실을 발견하고는 모르드개에게 영광스런 상을 내립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하필 그 날 밤 왕이 잠이 오지 않았고, 하필 궁중일기를 읽고 싶었고, 하필 그 방대한 분량 중에 모르드개 고변사건을 기록한 그 부분을 읽을 게 뭐란 말입니까? 우연처럼 돌아가지만 하나님의 철저한 신적필연이 역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입니다.

주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 어떤 고난이 그를 흔들어 놓는다할지라도 주님은 그 사람을 놓지 않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일을 동원해서라도 그 사람을 도우시고 피할 길을 내시고 지키십니다. 결국 거기까지 가게 하십니다.

 

 

 

 

 

 

맺는 말

 

 ○○○ 선교사님이 장례를 다 치르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편지를 받아보면서 데이비스( Joseph Henry Davies) 선교사님이 생각났습니다. 데이비스 선교사님은 호주에서는 유명한 신학교의 교수직을 요청받았었고, 젊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세워 명문사립학교의 기틀을 마련한 교장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만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시로서는 선교의 불모지 조선에 선교사로 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호주선교사이자 최초의 호주인이었습니다. 그때가 1889년입니다. 그런데 쉬지 않고 일한 나머지 천연두와 여러 가지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이국 만리 낯선 땅 조선에서 죽었습니다. 조선에 와서 겨우 6개월 사역하고 죽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시신을 부산 초량의 야산에다 묻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습니다만 호주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그 젊은 선교사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 데이비스 선교사가 못 다한 몫을 우리가 감당하자! 의료시설이 없어 한 번 병을 얻으면 죽을 수 있는 위험한 땅 조선을 향해 헌신하는 젊은 선교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겨우 6개월 만에 죽음으로 사역을 접어야 했던 데이비스의 안타까운 죽음이 불러일으킨 선교의 바람을 타고 70명의 선교사들이 조선을 찾아 선교하였고 그 결과로 부산경남 일대에 많은 교회와 학교 병원들이 세워졌습니다. 호주 선교사님들의 신앙은 철두철미한 신앙으로서 이분들이 세웠던 교회들에서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같은 순교자들이 배출되었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성도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왜 하나님이 때를 늦추시는지, 왜 쉽고 편한 길 있는데 좁고 어려운 길로 내모시는지? 왜 평생을 헌신한 사람이 더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왜 주님의 뜻을 좇아 사는데 더 억울해야 하는지 당장은 모릅니다. 지나야 알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섭리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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