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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행전강해26 미지의 길을 가는 사람 
본문 사도행전 20:17-38 (신약 222) 
날짜 2018-01-07 
설교자 전용표 목사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도에 사시던 외삼촌 가족이 부산 송도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우리 집이 있는 해운대구와는 극과 극이었습니다. 해운대는 부산 동쪽 끝이고 송도는 부산 서쪽 끝입니다. 외삼촌 따라 한 번 가봤던 길인데 무슨 일로 가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제가 혼자서 몇 번 갔다 온 일이 있습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1시간 30분을 가야하는 길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갔지만 졸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서 내려서 몇 번 버스를 갈아탔던가? 어디쯤 가다가 어떤 건물이 나오고 어떤 간판이 나올 때쯤 내렸는가?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외삼촌과 같이 갔던 길을 더듬고 더듬었던 기억이 납니다. 해가 바뀌었지만 해는 어제의 해가 그대로 떠올랐습니다. 직장도 다를 바 없고 가정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인생살이이지만 인생은 항상 새롭고 변수는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마치 잘 모르는 길을 더듬어 찾아가는 겸손한 심정이 필요합니다. 잠언 3장 5~6절에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경험과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여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여러분, 2017년이 행복하셨나요, 힘드셨나요? 2018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아니 어떻기를 바라십니까? 미래는 결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미래의 많은 부분은 지금 나의 자세와 결정에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 앞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달리고 믿음을 지켰던 한 사람 바울을 통해 또다시 부여받은 미지의 한 해를 어떤 자세로 살아야할 것인지 함께 도전 받기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에베소사역을 끝내고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갔다가 육로와 뱃길을 번갈아가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오릅니다. 여러 경로를 거쳐 다시 소아시아 에베소 근처 밀레도라는 항구에 당도합니다. 밀레도는 에베소 남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바울은 에베소를 방문하지는 않고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이별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들에게 고별설교를 하게 되는데, 주옥같은 말씀이요 심장에 새길만한 명설교입니다. 그 설교에서 바울은 자신의 에베소 사역을 결산(決算)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심경(心境)을 밝힙니다. 마지막으로 에베소교회 지도자들에게 당부(當付)도 합니다. 그런 다음 에베소교회 지도자들과 뜨거운 눈물의 포옹을 나누면서 비장하고도 절절한 이별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갑니다.

 

 

 

 

1. 주님이 기뻐하실 원칙을 세워갑시다

 

   3년간 동고동락 했던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만난 자리에서 바울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직감하고는 에베소에서의 자신의 사역을 결산하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돌볼 때에 자신이 보여준 본을 잘 따르라고 아주 당당하게 권면을 합니다. 18절 중반에서 21절까지 보겠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18b~21)

 

 

   먼저 모든 겸손과 눈물로 사역하였다고 회상합니다. 무조건 자신을 낮추고 이리저리 빼고 사양하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겸양지덕)謙讓之德을 곡해한 것입니다. 성경적인 겸손은 정도 이상으로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그것이 진정 겸손이지 겉으로는 못 한다 아니다 하면서 돌아서서는 자기 몫 다 챙기고 속으로는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구한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위선(僞善)입니다. 칭찬하면 차라리 ‘감사합니다’ 받고,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하고, 알아주면 ‘알아줘서 고맙다’하십시오. 그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런 다음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아, 내가 정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지금 주장하는 것을 주님도 인정하실까?’

   바울은 온갖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고 회상합니다. 교회가 왜 복잡해지고 왜 꼬입니까? 주를 섬기지 않고 자기를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통해 내가 복 받고 내가 영광받기를 바라는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면 복잡하게 꼬입니다. 복을 주시든 말든 그것은 주님께 맡기고 나는 그저 주를 섬기면 됩니다. 이것이 힘듭니다. 정말 순수하게 주님만 섬기려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집니다. 져요. 못된 사람 착한 사람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 아픔의 눈물을 삼켜야 될 때가 있어요. 그래도 그렇게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전하여 가르쳤다고 회상합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가르침, 값싼 위로, 휘발성 강한 감정상품 같은 설교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정말 영혼에 유익이 되는 것을 전하고 가르쳤다 이 말입니다. 몸에 유익한 것이 쓰듯이 영혼에 유익한 것도 씁니다. 달달하지 않습니다. 쓴 것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쓴 것이 반성과 회개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21절 끄트머리에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에 가졌던 자세이자 원칙(原則)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 말을 하는데, 여기에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흔히 갖는 아쉬움이나 후회(後悔) 같은 것이 없습니다. 아주 당당합니다. 지켜야할 원칙을 지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입니다. 여러분, 올 한 해는 연말 가서 되도록 후회가 없기를 바랍니다. 원칙을 세우시고 타협 없이 가십시오. 그렇다고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사람은 되지 마십시오. 원칙을 세우되 주님께서 기뻐하실 원칙을 세우신 다음 뿔을 앞세워 줄곧 밀고 나가는 코뿔소처럼 가십시오. 바울을 통하여 에베소교회에 믿음의 원칙이 뿌리내리게 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원칙이 승리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실 것입니다.

 

 

 

 

2. 누군가 져야할 십자가라면 내가 집시다.

 

   바울은 사역하면서 지켜왔던 원칙과 자세를 말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심경을 토로(吐露)합니다. 22~23절을 봅시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22,23)

 

   바울은 자신이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경유지가 많아 여러 성을 거쳐서 가는 길인데 각 성마다 성령께서 계속해서 증언(證言)을 하시는데,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1장 7~14절을 보면 성령이 바울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증언을 주셨는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바울이 가이샤라에 있는 빌립집사 집에 들렀을 때에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발을 잡아매고는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각 성마다 신령한 성도들이 하나같이 이런 예언을 한 것입니다. ‘이번에 올라가면 틀림없이 잡혀서 곤욕을 치르게 될 거야!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자꾸 그런 불길한 장면을 보여주셔!’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한 곳도 아니고 들르는 곳마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하, 성령께서 결박과 환난을 피하라고 미리 보여주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그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21장 12절에 보면 바울의 동역자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완강히 거절하고 그 유명한 말로써 자신의 각오를 밝힙니다. 24절을 읽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4)

 

 

   다른 사람들은 의례히 피하라고 주시는 예언으로 받았는데, 바울은 이러이러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너는 더욱 단단히 각오하고 올라가도록 하라는 경고로 받았습니다. 정면 돌파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만 인생을 살다보면 절대로 피해가거나 돌아가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특히 진리를 증거하고 십자가 지는 일은 피해가면 안 됩니다. 한 번 타협하면 다 내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말로 증언하든 몸으로 증언하든 복음을 증언하는 데는 희생이 따릅니다.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지지 않고 복음이 증언될 수 없고 십자가지지 않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군훈련소에서 겪은 일입니다. 이동 중에 군가를 부르는데 소리가 작으면 조교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낮은 포폭, 난리가 납니다. 모두가 목이 터지라 소리 질러 군가를 부르는데, 한 친구가 립싱크만 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너는 왜 소리 지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 대답이 가관입니다. 자기 목소리를 찬양하는데 써야 되는데, 여기서 성대를 상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낀 참기름 바른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함께 희생하고 고생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을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이것이 한국교인들의 영성이라면 참으로 곤란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지지 않는 교회는 시대로부터 버림받습니다. 한국교회는 역사의 중대시기에 십자가를 외면하고 면류관을 쓰고자 권력과 돈과 기득권과 결탁하는 선택을 한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어쩌면 현재도 그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쉽고 편한 길만 찾아가지 마십시오. 바른 것을 위해, 진리를 위해, 주님을 위해, 소외된 자들을 위해 져야할 십자가가 보이면 어렵더라도 그것을 지십시오. 십자가 지는 길을 외면하고 사는 부끄러운 세대 부끄러운 성도는 되지 마십시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예언을 모두가 ‘피하라’는 소리로 들을 때에라도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며 외치며 십자가를 지려고 앞으로 나아갔던 바울의 모습을 재현(再現)하십시오. 작은 예수, 작은 바울로 사십시오.

 

 

 

 

3. 말씀이 영원한 의지임을 잊지 맙시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대해 가졌던 애착은 매우 컸습니다. 에베소가 소아시아지역의 거점도시이기에 에베소에서 실패하면 소아시아를 놓칩니다. 그러기에 순회전도자인 바울은 이례적으로 3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열정을 쏟아 붓습니다. 그런 교회를 몇몇 헌신된 사람들에게 맡기고 떠나갑니다. 대충 맡길 수가 있나요? 아주 신신당부를 합니다. 지도자라고 함부로 하지 말고 항상 절제하라. 장차 박해와 유혹이 닥쳐 올 것이니 깨어서 대비하라. 그런데 바울이 최종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과 그분의 말씀입니다. 32절입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2)

 

 

  유능한 지도자도 있을 텐데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책임져줄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닙니다. 말씀입니다. 말씀이 박혀야 그 사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고, 말씀이 가슴팍에 새겨질 때 그가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으며,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의 권위에 순복하는 교회가 안전한 교회라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험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서울 내수동교회에서 목회하셨던 박희천 목사님은 저를 비롯한 많은 목회자들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지금 한국의 내놓으라 하는 분들 중 이 분 손을 거쳐간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1.4후퇴 때 북한에서 내려오신 분으로 평안도사투리가 구수한 목사님입니다. 일찍이 미국유학도 다녀오셨지만 목회는 딱 두 가지 가지고 하셨습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미국의 선진프로그램을 다 접하고 오셨지만 그런 것으로 하지 않고 오직 말씀과 기도만 주구장창 파고 드셨습니다. 말씀이 풀리지 않으면 목양실 들어가서 문닫아 잠그고 풀릴 때까지 기도하고 말씀보고 기도하고 말씀보고 하십니다. 목회 하다가 거친 양들에게 들이 바쳐 마음이 아플 때에도 성경책 들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말씀보고 기도하고 말씀보고 기도합니다. 행여 사람을 만나 위로를 구하다가 죄를 지을까 두려워 사람의 위로 구하지 않고 말씀 속에서 성령께서 위로해 주시기만을 바라고 말씀 속으로 도망을 칩니다. 말씀 붙들고 기도하고 하다가 말씀의 위로가 임하면 그저 좋아서 성경책을 머리에 이고는 목양실을 이리저리 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던 분입니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사셨습니다. 영광을 구하지 않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뒤가 깨끗하고 그래서 그분이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요즘 유명했던 분들이 뒤가 얼마나 복잡하고 아름답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평생 외쳤던 분들이 마지막에 하나님의 영광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떠나가는 모습 속에 순수한 신앙을 추구했던 영혼들이 받는 상처는 이만저만 아닙니다. 결국 마지막에 한몫 단단히 챙기는 모습에 기독교는 결국 돈을 위한 종교였다는 비난에 어찌 변호할 말을 잊게 됩니다. 그런데 이 분 박희천 목사님, 그 뒤가 깨끗합니다. 끝까지 그렇게 남아주셔서 고마운 것입니다. 교회도 더 키울 수 있는 분이었지만 더 키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교인들 이름 자녀들 이름 다 기억할 수 있는 만큼만 감당하셨습니다.

   결국 말씀이 우리 인생을 지켜주십니다. 결국 말씀이 흠 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해주십니다. 결국 말씀 앞에 명예도 욕심도 버린 사람의 명예를 말씀이 되찾아 주시고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라! 결국 의지할 것은 말씀입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사랑해야할 대상입니다. 목사도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이라야 합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 해는 어제 우리가 살았던 2017년과 다른 한 해입니다. 반복되는 인생이지만 미지(未知)의 인생이기도 합니다. 후회 없는 한해가 되도록 주님 기뻐하실 원칙을 세워사십시오. 십자가 져야 할 일이 닥쳐올 때 감사히 지십시오. 결국 말씀이 나를 지탱해줍니다. 말씀 붙들고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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