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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찬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본문 고린도전서 11:23~32 (신약 277) 
날짜 2017-11-26 
설교자 전용표 목사 

  주후 100년경 소아시아지역 총독이던 가이어스 플리니(Gaius Pliny)라는 사람이 로마의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는 유대인들이 퍼트린 악의적 평판(評判)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 물의와 폭동을 일으키는 범죄 집단이라고 매도(罵倒)당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때에 믿지 않는 지방총독이 자신이 파악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적은 것입니다. 들어보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를 마치 신처럼 찬양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맹세함으로써 자신들의 모임을 견고히 세워나갔습니다. 이는 어떤 범죄 행위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반대로, 절도나 강도 그리고 간통을 하지 말 것을 굳게 결의하고,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며, 가진 재물이 요구되는 일이 있으면 거절하지 말고 내어줄 것을 서약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임 후 그들은 일단 헤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식사를 함께 나누기 위해 재차 모이는 것이 그들의 관례입니다.”

   플리니가 이 편지를 쓴 이유가 있습니다. 일부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사회악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는데, 자기가 직접 그리스도인들을 조사해 보니 그들을 사회악으로 규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여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결의를 하며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여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황제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어떤 모함과 핍박이 있더라도 모여서 애찬(愛餐)과 성찬(聖餐)을 나누고 또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고 서로서로 격려하고 다짐한 뒤 나가서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 이것이 믿지 않는 권력자의 눈에 비춰진 당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름답지 않습니까, 숭고하지 않습니까? 그 중심에 성찬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찬은 사람을 빛과 소금으로 살도록 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성찬이었습니다.

 

 

 

 

 

 

1. 죄인임을 깊이 자각하고 고백하면서 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찬도 우리 자신을 빛과 소금으로 살도록 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성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는 믿음으로 이 성찬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성령의 조명하심이 있기 전까지 자신이 죄인인 줄을 모르고 삽니다. 충격적인 사건이나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만났을 때 비로소 자신이 죄가 많다는 각성에 이릅니다. 문틈을 통해 한줄기 빛이 들어오면 깨끗해 보이던 방안에 헤아릴 수 없는 먼지가 떠다니는 것이 눈에 들에 들어오듯이 사람이 성령의 조명하심이 있을 때, 달리 말해 영안이 열릴 때 비로소 자신의 죄인됨을 깊이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더니 하나님이 책 세 권을 보여주더랍니다. 자기 죄를 기록한 책이었습니다. 한 권을 펼치니 평생 행동으로 지은 죄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듬성듬성 기록이 되어 있어서 ‘아하, 내가 죄를 많이 짓지는 않았구나!’ 안심을 했답니다. 두 번째 책을 펼치니 거기에는 자기가 말로 지은 죄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흰 바탕이 안 보일 정도로 빽빽하더랍니다. 세 번째 책을 펼치는데, 빽빽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바탕 자체가 까맣더랍니다. 하얀 점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놀라서 이것이 무엇이냐 물으니 ‘이것은 네 마음이다’고 하더랍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육으로 난 사람은 결코 마음의 죄에 대해 민감하지 않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어디까지나 육입니다. 육적인 일만 생각하고 육적인 것만 움켜쥐고자 평생 애쓰고 또 육적인 죄만 깨닫습니다. 이것이 육적으로 난 자의 한계입니다. 성령이 조명하시면 죄가 죄로 드러납니다. 꽤 괜찮던 내가 정말 추하기 그지없는 죄인으로 여겨져 가슴이 쓰라리고 깊은 한숨만 연속으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정말 거룩한 존재와 조우(遭遇)하게 되면 죄덩어리인 추한 자신을 직관적(直觀的)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죄에 대해 무딘 마음으로, 나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살아왔습니까? 성찬은 이러한 자신을 살필 수 있는 기회이기에 은혜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자신을 살피고 떡과 포도주를 받으라 하십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27,28)

 

 

 

 

 

 

2. 예수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셨음을 믿음으로 성찬을 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찬도 우리 자신을 빛과 소금으로 살도록 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성찬이 되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인 된 나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셨음을 믿고 성찬에 임해야 합니다. 24, 25절을 봅시다.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4,25)

 

 

   떡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찢기신 예수그리스도의 살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한방울 남김없이 쏟아내신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저와 여러분이 죄의 형벌을 면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으며,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죄를 해결하는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습관(習慣)을 끊지 못해 죽을 때까지 가져갑니다. 하나의 습관도 끊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데 하물며 죄를 끊겠습니까? 죄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어 그 죄 없는 피를 뿌리고 뿌려야 비로소 끊어지는 성질의 것입니다.

   인도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이 한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인간 대신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며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개미가 떼 지어 가는데 멀리서 차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미떼는 차에 치여 다 몰살하게 될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개미야 개미야, 지금 차가 오고 있으니 빨리 찻길 밖으로 피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는다!’ 아무리 말을 한들 개미가 사람말 알아들을 리 만무합니다. 마음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순간 청년은 선교사님이 해 주시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개미들이 살 길을 가르쳐주려면 내가 개미가 되는 수밖에 없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오셨구나!’ 영원하고 무궁하신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죄 없으신 당신의 아들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는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역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유한(有限)이 무한(無限)을 담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사는 지구도 다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무한이신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을 판단하거나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겸손히 믿고 나아갈 따름입니다. 그럴 때 깨달아지는 은혜가 따라옵니다. 이해되어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때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설(逆說;paradox)'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 죽으심으로 죄의 형벌을 대신 치르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는 믿음으로 참여하심으로 이것이 여러분에게 복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우리가 결국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대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결국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성찬에 임해야 이 성찬이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변화시키는 성찬이 됩니다.

성찬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라는 한 몸에 함께 참예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장벽이 허물어지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좇아 한 덩어리가 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준비자가 미리 잘게 잘라놓은 떡을 사용하지만 원래 성찬의 떡은 한 덩어리 떡을 사용하였습니다. 한 덩어리 떡은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가 다 한 덩어리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성찬에서 떡을 뗄 때에 우리가 하나임을 인정해야 하며, 또한 하나됨을 이루어 나가고자 결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께 받아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부어주신 성령을 좇아 살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그것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면 풀릴 것 같지 않던 미움과 증오도 풀리기를 시작합니다. 미움보다 더 큰 은혜가 채워지면 용서하는 마음이 창조(創造)됩니다. 원래 용서하는 마음은 인간 속에 없는 마음으로서 하나님의 창조로 가능한 마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피는 어떤 장벽도 허무십니다.

 

 

 

 

 

 

맺는 말

 

   따라서 오늘 우리가 성찬을 대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개혁주의교회(改革主意敎會)’에서는 성찬을 행하기 전에 여러 가지를 점검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비방하는 죄를 지은 사람은 성찬을 받지 마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지적받으면서도 자기를 모른 체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성찬을 받지 마시오. 남을 향한 증오와 미움, 시기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자는 성찬을 받지 마시오.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서 사는 사람은 성찬을 받지 마시오. 음란을 범한 자는 서안을 받지 마시오.” 등 성찬을 행하기 전에 여러 가지 항목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의인만 성찬식에 참예하라는 뜻이 아니라 어찌하였든 간에 죄를 회개하고 참예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성찬식에 임할 때 ‘악질적인 면역성(免疫性)’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아무런 감사도 없이, 아무런 회개도 없이 그저 주는 대로 받아 먹고 마시는 것은 악질적인 면역성에 감염된 마음입니다. 이것은 분별없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것으로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의(義)로써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려는 자기의(自己義)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실 때 그들이 잠시 후 자신을 모른다 부인하고 더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자신을 저주까지 하리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익히 아시나 우리를 위해 찢기시고 피흘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찔림이 있더라도 나아가야 합니다. 오히려 나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면 내가 설 수 없다는 그리스도예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오늘 의 성찬은 우리 속에 만성되어진 영적 무딤을 녹이고,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변화시키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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