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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행전강해7 분열의 위기를 이겨내며 
본문 사도행전 6:1~7 (신약 195) 
날짜 2017-08-20 
설교자 전용표 목사 

 

 

  집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집에 들어가기를 싫어합니다. 사흘이 멀다고 부모들이 싸움을 하면 무섭고 불안해서 집을 싫어하게 됩니다. 집안 분위기가 화목하고 평안하면 아이들이 일 끝나면 재깍재깍 집에 들어갑니다. 믿는 자들에게 교회가 집과 같습니다. 교회가 은혜롭고 평안하면 교회 가는 것이 즐겁고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지만, 교회가 갈등이 심하고 싸우고 하면 교회 가는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교회에서 은혜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시험거리만 한보따리 싸들고 오게 됩니다. 교회가 평안한 은혜의 공급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2천 년의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가 평안했던 시간보다는 갈등을 겪은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지난 2천 년간 교회가 자주 겪고 심각하게 겪은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분열의 문제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추수감사절에 떡을 주자는 ‘떡파’와 빵을 주자는 ‘빵파’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갈등을 빚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유치한 갈등부터 시작해서 교회가 그림이나 조각을 사용해도 되는가하는 신학적문제로 인한 갈등까지 실로 다양한 갈등과 분열이 주님의 교회를 괴롭혀왔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초대교회도 내부적으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초대예루살렘교회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식량 나눠주는 구제가 이루어졌는데, 헬라파 사람들이 번번이 소외되는 것입니다. 급기야 불만이 터져 나오고 교회 전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은 이 일만을 전담할 수 있는 사람 일곱을 세워서 그들에게 구제 일을 맡기고 자기들은 기도와 말씀사역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교회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찾아왔습니다.

 

 

 

1. 완전하지 못한 지상교회 : 분열의 발단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초대교회 성도 수가 빠르게 늘어나다보니 그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가난한 성도들에게 양식 나눠주는 일에 차질이 빚어진 문제였습니다.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생산량이 낮고 당시 로마의 통치 속에서 많은 수탈도 이루어지고 하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하루 한 끼를 먹고, 잘 먹는 사람이 하루 두 끼를 먹는 형편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잦은 전란에 시달린 탓에 남자들이 많이 죽고 과부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양식을 마련해서 나눠주는 일이 초대교회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바나바 같은 이들이 땅을 팔아 가져온 돈으로 식량을 마련해서 매일 배급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믿는 자들의 수가 3천 5천으로 늘어나니 식량 배급하는 일도 복잡해지고 일도 많아졌겠지요. 몇 사람 손으로 하기는 일이 방대하고 해서 아마 최종적인 처리는 사도들이 했겠지만 그 일을 거드는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히브리파 과부들에게는 식량을 꼬박꼬박 잘 챙겨주는데, 헬라(그리스)파 과부들에게는 들쭉날쭉 인 것입니다. 여기서 히브리파 헬라파가 나오는데 조금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히브리파는 예루살렘 본토박이고, 헬라파는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헬라파는 세계에 흩어져 살다가 조상들의 땅인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와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인 것이지요.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히브리말을 쓰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말, 그리스말을 씁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히브리식 이름을 주로 쓰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식 이름을 씁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토박이들이니까 인맥(人脈)이나 부동산 같은 것이 헬라파 유대인들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제하는 일도 히브리파 사람들 주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팔이 안으로 굽는 법 아닙니까? 자기네 히브리파 사람들 먼저 다 챙겨주고 난 뒤에 헬라파 사람들 챙기려고 하니까 식량이 모자라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심심찮게 일어나다보니 헬라파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버렸습니다. 그게 1절입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1)

 

 심각한 갈등상황이 곪고 곪아 터져버렸으니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교회의 성숙도가 판가름 납니다. 많은 지상교회들은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겁을 냅니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으려고만 합니다. 그 점에서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 갈등을 해결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저 덮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갈등이 표면화 되었을 때 대개가 분열로 끝이 납니다. 성숙함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2. 초대교회의 해법

 

1) 문제 끌어안기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갈등이 곪고 곪아 터졌을 때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가를 보고 배워야 합니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자 사도들은 진지한 반성 후 해결책을 강구해 모든 이들에게 발표합니다. 2절을 봅시다.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2)

 

 먼저는 사도들이 헬라파 사람들의 원망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지 않고 수용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재적 성향의 지도자들은 불만호소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고 억압하려는 태도를 취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日帝)의 폭정과 이후 오랜 시간 이어진 독재에 길들여져서인지 독재적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들을 카리스마 있다고 여기는 성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서구 교회들에서 우리나라 목회자들처럼 제왕적인 목회를 하면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든지 쫓겨납니다. 정말 성령충만한 교회는 독재적인 리더십이 잘 먹혀드는 교회가 아니라 성도들의 의사가 민주적으로 잘 반영되는 교회입니다. 사도들은 우선 수용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매일의 구제에서 헬라파 사람들을 소외시킨 중간책임자들을 찾아내서 징계를 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서 1차적인 원인을 찾았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꼬리자르기’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도들은 교회가 이렇게 갈등을 빚고 문제가 생기게 된 원인을 어떻게 보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구제 일에만 매달린 것이 1차적 원인이라고 본 것입니다. 엉뚱한 원인분석 같지만 정확한 원인분석입니다. 교회는 모든 것이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치부 따로 장년예배 따로가 아닙니다. 유기체로서 다 연결되어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장년예배에 문제가 생기면 교사로 사역하는 성도들도 영적으로 힘을 잃게 되고 그것이 유치부 예배에도 영향을 주는 식입니다. 사도들은 이러한 전체적인 영적 안목으로 이 사태를 바라 본 것입니다. 그러자 모든 것의 중심에는 자기들이 본질적 사역인 말씀 사역을 소홀히 한 것이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교회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에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선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이 말씀과 기도의 삶에 문제가 없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고, 지도자들의 영적인 이탈이 교회전체의 균형을 깨뜨리지는 않았나를 진지하게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들이 교회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였습니다. 이렇듯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불만을 끌어앉을 뿐 아니라 1차적인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았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자세를 보였을 때 그동안 구제에서 소외되었던 헬라파성도들이 얼마나 위로를 받았을까요?

 

 

2) 역할분담

 

 그렇다고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했다’ 공식사과만 하고 실제적인 조치는 미흡하게 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실제적인 조치를 단행합니다. 3,4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3,4)

 

 일곱을 택하여 오면 그들을 세워 식량을 나눠주는 일을 맡기고 자기들은 그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사도 본연의 사역인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만 힘쓰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 같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자 보십시오. 사도들이 만약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욕심이 있었다면 구제하는 일에서 손 못 뗍니다. 구제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상 돈 줄을 잡고 있는 일입니다. 거기다가 돋보이는 일입니다. 모두로부터 인사 듣는 일입니다. 이거 내려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도들이 만약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구제 일을 붙들고 있었다면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깨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자신들이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자기들이 붙들어야할 본연의 사역이 기도와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거기에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나머지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고 발전하는 길입니다. 몇몇 사람이 실권을 잡고 놓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인정하고 역할을 나눠주고 권한도 나눠주는 교회라야 발전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모든 제자들에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합니다.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택하여 세우지 않고 교회전체 결정에 맡깁니다. 그래서 지금도 공동의회를 통해서 교회의 일군을 세웁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자 일군의 자격이 나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성도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5절에서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먼저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양식 나눠주고, 돈 관리하는데 계산 잘하고 머리 잘 돌아가면 되지 성령 충만이 필요할까 싶지만, 오산입니다. 물질 관리만큼 유혹이 많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물질 관리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이 얼마나 있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물질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거기에 물질을 쓰는 일은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 충만한 사람은 세상 논리대로 물질을 쓰려고 듭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 교회지도자들이 교회 재정도 세상 논리대로 쓰려 하니까 요즘의 교회들이 돈 되는 일에만 손을 댑니다.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들이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며 탄식하시던 주님의 탄식을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 물질을 쓸 때 성령 충만하십시오.

 다음으로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야 했습니다. 지혜란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체를 살피는 안목을 가지고 치우침 없이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일처리 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형평성이 깨어질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실수로 형평성을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친소관계(親疏關係) 때문에 놓칠 때가 많습니다. 친한 사람 친하지 않은 사람, 이거 따지면 반드시 문제 생깁니다. 같은 잘못을 해도 친한 사람은 싸고돌고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냉혹 한다든지, 중책을 친한 사람들 위주로 맡긴다든지 하면 교회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는 사람이 아무리 그렇게 하려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막으십니다. 사람의 도모가 실패하도록 하십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실 자를 세우시고 쓰실 자를 쓰십니다. 이것을 깨닫고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치우침이 없고 사사로움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칭찬받는 사람이라야 했습니다. 성도들에게서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친한 사람 한 둘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격이나 성품이 다듬어져서 원만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를 디모데전서 3장 3절에서는 교회지도자의 자격으로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초대교회의 위대함

 

 

 이런 기준으로 교회가 일곱 사람을 선택하자 사도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여 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일곱 명의 사람 이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5,6절을 봅시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5,6)

 

 중요한 사실은 이들의 이름이 모두 헬라식 이름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모두가 헬라파였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식 이름은 하나도 없습니다. 히브리파는 하나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주류세력은 뭐니 뭐니 해도 본토박이들인 히브리파 사람들인데 돈 줄이 달려있는 중요한 일에 주도권을 헬라파 사람들에게 완전히 내어 줘버렸습니다. 사도들이 한 일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한 일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받은 성령 충만의 진면목(眞面目)입니다. 주도권을 잡으려고 그렇게들 싸우는데, 초대교회는 주도권을 내려놓았습니다. 주도권 내려놓으면 죽는 줄 알고 싸우는데, 초대교회는 그것을 내려놓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유리하고 편한 대로 했던 것이 저 헬라파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고통이 되었다는 걸 모르고 살았구나!’ 이런 반성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모습입니까? 사람은 내가 당한 것만 생각하고 나로 인해 저 사람이 힘들었을 것은 생각지 못합니다만,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나로 인해 힘들어했을 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이고, 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줄 알았던 것이 초대교회의 위대함입니다.

 

 

 

맺는 말

 

 초대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지상교회인지라 갈등이 있었습니다만 이런 갈등을 말씀의 원리로 잘 이겨냈을 때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찾아왔습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

 

 첫째로 말씀이 왕성해졌습니다. 구제의 일을 일곱 명이 맡아주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만 전념하니까 당연히 말씀이 풍부해질 수밖에요. 뭐니뭐니 해도 교회는 말씀이 왕성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자 믿는 자들의 수가 더해졌습니다. 말씀이 왕성하고, 권한을 독점하지 않고 은사에 따라 나눌 때에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세 번째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사장은 예수님을 잡아 죽인 주동세력이자 오순절 성령 사건 이후 전개된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반대하고 핍박했던 주동세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예수의 도에 복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회개하고 돌아온 일대 사건입니다. 자 보십시오. 기득권을 내려놓고 반대파에게 주도권을 내어주었더니 교회의 반대세력이 항복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안에서 싸우면 바깥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안에서 반대파를 끌어안으니까 바깥사람들이 ‘너희들이야 말로 진짜다, 진짜!’ 이러면서 몰려온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안 보는 것 같지만 다 보고 있습니다.

 갈등을 이겨내면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찾아옵니다. 우리교회가 이런 성숙한 모습을 가진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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