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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행전강해3 성령의 창조물인 교회 
본문 사도행전 2:36-47 (신약 189) 
날짜 2017-07-23 
설교자 전용표 목사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깍듯이 예우합니다. 노인이 타면 얼른 일어나 자리로 안내하고 노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어쩌다 미처 노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꾸지람을 듣고, 젊은이들은 꾸지람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런 모습을 의아하게 여긴 한국인 교수가 모스크바 젊은이들에게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더니 젊은이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이 지하철을 저 노인들이 만들지 않았느냐?” 이 교수님이 한국에 들어와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지하철을 저 노인들이 만들었는데, 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 한국대학생들의 대답 또한 어렵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를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왜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가 저 개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구사람들보다 더 비인간적이게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너무 인간미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계층 간의 단절과 지역갈등으로 인한 지역 간의 단절도 모자라 이제는 세대 간의 깊은 단절까지 더해졌습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성령 충만은 개인의 영적체험에 머무는 성령 충만이 아니라 이런 한국사회를 치유해 내는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적인 성령충만을 경험하면 세상이 치유됩니다. 계층, 지역, 세대 간 갈등이 치유되고 다음세대가 치유됩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교회부흥은 그저 사람이 많아지고 재정이 늘어나는 양적증가이지만, 거룩하신 성령께서 만들어 가시는 부흥은 깨어진 세상의 치유와 회복을 동반하는 부흥입니다. 즉 인간의 타락과 죄성으로 산산이 깨어진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다시금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이 땅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으로 가득 차게 되는 부흥입니다.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하신 일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창조물입니다. 오늘은 초대교회의 탄생과정에 드러나는 성령의 교회로서의 참된 모습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령의 교회 구성원 : 회개한 사람

 

 

 

 오순절 성령강림을 놀라워하는 자들에게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설교의 핵심은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죄 없으신 예수를 하나님께서는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이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37)라고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적어도 이들이 돌덩어리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에 못 박은 예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언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소? 빌라도와 대제사장이 못 박았지!’라고 하지 않고 자신들이 한 일이라고 인정합니다. 찔림이 있을 때 갈등(葛藤)하게 되고 갈등이 있어야 새로운 길을 찾게 됩니다. 이들이 걱정스럽게 길을 물었을 때 베드로는 확신 있게 대답합니다. ‘회개하고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8)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0)

 

 

 회개(悔改)하여 죄 사함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회개 없는 구원, 회개 없는 축복을 말하지 않고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회개한다는 말은 참회한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참회는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스스로가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의미이지만, 회개는 인생자체를 바꾸는 전면적인 전환입니다. 가령, 부산의 광안대교가 저 끄트머리가 끊어졌다고 칩시다. 다리가 워낙 크고 길어서 뒤에서 가는 차들은 저 앞에 다리가 끊어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만약 그대로 돌진했다가는 떨어져 죽는 것이지요. 그때 앞에 가던 사람이 차를 세우고 내려서는 옷을 벗어 흔들면서 차를 돌리라고 알립니다. 이때 그 사람은 나에게 참회를 요청하는 것입니까, 회개를 요청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회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회하여 구원받으라하지 않으셨습니다. 회개하여 구원받으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저 내가 조금 잘못했네 하는 정도의 뉘우침으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데 가끔 실수를 할 따름이라는 정도의 뉘우침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자기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영적 가난함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해야 구원받습니다.

 회개한 사람은 참회도 할 수 있지만 참회한다고 해서 반드시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회개한 사람이라야 앞으로도 회개하며 삽니다. 회개함이 없이 예수 믿은 사람은 앞으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없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로 모인 교회는 사람의 소리가 항상 드높고 세상 냄새가 진동합니다. 회개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주님 만난 첫 자리인 회개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회개로 풀어나갑니다.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구원은 반드시 어디로부터 구원받는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한 관념적 구원이 되고 맙니다. 패역하다(σκολίός ; 스콜리오스)는 말은 ‘구부러졌다, 어긋나다, 비틀어졌다, 속이다’는 뜻입니다.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받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 있는 갖가지 세상의 풍조와 진리인양 속이는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인생으로 돌이키라는 긴급한 명령입니다. 회개는 감정적인 것이 아닌 실제적인 삶의 청산(淸算) 전환(轉換)입니다. 깡패생활 하던 사람은 깡패생활 버리는 것이고, 도둑질해서 먹고 살던 사람 굶어죽더라도 도둑질 버리는 것이고, 도박하며 살던 사람 도박 버리든지 손을 자르든지 하는 것이고, 갖가지 투기를 일삼던 사람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 벌려고 애쓰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돈과 수단으로 대하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없고 온통 기계나 물질에 대한 관심으로 위험천만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탐욕을 능력으로 둔갑시키고, 힘으로써 비상식을 일상화시켜버리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갖가지 이유를 달아서 타락한 본성에 면죄부를 남발하는 이 정신 나간 세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 성령의 교회 필수요소 네 가지

 

 

 이렇게 회개하고 패역한 세대의 방식을 버린 사람들로 만들어진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만들어진 전혀 새로운 모임이자 단체입니다. 교회는 패역한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성령께서 친히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질을 갖추고 있지 못한 교회는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42절에서 성령의 교회가 갖추고 있어야할 요소들 네 가지를 말씀한 후에 43~47절까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42절을 읽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2)

 

 

그 네 가지는 첫째, 사도의 가르침이고, 둘째, 성도의 교제이고, 셋째, 떡을 떼는 성찬이고, 넷째, 기도입니다.

 

 

 

 

1) 교제

 

 

 이 기록들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뭐니 뭐니 해도 성도들의 교제입니다. 이들의 교제는 자주 만나서 신앙적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를 넘어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44, 45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4,45)

 

 

 요즘 이단들이 재산 팔아 바치고, 일해서 받은 월급 갖다 바치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초대교회에 일어난 일은 그런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단들의 경우는 거짓된 교리에 세뇌되어서 갖다 바쳐야 천국가고 갖다 바쳐야 복 받는다 생각하여 조건적으로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경우는 거룩하신 성령께서 각 사람 마음에 들어오셔서 타락한 인간 본성이 갖고 있던 끈질긴 소유욕과 이기주의를 깨뜨리시고, 거기에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부으심으로 일어난 자발적인 역사였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내 돈, 내 돈, 내 것, 내 것 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저 사람 불쌍해서 어떻게 해?’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 큽니다. 성령의 사람은 사랑이 소유욕을 항상 이깁니다. 그래서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주머니를 열어 실제적으로 도와줍니다. 그것도 몰래 도와줍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교회는 굉장히 몰인정(沒人情)합니다. 서로서로 도와주는 것이 없습니다. 매우 사무적이고 냉담합니다. 도와줘도 자기 주머니로 도와주지 않고 어쨌든 교회 돈으로만 뭘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해지면 목장으로 모이든 전도회로 모이든 모여서 서로 나누고 돕습니다. 여러분의 목장이 나눔과 섬김이 풍성한 목장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성찬과 애찬

 

 

 두 번째로 떡을 떼는 것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좇아 매주 성찬식(聖餐式)을 행하였습니다. 매주 행한다고 형식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감정을 쥐어짜는 식이 아니었습니다. 성찬을 행할 때마다 또다시 욕심과 욕망을 좇아 옛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던 자신의 지난 일주일을 깊이 회개합니다. 형제를 미워한 것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회개합니다. 그러면서 또다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또다시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묵상합니다. 식어진 가슴팍에 예수를 다시 새겨 넣고 예수로 재무장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작은 예수가 되어 살겠노라 저마다 다짐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찬식이었습니다.

46절을 보면 성찬은 성찬으로 끝나지 않고 성도 간 사랑의 식사인 애찬(愛餐)으로 이어졌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6)

 

 

 주님과의 관계만 중요시 여기고 형제와 성도와의 관계는 아랑곳하지 않는 기형적 신앙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를 바로 한 뒤 반드시 형제와 성도와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이어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중요한 것처럼 여기는 반쪽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두 막대기가 있어야 하며, 두 막대기가 따로 따로 놀아서는 십자가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함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어떤 계명이 크고 중요한 계명인가를 묻는 율법사에게 주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고 답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비중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함께 가야하고 함께 강조하는 교회라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모함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거기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납니다. ‘지난 유월절 저녁 성찬 때 주님과 함께 마시던 피잔~! 그 일이 문뜩 생각이 나면 어느새 두 뺨에 주르르 눈물만이 흐릅니다~!’ 이런 심정으로 ‘지난 주 예배 때 나는 이런 은혜를 받았어! 그래서 이렇게 살고자 결심했어!’ 그러면 듣는 사람도 같이 도전을 받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동반성장(同伴成長)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모함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모이면, 험담과 자랑과 도마질로 영적인 동반하락(同伴下落)이 일어납니다. 최근 우리 젊은 성도들 간에 영적 동반성장의 분위기가 있는 것을 봅니다. 성령께서 그 만남들을 더욱 귀히 보시고 은혜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3) 기도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가 되게 하는 세 번째 요소는 기도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루에 3천 명 회개하는 성공(?)을 거둔 뒤에도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고 여전히 기도하였습니다. 42절에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없어도 목장모임도 할 수 있고, 나눔도 할 수 있습니다만 기도가 없으면 형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마음이 없어져요. 금방 종교생활화 되고 각질화(角質化)됩니다. 기쁨으로 시작한 것이 의무감으로 하게 됩니다. 힘들고 원망이 일어나고 시험에 들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자리에 꼭 나오십시오. 기도하는 자리에 와서는 출석도장 찍고 가지 마시고, 심령이 열려서 기도하는 단계에까지 간 뒤에 일어나십시오. 그래야 율법적 신앙생활이 아닌 영적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여전히 기도하고 오로지 기도하였습니다.

 

 

 

 

4) 가르침

 

 

 다음 요소는 사도들의 가르침입니다. 42절을 보면 가장 먼저 나옵니다만 이것은 사실상 다른 모든 요소들의 밑뿌리와 같은 요소라서 가장 나중에 다룹니다. 초대교회는 놀라운 사랑의 나눔이 있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재현하는 성만찬이 있었고,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좇아서 했습니다. 42절을 다시 봅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2)

 

 

 사도들의 바른 가르침 위에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초대교회는 많은 체험이 일어난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체험을 다 믿지 않고 사도들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열정이 넘쳤습니다. 열정이 넘친다고 하고 싶은 것 다 하지 않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말은 자의적인 가르침이나 인간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적인 가르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이라고 하면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모아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올바른 믿음을 모아둔 것이 됩니다.

 43절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거룩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교회였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보면 ‘성도들의 영혼에 두려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놀랍게 성장하고 서로 나누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지만 이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이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이 경고망동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사도들이 전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들이 있다 보니 말씀을 들을 때 더욱 두려운 심정으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부흥사들같이 ‘벌 받는다, 하나님이 치신다’ 이런 말을 해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진실함으로 인해 생기는 두려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웃고 즐기고 교제하다가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영혼의 유익입니다.

 

 

 

 

 

 

맺는 말

 

 

 

 이런 요소들을 가진 교회가 어떻게 부흥이 안 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가면 회개하여 사람이 변화되고 세상의 패역한 모습을 버리는 역사가 일어나고, 서로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각 사람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으며, 진리의 말씀 앞에 거룩한 두려움으로 서는 교회는 목마른 영혼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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