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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욥기강해7 동문서답 하나님을 만나다 
본문 욥기 41:11-42:6 (구약 802) 
날짜 2017-06-18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욥기 자체가 어렵듯이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인 38~40장도 읽어보면 쉬운 듯 어렵습니다. 한 절 한 절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다. 읽어보면 땅과 바다를 지으신 이야기, 자연의 순환을 만드신 이야기, 갖가지 동물들에게 독특한 습성을 부여하신 이야기 뭐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속 시원하게 욥아, 실은 사탄하고 나하고 내기를 하나 했는데, 그 내기 때문에 네가 힘들었다, 미안하게 됐다이런 말씀은 하지 않고, 뭐 세상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이야기, 동물들의 습성을 만들어주신 이야기, 엄청난 괴물 같은 두 동물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동물의 특성 같은 뚱딴지같은 이야기만 하신다는 점입니다. 동문서답(東問西答)하신단 말입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런 말씀만 계속 하시는데 욥은 그 말씀을 듣고 회개(悔改)를 한다는 점입니다. 부전자전이라고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동문서답 잘하십니다. 그런데 동문서답 같은 말씀하실 때 거기에 깊은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38~40장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말씀만 하시는가, 무슨 뜻인가?’ 이 물음을 가지고 들어갈 때 이해의 문이 열립니다.

 참고로 먼저 말씀드려 놓습니다. 40장에 나오는 베헤못이나 41장에 나오는 리워야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들의 생김새를 말씀하시는 것을 읽어보면 과연 이 짐승들이 뭘까? 꼭 공룡 같단 말이지요.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너무 그 궁금증만 붙들고 늘어지면 말씀의 본질을 놓치고 삼천포 횟집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도 있는 동물인지 아니면 이미 멸종한 어떤 동물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가히 하나님의 걸작품이라 할 만 한 거대하고 특별한 동물로 보입니다. 이 정도로만 정리하고 넘어가는 편이 좋습니다.

 

 

 

 

 

 

1. 억울함과 부당함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부당한 현실과 악인이 잘 될 수밖에 없는 비틀어진 세상에 대해 욥은 고민하고 반항했습니다. 왜 세상은 정직한 사람은 손해 볼 때가 많고 부정직한 사람은 편하게 갈 때가 많나 이거지요. 공의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 이런 항변(抗辯)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 입장에서 욥은 특이한 사고구조를 가진 삐딱선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죄 짓고 성실하지 못해서 쫄딱 망해놓고선 세상이 비틀어져서 그렇다는 둥 세상 탓, 하나님 탓만 늘어놓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욥이 틀리지 않았다고 하셨다는 점입니다. 물론 욥이 자신의 억울함을 너무 강하게 호소하다보니 도가 지나쳐서 하나님을 문제 있는 분으로 만든 것에 대해서는 질책하셨지만, 427, 8절을 보면 하나님 당신에 대해 욥의 친구들은 틀린 말을 하였고, 욥이 옳은 말을 하였다고 인정도 해주셨다는 점입니다. 427절을 한 번 봅시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7)

 

 

 욥의 문제제기가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38장부터 39장까지 욥의 고난의 원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세상 창조하신 이야기와 갖가지 동물들 생태에 대해서 장황한 말씀만 하셨는가? 그 첫 번째 의미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봅시다. 3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정하시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일,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정하신 일, 물의 순환을 정하신 일 같은 것을 말씀하시고, 39장에서는 사자, 까마귀, 산 염소, 들나귀, 들소, 타조, , , 독수리 같은 동물들의 습성을 말씀하십니다. ‘그 지혜를 네가 다 알 수 있느냐? 거기에 무슨 부당함이나 실수가 있느냐? 없지 않느냐? 설령 너의 인생에 억울함이 있고, 세상에 부당한 일들이 일어난다 해도, 이 모든 것을 만들고 운행하는 내가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진단 말이냐? 너는 정녕 그런 하나님을 믿고 살아왔단 말이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부당함이 있다고 해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부당한 것은 아닙니다. 전도서 7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7:29)

 

 

 하나님은 인간을 정직하게, 부당하지 않게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타락해서 세상을 정직하지 않게, 부당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변질(變質)시켜놓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겪는 억울함과 세상의 부당함은 하나님을 탓해야 할 조건들이 아니라 인간의 악함을 탓해야할 조건들입니다. 하나님이 부당하다고 따져야할 이유들이 아니라 인간의 악함을 슬퍼하고 탄식해야할 이유들입니다. 40장과 41장에서는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어마어마한 짐승을 말씀하시면서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들을 길들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친히 만드셨고 지금도 다스려 나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네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그 세상의 악함과, 네가 억울하다고 여기는 그 억울한 일까지 내가 못 다스릴까보냐? 걱정하지 말아라, 그것까지 내가 다 다스리고 있다!

 사람이 억울함 때문에 죽습니다. 억울함을 소화시키지 못하다가 병도 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어디를 봐도 욥이 왜 이런 억울한 일을 겪는지 원인을 말씀하시는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원인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나의 억울함과 세상의 부당함까지도 손아귀에 잡고 계신다,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신뢰가 더 중요합니다. 결국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나의 억울함, 세상의 부당함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2. 의심을 통과한 신앙

 

 

 

 

 그리고 한 가지, 하나님께서는 욥의 의심과 반항, 그리고 방황을 인정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단들이나 사이비단체에서는 맹목적 신앙을 강조합니다. 의심하지 않고 무조건 믿음을 세뇌(洗腦)시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닌 정통교회들에서도 무조건 믿는 것, 무조건 따르는 것을 좋은 믿음이라고 가르쳐 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을 그렇게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의심(疑心)을 거친 믿음을 가르칩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도 자식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해 의심하고 웃었드랬습니다. 의심을 거쳐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받았던 베레아 사람들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정말 맞는 말인가 의심하면서 성경을 찾아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나옵니다. 의심을 거쳐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덮어놓고 믿는 믿음보다는 건전한 의심과 비판력을 가진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꼬투리 잡고 시비하는 것을 건전한 비판력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의심을 거친 믿음이 더 건강하고 더 견고합니다. 한국교회가 강요해 온 맹목적 신앙이 결국 한국교회의 자정능력(自淨能力)을 소멸시킨 주범입니다. 덮어놓고 믿기보다는 정직한 의심이 건강한 태도입니다.

 한국교회가 청년들 떠나간다고 걱정하면서 그들을 잡아둘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도입하기보다는 과연 오늘날 청년들이 쏟아내는 비판과 의문에 성경에 바탕을 둔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을 역량(力量)을 갖추었는가를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들 이탈현상을 막아낼 방도가 없습니다. 청년들도 청년의 때의 특권을 놓치지 마십시오. 청년의 특권은 비틀어진 것에 대한 무대책의 비판정신(批判精神)이고 시대를 논하는 청년정신(靑年精神)입니다. 밥 안 되고 돈 안 되는 비판과 고민, 방황과 도전이 청년기의 특권입니다. 25살 나이에 포로로 끌려갔던 청년 에스겔은 왜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는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청소년기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은 앞으로의 시대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섭리를 놓고 고민하다가 역사의 이치를 터득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왜 교회가 이러해야 하는가? 오늘날 기독교는 왜 이렇게 무력하게 되었는가? 우리 교회의 10년 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기독교가 이 시대의 소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과 의문을 품고 말씀의 바다에 빠져 보시고, 역사에도 빠져보고, 토론에도 빠져보십시오. 청년기를 이렇게 치열하게 보낸 사람이 내일이 들러리가 아닌 주역(主役)이 됩니다.

 맹목적이고 광적 신앙으로 극복하려 들어선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정직한 의심을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정말 확고한 하나님 주권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하나님 주권신앙은 가히 세상이 어떻게 흔들어놓지를 못하는 신앙이 되어 내 인생을 견고히 지켜주는 것입니다.

 

 

 

 

 

 

3.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되어 본 신앙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봤을 때 진짜 자신을 알게 되고 참 하나님 주권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세상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이야기, 동물들의 습성을 만들어주신 이야기, 엄청난 괴물 같은 두 동물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동물의 특성 같은 뚱딴지같은 이야기만 하시는가? ‘욥아, 실은 사탄하고 나하고 내기를 하나 했는데, 그 내기 때문에 네가 힘들었다, 미안하게 됐다, 내 다 회복시켜 줄테니 이해해라하나님께서 뭐 이래야 되는데, 도리어 욥을 몰아세우면서 질문공세를 퍼부으시는 것입니까? “내가 땅의 기초를 세울 때 그 기초를 어디에 두었는지 네가 아느냐? 바다가 생겨날 때 더 이상 경계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가둔 자가 누군지 아느냐? 바다의 깊은 심연이 어떻게 생겼으며, 우박은 어떻게 만들어져 내리는지, 번개의 원리와 하늘의 별자리들과 천체의 운행에 대해 너는 얼마나 아느냐? 들나귀 들소 타조 말 매 독수리 이런 것들에게 고유한 습성을 네가 주기라도 했느냐?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베헤못을 낚시 바늘로 꿸 수 있느냐?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느냐? 그것과 맞짱 떠서 격동시켜 볼 수 있느냐?” 틈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질문공세를 퍼부으시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네가 얼마나 왜소(矮小)한 존재인지, 얼마나 아무 것도 아닌지,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지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문 공세에 욥은 중간 중간 대답을 합니다. 404절입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

 

 

 나는 의롭다, 나는 죄 짓지 않았다, 하나님이 부당한 것이다, 큰소리치던 그 말은 다 어디 가고 나는 비천한 존재라고 합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만난 자의 진정한 반응입니다. 423절을 봅시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3)

 

 

 내가 안다고 생각하고 내가 맞다 생각하고 그렇게 말을 쏟아냈는데, 하나님 만나고 나니 정말 무지의 소치(所致)였습니다.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질문 공세를 속사포처럼 쏟아내신 목적은 욥 네가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정말 티끌 같은 존재입니다라고 네 마음으로 인정하고 네 입으로 진실 되게 고백할 때까지 나는 너를 계속 몰아붙이겠다이 뜻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여러 단계를 거쳐 해오셨습니다. 우선은 재물의 옷을 벗기셨고, 평안하던 가정이 흔들리게 하셨고, 건강을 거둬가셨습니다. 네가 걸치고 있던 재물의 옷을 벗으니 네가 누구로 느껴지느냐? 몸이 병들고 혈기가 꺾이니 네가 누구로 느껴지느냐? 사회적인 지위가 다 사라지니 네가 누구로 느껴지느냐? 도대체 내 앞에서 너의 진짜 모습이 무엇이냐? 너는 네가 누군지 알고 지금껏 말하고 살아왔느냐? 앞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너는 내 앞에 서야할 텐데 네가 누구인지 한 마디 할 말이라도 찾고 나를 만나야 되지 않겠느냐?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좀 죄송한 이야기 하나 합니다. 어떤 문제가 계속 발생되는 교회의 핵심적인 성도와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성도는 재력이 있는 사람으로 그 교회를 설립한 사람이자, 선교지에 학교를 하나 세워서 선교활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주변으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지요.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그 사람에게서는 자부심은 충만하게 느껴지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고백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니까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에게 절망하였습니다. 하나님 위하는 줄 알았던 일들이 하나님 방해하는 일이었고, 맞다고 여겼던 교리들이 인간의 족쇄였고, 자랑거리였던 자신의 이력들이 냄새나는 배설물이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벗어던지니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이 복이 되었습니다. 그 절망으로 몸부림치고 부르짖으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참된 지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실 수 있는 편리한 지팡이가 됩니다.

 여러분,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고백해야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내가 가장 비천한 존재, 정말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비참한 마음으로 느끼고, 그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깊은 한숨을 토해낼 때 회복의 문이 열립니다. 천하를 통일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자기도취(自己陶醉)에 빠졌다가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고 이슬을 맞고 잠을 자고 손톱은 새발톱처럼 되자 비로소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게 되었지요. 그러자 다시 왕위를 회복하는 일이 열렸습니다(4:28~37). 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42:6)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티끌과 재 같은 존재임을 깨닫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선물은 비참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라고 하셨고,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고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거절치 아니하신다’(51:17)고 하셨습니다.

 

 

 

 

 

 

맺는 말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티끌같은 존재입니다. 이 고백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면 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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