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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욥기강해6 하나님과 화해하기 
본문 욥기 35:1-16 (구약 795) 
날짜 2017-06-11 
설교자 전용표 목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전에 맞았던 말이 틀린 말이 되기도 하고, 틀린 말이 맞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가난한 자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말이 맞는 말이었습니다만 지금 유럽에서는 더 이상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서는 안 되고 물고기를 줘야한다는 말이 맞는 말이 되고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점점 사람이 하는 일을 다 차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일거리가 없어집니다. 돈을 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국가들은 나라가 국민들에게 먹고 사는데 필요한 기본급을 지급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진리는 수시로 변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히 불변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수천년 전 기록된 말씀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참된 인생이 무엇인지를 성경만이 밝히 보여줍니다. 때로 이 말씀이 어려울지라도 이 말씀 속에 길이 있습니다.

 오늘도 욥기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혜가 임하길 바라고 축복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에 비하면 까마득한 후배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선배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지혜자라고 자처하는 선배들이 끼워 맞추기식 수사로 생사람 잡고 있고, 또 욥은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다보니 너무 도가 지나쳐서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는 식으로 말을 하지(32:1~5). 참다못해 나서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길게 합니다. 32~37장까지가 다 엘리후의 말입니다. 욥의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욥에게만 말을 합니다. 잘 들어보면 특별한 건 없습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 욥의 세 친구들이 했던 말의 재탕이 대부분입니다만, 그 중에 몇 가지는 귀담아 들을 일리(一理)있는 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35장에서 엘리후는 욥에게 그만 신앙의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권면을 합니다.

 

 

 

 

 

 

1. 절대적이신 분임을 깨닫고 화해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헌신하고 충성하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충분한 보상을 주시지 않았다고 여겨질 때입니다. 욥은 자신이 신실한 믿음으로 살았으나 남들은 겪지 않는 재앙수준의 고난을 겪게 되자 하나님께 큰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가와 보상을 바라고 신앙생활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믿음으로 의롭게 산 사람이 악인보다는 나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럴 때, 신앙의 회의(懷疑)가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고 또 충성하고 헌신한 것이 헛되게 느껴지는 겁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 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3,4)

 

 

 믿음으로 살아봤자 덕 되는 것 없어! 정직하게 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가난뿐이야! 져주고 양보해봤자 누가 알아주나? 오히려 더 무시하고 더 짓밟힐 뿐이야! 349절에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다 해도 덕 볼 것은 하나도 없다, 아무짝에도 도움 안 된다고 합니다. 922절에도 보면 욥은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똑같이 멸망시키신다, 하나님은 흠 없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똑같이 대우하신다!’는 불만을 토해낸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엘리후가 말하는 겁니다. 5~7절을 봅시다.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5~7)

 

 

 ‘땅위에 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 저 높이 떠다니는 구름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같은 사람에게나 손해를 끼칠 뿐이지 하나님께 손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의로운 일을 한다면 같은 사람에게나 영향을 주지 하나님께는 하등의 영향도 주지 못한다!’ 이 말입니다. 조금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야구선수 박찬호선수 아실 겁니다. 박찬호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 가서 10년 동안 뛰면서 번 돈이 2천억 원이나 된다고 그래요. 그런데 장인어른 되는 사람이 딸이 박찬호선수에게 시집가서 힘들게 살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 시집보내면서 가난한 남편 만나서 힘들게 살지 말라고 돈을 좀 챙겨줬는데, 1조 원을 챙겨줬다고 합니다. 장인은 돈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요?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박찬호선수가 평생 모은 2천억을 옆에 갖다 놓아도 표도 나지 않는 정도는 되겠지요? 절대적인 수준입니다.

 엘리후의 말은 바로 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主權)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욥의 세 친구들의 말처럼, 때로 욥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고 충성 헌신 봉사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하게 산 사람, 충성도 헌신도 봉사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복을 안 주시고 해야 된다고 은연중(隱然中)에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충성봉사헌신 좀 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된다고 여깁니다. ‘적어도 이 정도는 부어주셔야지!’ 기대도 하고, ‘아니 그토록 충성하고 헌신했는데 이런 정도도 안 들어주신단 말이야?’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마음 내려놓으십시오. 헛다리짚으신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뭘 좀 해드린다고 하나님의 영광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좀 죄 짓는다 해서 하나님 영광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절대적인 영광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해 드렸다는 생각같이 위험한 생각이 없습니다. 저 높이 떠다니는 구름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해 보겠다는 생각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신앙을 자랑하시자 사탄이 걸고넘어진 것이 뭡니까? 대가없이 하나님 사랑하고 헌신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장담하신 것이 욥은 달라, 대가 없이 순수하게 나를 사랑하는 믿음이야! 하신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은 이겁니다. 우리는 그저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자들로 죽을 때까지 빚 갚는 인생입니다.

 

 

 

 

 

 

2. 하나님 자체를 구하고 화해하십시오

 

 

 

 

 

 

 욥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궁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엘리후 또한 욥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가 하는 말 자체는 굉장히 일리가 있습니다. 또 이어지는 말을 보십시오. 9~10절을 봅시다.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9,10)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학대, 고난으로 바꿔 읽으면 됩니다. 고난이 많고 그로 인해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맞는 말이지요. 고난 없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원하고 바라고 부르짖잖아요? 때로 부르짖는 대로 응답을 받기도 합니다. 해결을 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입니다. 해결되면 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이 되어야 하는데, 문제 해결 되고 나면 더 이상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습니다. 진짜 신앙은 하나님 자체를 알아가고,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고, 하나님 자체를 구하는 것인데, 거기까지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중단하는 겁니다. 하나님 자체를 구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자체를 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해결책을 찾거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찾아 매달리지, 하나님 자체를 더 알기 위해, 하나님 자체를 더 사랑하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은 많다, 적다? 적다, 이 말입니다. 엘리후가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더라는 겁니다.

 누가복음 1711~19절을 보면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가 나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고쳐달라고 왔길래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고 그대로 했을 때에 열 명 모두가 깨끗이 고침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하고 영광 돌린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난과 역경, 문제, 문제해결까지, 이 모든 것은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고난과 역경,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돌아서면 안 됩니다. 그때부터는 진짜를 구해야 합니다. ‘아니,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신가? 누구시길래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건가?’ 그분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얼마 전 전에 가르쳤던 청년이 결혼한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많이 아끼던 제자였습니다. 이 청년에 관한 기억이 많습니다. 방학이 되면 두달 동안 매일 아침 모여 성경묵상(Quit Time; 규티)모임을 가졌습니다. 대학생들이 방학이 길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청년은 차를 타고 오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 나온 지 1년이 채 안 되었던 때입니다. 그때 성경묵상을 가르쳐 주면서 제가 강조했던 것이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매일 두 사람씩 남을 위해서 기도해라, 네 기도 못해도 남을 위한 기도는 빠지지 말라였고, 두 번째는 그날 묵상 본문을 잃고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가장 먼저 알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 간 120명을 위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매일 한 두 가지씩 발견을 해 갑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틀이 잡혀 갑니다. 이 청년이 교회 나오게 된 이유는 50만원 돈 때문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는데, 교회 다니는 친구로부터 우리교회는 대학입학 할 때 장학금 50만원 준다는 말을 들은 겁니다. 그래서 나왔습니다.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이제 돈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때문에 나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를 보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무엇부터 구합니까? 하나님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 뜻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합니다. 우리의 필요는 나중에 구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은 자기 것 나중에 구해도, 아니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하고, 남의 것을 먼저 구하다가 자기 것 구하는 기도 건너 뛰어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바를 아시는 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바보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무엇을 구하십니까? 이 기도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당신은 누구이시며, 나는 누구입니까?” 이것만 붙들고 기도해도 됩니다. 정말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사실 이 기도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려고 애쓰십시오.

 

 

 

 

 

 

맺는 말

 

 

 

 

 

 

 하나님께서 욥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요구하시는 신앙은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수준이 유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석 같은 신앙입니다. 신앙의 회의주의에 깊이 빠져있는 욥에게 엘리후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라고 권하고, 문제해결이 아닌 하나님 자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이겨나갈 것을 권합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없는 신앙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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