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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욥기강해5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 
본문 욥기 23:1-17 (구약 783) 
날짜 2017-06-04 
설교자 전용표 목사 

 

 

  이번에 노회임원들이 23일 간 친목회를 다녀왔는데, 우리가 탄 차가 신호를 받아 좌회전을 하는데 옆의 차가 좌회전 차선에서 갑자기 직진을 하는 바람에 급부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 찰나의 시간, 모두가 놀라 어어어!”라고 비명만 지르는데, 한 목사님은 어허, 뽀뽀하려고 저렇게 달려들면 피할 수도 없고 난처해요!”라고 합니다. 순간, 우리는 놀란 것도 잊어버리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부서기 목사님이셨는데, 그분의 구수한 입담 덕에 자칫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뻔 했던 23일이 웃음꽃으로 채워졌습니다. 나들이 갈 때 입담이 좋은 사람이 끼여 있으면 서먹하지 않고 재미나고 좋지요. 반면 말수 적은 사람들끼리 차를 타면 침묵(沈黙)이 흐를 때가 많습니다. 침묵의 시간, 쉽지 않지요. 침묵의 시간은 대개 어색한데, 예외가 있습니다. 서로 친할 때입니다. 친하면 말없이 가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깊은 신뢰가 쌓인 사이에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고상함이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겪게 되는 힘든 시간이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그분의 임재를 깊이 체험하고, 기도 응답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주일이 그렇게 기다려지고, 교회가 그렇게 좋고, 교회 성도들이 다들 천사로 보입니다. 이런 시간이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때도 찾아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도 그분의 임재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고, 고난 속에서 간절히 기도드리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집니다. 신앙의 의욕이 떨어지고 시들시들해집니다. 더 이상 성도들이 천사처럼 보이지도 교회가 거룩한 곳으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1. 절박한 순간 만나는 하나님의 침묵

 

 

 

 

 

 

 극심한 고난을 당한 욥을 더욱 힘들게 한 이들은 가까운 친구들이었습니다. 남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척하고, ‘이래서 이런 것이 왔고, 저래서 이렇게 되었다며 함부로 쏟아내는 말들은 위로가 아니라 면도칼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죄가 있어서 고난당한다면서 죄를 회개하라고 합니다. 급기야 욥이 지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죄 목록까지 제시하면서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하면 용서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고 합니다. 말 자체는 맞지만 모든 상황에 다 맞는 말은 아닙니다. 욥의 고난은 죄인(罪人)의 고난이 아니라 의인(義人)의 고난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조건 없는 믿음인가를 알아보려는 시험(test)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분석도 처방도 맞지 않습니다. 너무나 답답한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털어놓고,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 받고 싶어 합니다. 또 그럴 자신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23장은 욥이 자신의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목입니다. 10~12절을 먼저 봅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10~12)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시는데, 이 연단의 과정을 다 통과하고 나면 아마 나는 순금 같은 존재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로 알려진 이 구절은 아마 욥기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 구절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당황스러웠습니다. 10절은 이런 의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하나님이 다 아실 것인데, 나를 테스트해 보시면 내가 불순물 없는 순금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욥이 하나님께서 제발 자신의 결백을 알아주십사하고 하소연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문맥적으로도 맞아떨어집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우리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제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아무도 제 억울함을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제발 저의 억울함을 밝혀주세요!’ 욥의 기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박한 때에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입니다. 8~9절을 봅시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8,9)

 

 

 절박하게 기도하는데 억울함이 풀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방을 찾게 해주세요, 돈이 얼마 필요해요, 뭐 이런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곤 하던 하나님께서 인생의 큰 고비 앞에서 그토록 부르짖는 기도에는 묵묵부답이신 거예요.

 

 

 

 

 

 

2. 쉬운 길은 없습니다

 

 

 

 

 

 

 그럴 때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요술램프를 찾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가려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가는 것이 능사(能事)가 아닙니다. 나방이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는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좀 쉽게 나오라고 가위로 잘라 구멍을 내줬답니다. 나방이 죽었어요. 힘들게 뚫고 나와야 살아요. 쉽게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수학에 천재는 존재합니다. 음악에 천재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문학작품은 인생을 깊이 깨달은 사람만이 쓸 수 있습니다. 글 솜씨 타고 났다고 어린 아이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같은 작품을 쓸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찾아오는 인생을 깊이 경험한 사람만이라야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지라도 우리는 쉽게 가는 길에 손을 대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친구목사님과 만나 교제를 하는데, 목사님 사모님이 전화를 하시는데, 들어보니 집안의 누구와 상담을 합니다. 무슨 어려운 사정이 있나본데, 자꾸 용한 분한테 응답받으러 찾아간다는 걸 사모님이 말리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지 말고 답답하고 오래 걸리더라도 네가 직접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씨름해라!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목사님과 사모님은 조금 특별한 인생길을 걸어오신 분들입니다. 목사님은 해군사관학교 졸업하고 해군장교로 살아가다가 스스로 전역을 하고는 늦게 목회를 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사관학교 출신자들이 군대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실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가지고 안 되더랍니다. 진급심사 때가 되면 적어도 5천만 원을 몰래 갖다 줘야하고 그 안에도 온갖 사조직 라인들이 있어서 그 라인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 불의한 현실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의 신앙양심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부르짖고 기도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쉽게 뚝딱 승진시켜주시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불의한 현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민하고 버티다가 군인으로서의 생활을 접었습니다. 목회하려고 그만둔 줄 알았는데, 목회는 그만두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길을 찾다가 나중에서야 만난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캄캄한 터널을 걸어오면서 이 분들이 배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아차리는 영적인 감각입니다. 그것 가지고 지금 목회하고 계십니다. 누구한테 가서 기도 받고 대신 응답받는 방식으로는 생겨날 수 없는 영적 감각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 우리의 영적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예리하게 발달하게 됩니다. 이것이 침묵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려는 바입니다. 절박할수록 성경 한 권 들고 골방으로 들어가십시오. 하나님이 침묵하실수록 우리의 영적감각은 더욱 예리하게 세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3. 새로운 하나님에 눈을 뜰 때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을 때, 부르짖어도 묵묵부답이실 때, 하나님은 없는 것일까요?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나만 혼자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은 하지 않는 생각이고 고민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바람을 접지 않은 사람이 하는 생각과 고민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위해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 보았지만 욥은 침묵하시는 하나님만 경험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든지 어떤 신기하게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든지 해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도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아주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 어떤 남학생이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짝사랑만 하다가 편지로 마음을 전했습니다. 답장이 왔는데 간접적으로 표현을 했지만 여학생도 마음이 있음을 살짜기 드러낸 답장이었습니다. 남학생은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학생이 너무 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서 집에 찾아갔습니다. 소심한 학생이었는데, 그날은 얼굴을 못 보면 죽을 것만 같아 용기를 내어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대답이 없습니다. 집안에 있는 것을 알고 왔는데 말이지요.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한 번 더 용기 내어 불렀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여학생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학생은 초라한 자기 집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까? 많은 것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13~17절을 보시면 욥이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오랜 시간 경험하면서 느낀 바를 말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13~17)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하나님은 누가 뭐라고 하던 간에 당신이 정해놓으신 뜻대로 그냥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어째서 의인이 고통당하고, 억울해야 합니까? 왜 저런 불의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설쳐대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아무리 억울하게 항거하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야박하리만큼 당신이 뜻하신 대로 하신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당한 고난 때문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고 이런 분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해주시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하시는 분이다하나님에 대해 아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의롭게 산 자신을 고난 속으로 내동댕이치시고, 억울하다고 부르짖어도 들은 채 만 채 하시는 하나님을 겪고 보니까 그 하나님이 너무 생소하고 무서운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욥이 배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몇 분의 하나님을 만나보셨습니까? 여러분이 알고 계신 하나님의 얼굴은 몇 개나 됩니까? 제가 아는 하나님은 적어도 얼굴이 네 개는 됩니다. 고등학생 때 만난 하나님은 죄가운데서 저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때는 기도하면 재깍재깍 들어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제 속의 쓴뿌리를 새벽마다 치유해 주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만난 하나님은 불의에 힘없이 당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눈물 흘리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정의에 편에 서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만난 하나님은 때리는 사람과도 함께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맞는 쪽 사람과만 함께 계신 줄 알았는데 때리는 쪽과도 함께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왜 그쪽에 서 계세요. 그런 하나님 마음에 안 듭니다.’ 내가 움직일 수 없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맞은 자나 때린 자와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눈물 흘리시고 함께 싸매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당연시 여기지 마십시오. 고민하십시오.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은 몇 개의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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