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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

2017.04.18 21:23

양승훈전도사 조회 수:38

제목 부활의 증인 
본문 사도행전 14:19~28(신약212) 
날짜 2017-04-16 
설교자 전용표 목사 

 

  어려서 자식을 잃어버리고 30년 세월을 살던 아버지가 인터넷과 전산망의 도움으로 아들을 만났습니다. 감격적인 상봉의 시간을 갖습니다.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일상생활로 접어듭니다. 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그토록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았는데, 자기를 너무 닮아 있습니다. 생선을 잘 먹지 않는 습성하며, 이부자리를 반듯이 정리하는 습관하며, 구두가 왼쪽이 많이 닳는 것까지 닮아있습니다. 신기하지요. 부부는 유전자가 다릅니다만 같이 살다보면 닮아갑니다. 부모 자식은 같이 살지 않아도 심지어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도 닮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17절에서 내가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의 흔적은 도장을 의미합니다. 도장을 파서 찍으면 거기에 새겨진 글자 그대로 나오지 다른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가 내 속에 있으면 예수가 나와야 정상이고, 예수의 삶의 내 삶에서 재현되는 것이 정상이고, 이것이 예수의 흔적입니다. 바울의 인생은 예수님 인생의 재현(再現)이었습니다.

 부활에 대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부활의 증거(證據)가 우리의 삶 속에 없으면 그 모든 지식이 소용이 없습니다. 부활에 대한 증거를 아무리 많이 모아 놓았어도 우리의 삶 속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변화가 없다면, 그 모든 증거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학자들은 부활의 증거를 여러 가지 제시합니다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 받은 사람은 그런 증거 하나 없어도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자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 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항상 어떤 체험을 먼저 떠올립니다. 체험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증거가 될 수 있겠지만 정말 확실한 증거는 내가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가진 부활의 증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영광을 버리는 자입니다

 

 

 

 

 먼저 영광(榮光)이 왔을 때 영광을 대하는 자세에서 부활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광이 왔을 때 누구를 닮았는가하는 점입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루스드라에 갔을 때 거기서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장애가 있어 평생 걸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울이 전하는 굉장한 관심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듣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을 본 바울이 그를 향하여 큰 외칩니다. “네 발로 일어서라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들이 사람 형상으로 내려오셨다고 하면서 바울과 바나바 앞에 제사를 지내려고 하였습니다. 뒤편에 풍채(風采) 좋게 서 있는 바나바는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하면서 신격화한 것입니다. 헤르메스는 신과 인간을 통역해 주는 신인데 바울이 주로 나서서 말을 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으며 이들을 말립니다. 이런 헛된 일에서 벗어나 오직 천지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말렸습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남으로서 높아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적이 아닌데도 기적인 것처럼 둔갑시켜 높아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의 높임을 철저히 거부하고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된 바울의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조작된 이야기라고 비판하고 했던 예수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고 난 후 큰 충격에 휩싸여 말씀을 통해 예수님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시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영광을 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 자신을 빛나게 해주었던 모든 자랑거리들이 역겨운 배설물처럼 여겨지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25절 이하에서처럼 영광의 보좌를 버리신 예수의 마음을 품을 것을 외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5이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세상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친구끼리 옷을 서로 바꿔 입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 친구와 옷을 바꿔 입었는데, 잘 사는 집 아이여서 옷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 옷을 입고 있는 동안 기분도 좋고 어깨에 괜히 모를 힘도 들어갔습니다. 다시 바꿔 입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야 다시 바꿔 입자!” 내 옷을 돌려받아 입었는데, 이게 분명 내 옷인데도 왜 그리 허전하고 아쉽던지요? 우리가 깨달아야하는 것은 원래부터 영광은 우리 인간의 소유(所有)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광은 그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언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고 예수가 주님이심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지 아십니까? 영광을 벗어던질 때입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영광을 벗어던진 만큼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2. 꺾이지 않는 자입니다

 

 

 

 

 두 번째 부활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지 않은가는 그 사람에게 고난(苦難)이 왔을 때 대하는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이 왔을 때 누구를 닮았는가하는 점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자기들을 신격화하는 유혹을 이겨내자 이번에는 핍박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번 전도하였던 지역인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이곳 루스드라까지 몰려와서는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바울을 돌로 친 것입니다. 돌로 치는 것은 사형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냥 주먹 돌 몇 개 던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사형법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돌로 칩니다. 도망 못 가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든지 아니면 구덩이 같은데 쓰러뜨려 놓고는 사정없이 돌을 던집니다. 어떤 이들은 호박돌로 내려치기도 합니다. 얼굴이 으스러지고 여기저기 부러지고 사정없이 피가 흐릅니다. 참혹하고 고통스런 사형법입니다. 바울이 쓰러져 의식이 없자 사람들은 죽은 줄 알고 성읍 밖으로 끌어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소요(騷擾)가 그치자 바울을 통해 복음을 믿은 자들이 시신처럼 널부러져 있는 바울을 둘러서서 비통해하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일어난 것입니다. 20~21a절을 읽읍시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20, 21a)

 

 

 죽었어야할 사람이 살아났을 뿐 아니라 제 발로 걸어서 성에 들어갔고, 다음 날 다른 지역에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터미네이터의 원조가 바울입니다. 사명(使命)이 있는 사람은 터미네이터가 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이 전도여행을 다니다가 밤에 사자의 습격을 받아 크게 다쳤지만 죽지 않고 살아났을 때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요? ‘사명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곧 세상을 뜰 것 같이 연약한 분도 감당해야할 사명이 있으니까 꺼져가는 심지가 꺼지지 않습니다. 사명을 다 감당하니까 그토록 정정하던 분이 훌쩍 가시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 인생의 방향을 분명히 알고 가는 사람, 그 속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신 이의 영, 곧 성령이 머물러 있는 사람은 인생이 거꾸러진 채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납니다. 20절에 바울이 일어나라고 하였습니다. ‘일어나는 예수님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 라고 하셨을 때 말씀하신 부활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내 삶의 생명이요 부활의 능력이 되심을 믿는 자는 죽어야 되는 상황, 완전히 거꾸러져야하는 상황에서도 다시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같은 단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가 저와 여러분의 생명이십니다. 예수가 저와 여러분의 부활의 능력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거꾸러진 채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납니다. 다시 부활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는 어떤 부활을 경험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지금의 제 인생 자체가 부활의 증거입니다. 14~5년 전, 바닥을 헤매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제 인생은 너무 과분한 인생입니다. 주님이 저를 말씀사역자로 삼아주셔서인지 그 밑바닥 인생으로 끝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교회도 그러합니다. 제가 처음 올 때만 해도 우리교회에 어린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간간히는 있었겠지요. 하지만 제가 올 때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아이들이 간간히 태어나고 어린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더니만 요즘은 시끄러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 귀에는 아이들 소리가 노래 소리로 들립니다. 참으로 교회가 욕심부리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만을 붙들고 주님의 말씀만 진리로 삼고 나아가면 그 교회는 살아납니다. 좋은 토양에 심긴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듯이 인간적인 이상한 방법 끌어 쓰지 않아도 그 교회는 수적으로도 성장합니다. 모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는 인간관계가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내면이 말씀으로 성령으로 치유되면 욕심을 버리고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게 되고 인격적으로 대하게 되어, 전에는 그토록 힘들고 어렵던 인간관계가 평안해지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일 이후 바울은 믿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권면을 하며 떠납니다. 환난이란 말 틀맆시스는 탈곡기라는 뜻입니다. 고난은 결국 우리를 알곡으로 거듭나게 하는 부활의 씨앗인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 감사입니다.

 

 

 

 

 

 

3. 오직 주님만 의지합니다

 

 

 

 

 세 번째입니다.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바울은 자신이 전도하였던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여 격려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워 교회를 든든히 한 후 파송교회인 안디옥교회로 귀환합니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23절 마지막 부분입니다. 23절을 한 번 읽어봅시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23)

 

 

 바울은 개척해서 세워진 교회들에 지도자들을 세운 후 그들을 주님께 위탁(委託)하였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께 위탁하고 떠났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위탁하지 않았다 이 말입니다. 요한복음 224절을 보면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고 나옵니다. 우리 주님이 사람을 의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이 꼭 그러합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사랑해야할 대상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오로지 주님만 의지하는데서 생겨납니다.

 

 

 

 

 

 

맺는 말

 

 

 

 영광이 왔을 때 영광을 버릴 수 있는 신앙, 고난이 왔을 때, 완전히 거꾸러지지 않고 결국 다시 일어서는 신앙, 오직 주님만 의지할 대상으로 삼는 신앙! 그 신앙이 내가 부활하신 분을 주님으로 믿고 있다는 참된 부활의 증거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지난 한 주간 동안 계속해서 듣고 불렀던 찬양이 있습니다. 중고등부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불렀고, 십 수 년 전에 힘든 인생을 만났을 때 다시 꺼내 불렀던 바로 그 찬양입니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주님께서 내 인생에 베풀어주신 부활의 능력이 어떠한 것이었나는 깊이 깨닫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속 해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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