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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상 강해8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본문 열왕기상 12:25~33(구약536) 
날짜 2017-04-02 
설교자 전용표 목사 

 

  술 취한 기사가 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를 몰고 정상적인 길로 가지 않고 지름길로 간다며 낭떠러지 길로 들어섰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멈춰야지요. 운전대를 빼앗아야 합니다. 제 정신인 사람이 운전대를 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라의 절반 이상을 여로보암에게 넘겨주신 이유입니다. 나라를 우상으로 가득 채우고,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면서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일삼는데 아무리 개혁을 요구해도 반성할 줄 모르자 하나님께서는 운전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리셨습니다.

제 정신인 사람이 운전대를 잡자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이 때 승객들이 새로운 기사에게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제발, 정신 줄 꼭 붙들고 바른 길로 가달라! 정해진 노선대로만 가 달라!” 그런데 승객 중 몇 사람이 다른 소리를 냅니다. “조금 위험해도 좋으니 지금 가던 길이 지름길이니까 그냥 가던 대로 갑시다! 아까는 제 정신 아닌 사람이 운전을 했지만 지금은 제 정신인 사람이 운전을 하니까 이 길로 가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냥 이대로 갑시다!” 이 때 새로운 기사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만 기준을 분명히 잡아야 합니다. 기준은 버스가 가야할 노선대로 가는 것입니다. “지름길이니 위험하더라도 이 길로 갑시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아무리 있더라도 거기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제일 좋은 길은 바른 길입니다. 즉 정해진 노선대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새롭게 나라를 맡게 된 여로보암이 가져야할 자세요, 가야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어리석게도 다른 방법을 쓰다가 결국 솔로몬이 걸어갔던 패역의 길을 걸어갈 뿐 아니라 훨씬 더 패역한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1. 여로보암이 불안을 이기지 못하다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세겜에 도읍을 정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이 즉위식을 가졌던 바로 그곳입니다. 세겜은 위치상으로 가나안 땅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유서(由緖) 깊은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처음 단을 쌓은 곳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복과 저주를 선포한 곳이며 여호수아가 말년에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갱신(靈的更新)시킨 곳입니다. 당시 신도시에 불과했던 예루살렘에 비해 세겜이 무게감에서 훨씬 앞섰습니다. 여로보암은 아주 뛰어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세겜과 요단동편의 부느엘을 요새로 무장시키는 작업도 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만 이후 여로보암은 한 가지 문제로 굉장한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이 26~27절에 나오는데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6~27)

 

 나라를 가를 때에는 죽고 사는 문제로 여기고 명분도 분명하다 여겨 갈랐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보니 명분도 퇴색되고 백성들 사이에서 나라 가른 것에 대한 반성의 분위기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피어오르는 것입니다. 특히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등 삼대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남자들은 율법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한단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남쪽 유다에 다녀오는 것입니다. 갔다 오면 또 한 동안은 남쪽 나라 이야기가 이어지곤 합니다. 여로보암으로서는 두렵고 불안하여 밤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급기야 과대망상(誇大妄想)에 사로잡힙니다.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불안이 커지는 법입니다.

 

 

 

2. 여로보암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들

 

 

 

 여로보암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그가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잊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나라가 갈라지고 자기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임을 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서 나라를 찢어 10조각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 말씀대로 자기가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주변에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북쪽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목적도 놓치고 있습니다. 자신을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목적은 북이스라엘을 솔로몬의 우상화정책으로 오염된 남유다로부터 격리시키고 순수한 신앙을 다시 회복한 후 남유다에 거룩한 자극과 도전을 주어 돌이키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여로보암은 그저 우상을 멀리하면서 솔로몬 치하에서 착취로 지쳐있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허물어질 리가 없습니다. 허물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뜻을 죽기 살기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삽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두 번째,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말씀에 붙들어 매는 역할을 합니다. 주어진 말씀을 붙들고 깊이 묵상하고 기도할 때 그 말씀이 내 속에 박힌 못과 같이 되고 내가 그 말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머리로 다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은 가슴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여야 하고, 죽고 사는 문제는 영혼이 움직여야 비로소 됩니다. 그러려면 기도가 필수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신 후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선명해지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 여로보암은 이 백성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란 점을 잊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상황이 그렇게 돌아갈지라도 생각을 이렇게 가져가야 했습니다. ‘나는 원래 공사판의 감독관하던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왕을 만들어주셨어! 이 백성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야! 굳이 내가 인기 있고 내 말대로 이 백성이 움직여야할 필요가 있는가?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지내라. 거기서 은혜 충만히 받아라.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다스리기만 하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로보암은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였으면 여로보암은 솔로몬과 르호보암이 꺼뜨려버린 이스라엘의 부흥의 불길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흥의 불길을 일으킬 수 있는 그 중요한 기회를 걱정과 근심, 과대망상에서 비롯된 이해타산(利害打算)으로 다 날리고 말았습니다.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스라엘 안에서는 다시는 부흥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솔로몬이 아궁이에 찬물을 껴 얹었다면 여로보암은 아궁이 자체를 아예 막아버리고 만 격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붙잡았다 해서 어려움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로보암이 걱정한 대로 백성들이 나라를 가른 것을 후회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방법은 어떤 사사로운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이상을 끝까지 붙들고 거기에 사사로운 뜻이나 방법이 끼어들지 않도록 힘을 쏟는 것입니다. 오바마가 레임덕 없이 물러날 때까지 지지율이 60%였습니다. 취임초기에도 이런 지지율 얻는 대통령 세상에 없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끝까지 사사로운 목적을 개입시키지 않고, 공적인 목적, 이상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이것 들어주세요, 저것 들어주세요!’ 하면서 자기가 바라는 소원을 들어달라고 때로 작정기도, 금식기도도 하는데,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내 뜻인가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기를 위해서, 자기 욕심을 죽이기 위해서 작정기도도 하고 금식기도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서고 그쪽을 선택했다면 그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길을 가면 됩니다. 무소의 뿔처럼 가야 합니다.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단 말입니다.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부터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어려움이 없어야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진리는 부딪힘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어려움이 있고 난관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을 가졌으면 감내(堪耐)하고 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자구책을 마련하다

 

 

 

 그렇게 해서 여로보암은 대책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아주 치밀하게 새로운 종교정책(宗敎政策)을 마련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종교정책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워서 섬기도록 한 것, 둘째 가짜 절기를 만든 것, 셋째 무자격 제사장을 임명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좋은 지침이 됩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째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서 벧엘과 단에 각각 두어서 섬기도록 하였다고 29절에 나오는데 벧엘은 북이스라엘 남쪽 끝이고, 단은 북쪽 끝입니다. 31절을 보면 금송아지신전뿐 아니라 많은 산당들도 세운 것으로 나옵니다. 나라의 맨 위쪽과 아래쪽에 거대한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그 사이에는 작은 우상을 모신 산당들을 많이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기만 하면 가까운 곳에 가서 제사 지내고 종교 생활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굳이 남쪽 유다 나라에 있는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이 말입니다. 아주 편리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자기방식대로 믿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방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금송아지를 뭐라고 소개하느냐 하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다라고 소개를 합니다.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금송아지는 오래 전 출애굽시대 모세가 시내산에 두 돌판을 받으러 갔을 때 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었던 신입니다. 금송아지는 원래 애굽사람들이 중요하게 섬겼던 아피스또는 프타라고 불렀던 신의 형상입니다. 그때도 금송아지를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 곧 하나님이라고 불렀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고 그로 인해 자꾸만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고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대중의 심리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렵게 믿는 것보다 쉽게 믿는 것을 좋아하고, 고상한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 유치한 것을 더욱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로보암이 만들어 놓은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멀리 내려가지 않아도 되고, 어렵게 믿을 필요도 없고 편리한대로 믿고, 그것도 예루살렘 성전에 가봤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은 없는데 금송아지는 눈에 보이니까 믿기가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을 수는 없고, 예배를 안 드릴 수는 없고, 믿기는 믿어야 되는데, 진짜 하나님을 순종하고 믿자니 불편하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요.

 

 안 믿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내 방식대로 믿는 것입니다. 예배 안 드리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예배드리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안 드리면 찜찜하고 벌 받을 것 같아서 의무적으로 예배드리고 신앙생활도 모든 것이 내 생각하고 맞아야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교회도 운영이 되어야 만족스러운 내 방식대로의 믿음이 무서운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인간이 가진 오만과 교만을 깨뜨리는 신앙입니다. 미신이나 기복신앙은 오만과 교만을 더욱 부추기고 채우려는 신앙이기에 본질적으로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내가 철저히 깨어지고 철저하게 해체되는 영적인 체험이 일어나야 진정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진정한 신앙이지 하나님을 이용해서 나의 유익을 챙기려는 것은 금송아지 신앙입니다.

 거짓된 종교인 목회자는 죄를 지적하지 않고 인간의 교만과 오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지 않습니다. 좋게만 합니다. 복만 빌어줍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종교정책 두 번째입니다. 여로보암은 레위인 아닌 제사장을 임의로 세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정통한 정식 레위인이라고 한다면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종교정책을 강력히 반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레위인들보다는 자기 말을 잘 듣고 자기의 종교정책에 전적으로 충성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편했겠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세운 것입니다.

 인간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종교인, 목회자! 내가 듣고 싶은 말이나 내 욕심에 무한긍정을 해 주는 종교인 목회자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웃겼다 울렸다 감정의 카타르시스만 줄 뿐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을 불편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비한 체험도 일어나나 그것으로 끝, 옛사람의 습성을 부끄러운 것으로 깨닫게 해주지 못한다면 천사의 방언도 무의미할 뿐입니다. 홍수 속의 마실 물이 없는 법입니다. 교회가 넘치고 설교가 넘치고 목회자가 넘칩니다만, 여러분, 가급적이면 여러분 듣고 싶은 말 잘 해주지 않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몸에 보약이라고 하는 봄나물은 대체적으로 입에 쓰고, 약초는 거의가 씁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절기까지 유사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맺는 말

 

 

 

 결국 여로보암의 자구책(自救策)은 자멸책(自滅策)이 되고 맙니다. 최고의 자구책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옛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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