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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상 강해7 이스라엘의 분열 
본문 열왕기상 12:1~20(구약534) 
날짜 2017-03-26 
설교자 전용표 목사 

 

  아이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이가 넘어졌습니다. 그 때 엄마들의 반응이 다양합니다. “앞도 못보고 다녀? 왜 넘어지고 그래?” 이런 분들 있습니다. 대부분 자기도 어렸을 적 심심하면 넘어졌던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넘어졌네! 빨리 일어나!” 야단은 치지 않아 좋습니다만 위로는 되지 않습니다. “넘어져서 아프겠다!” 아픈 것을 알아주니 아이는 그때부터는 아파서가 아니라 서러워서 웁니다. “조심했는데 넘어져서 더 속상하겠구나!” 마음을 알아주는 말입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말은 위로가 됩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을 공감(共感)이라고 하지요. 솔로몬이 구했고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것인 듣는 마음’(레브 쇼메아)이 곧 공감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공감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공감을 잘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6:8)라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있어야할 것, 우리 가정에 있어야 할 것, 우리 교회에 있어야 할 것, 우리 민족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에 충분히 공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공감이 이루어질 때 하나가 되고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영원히 둘로 남습니다. 공감 능력이 성숙함이요, 통치자에게 있어서 공감 능력이야말로 더 없이 중요한 정치력일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사람은 남의 아픔을 대하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공감입니다. 함께 아파하려 하고 함께 짊어지려고 합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은 남의 아픔을 이용하려 들고, 약한 사람을 더욱 억압하려고 듭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왜곡된 마음입니다. 공감할 줄 모르고 이용하고 억압하려 드는 악인을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는 것도 버거운 일이지만, 통치자와 백성으로 만나는 일은 버거운 일을 넘어서 국가적 재앙이 됩니다. 그래서 전도서 105~6절에서는 우매한 자가 주권자의 자리에 앉고 악인이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재앙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남의 아픔을 이용하는 악인이 권력자의 자리에 앉으면 백성들을 더욱 착취하고 못살게 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아픔을 공감하기보다 억압과 착취의 기회로 삼으려다가 나라가 두 동강 나는 민족적 아픔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솔로몬에게 나라가 분열될 것이라고 하셨던 경고의 말씀이 어리석고 악한 지도자에 의해 실현이 되는 오묘하신 섭리의 과정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와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1. 백성들의 개혁요구가 터져 나오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됩니다. 오늘 1절을 보면 르호보암은 즉위식(卽位式)을 거행하고자 세겜으로 올라갑니다. 1절을 읽습니다.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1)

 

 즉위식을 예루살렘에서 거행하지 않고 북쪽에 있는 세겜에서 거행한다는 자체가 특이합니다. 이유를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세겜에 모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에브라임지파를 필두(筆頭)로 하는 북쪽의 10지파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남쪽과 북쪽으로 갈려져 있었고 북쪽을 이스라엘, 남쪽을 유다라고 통상적으로 불렀습니다. 갈등의 골이 꽤 깊었습니다. 다윗시대에는 사울의 잔존세력인 북이스라엘 지파들과 7년 반 동안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그 여파로 다윗은 즉위식을 두 번 해야 했습니다. 남쪽 유다의 왕이 되는 즉위식을 한 번 하고 몇 년 있다가 북쪽의 사울잔존세력이 무너진 뒤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식을 또 한 번 했습니다. 남쪽의 중심은 예루살렘이고, 북쪽 중심은 세겜이었는데,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이 아닌 세겜에서 즉위식을 했다는 것은 이미 북쪽지파들의 민심이 많이 돌아서 있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의 인준을 받을 필요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자리에서 북쪽지파들은 르호보암에게 개혁안을 요구합니다. 그것도 솔로몬의 대적이던 여로보암을 대표로 해서 말입니다. 4절을 봅시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4)

 

 

 솔로몬이 부과한 고된 부역과 과중한 세금을 줄여달라는 요구입니다. 솔로몬은 40년 통치 기간 내도록 성전과 궁전이며 수십 곳에 이르는 병거성(兵車城)과 국고성(國庫城) 건축을 쉬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백성들은 쉬지 못하고 고된 노역에 시달렸고, 건축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많은 세금까지 납부해야 했습니다. 나라 안에는 부역 나갔다가 죽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으며, 세금 감당하지 못해 고향 버리고 도망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만리장성(萬里長城) 가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모두가 그 규모에 감탄을 하지만 그것이 다 수많은 백성들의 피눈물입니다.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발해만 노룡두(老龙头)라는 곳에 가면 맹강사당(孟姜祠堂)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사당은 맹강녀(孟姜女)라는 여자가 장성건축에 끌려간 남편을 만나러 왔다가 이미 남편이 죽은 지 오랜 것을 알고는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을 한 것을 기려 사람들이 세운 사당입니다.  옛날에는 대규모 토목과 건축사업이 진행되면 징용(徵用)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산을 이룹니다. 덩달아 아버지 잃은 자식들, 남편 잃은 아낙네,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과 탄식 눈물이 강을 이룹니다. 이 고통과 괴로움을 알아달라는 요구입니다. “지금까지 40년 간 국민(國民)이 아닌 종으로 노예(奴隸)로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 자식들까지 종으로 노예로 사는 꼴은 차마 보지 못하겠으니 제발 짐을 덜어주십시오!”라는 겁니다. 처절한 하소연이자, 거절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생사를 건 개혁요구(改革要求)입니다. 그래도 르호보암 입장에서 보면 선전포고도 없이 내전으로 번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르호보암은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지 않고 삼 일 후에 답을 줄 테니 그 때 오라하고 돌려보냅니다. 중대한 문제에 순간적인 판단으로 대답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치고 심사숙고 한 후에 답하겠다는 것은 일단 잘 한 것입니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말했다가 낭패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맞장구친 것이 나중에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하더라!’ 내지 당신이 지난 번 그렇게 말했잖아?’ 이런 식으로 둔갑해 돌아오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아요? 당장은 아는 것이 없어 보이고 자존심이 구겨지더라도 대답을 미루는 것이 더 용기 있고 지혜롭습니다. 당장 받아치지 못한 것이 못내 분해도 그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기도해 보고, 깊이 생각하고, 지혜롭고 신실한 이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전도서 52절을 보면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 원로들의 지혜로운 자문을 물리치다

 

 

 

 삼 일의 말미를 얻은 르호보암은 우선 아버지 솔로몬을 도와 정치를 하였던 원로들 의견을 듣습니다. 원로들의 대답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7절을 봅시다.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7)

 

 ‘왕이 먼저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 백성들에게 부과된 고역과 감당키 어려운 세금을 줄여주십시오. 백성들의 애환을 먼저 들어주십시오. 그러면 백성도 왕을 섬길 것입니다. 부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십시오.’ 솔로몬의 초심이 듣는 마음 아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것도 듣는 마음이고요. 지금 원로들이 자기들의 정치를 반성하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듣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로들은 솔로몬의 통치가 이룩한 값진 성과가 실은 백성들의 피눈물을 짜낸 결과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들어줘야 합니다. 공감의 시작은 마음을 열고 그 사람 마음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왜 요즘 나한테 쌀쌀맞게 대하는지, 아이가 최근 들어 왜 저렇게 반항적으로 변했는지, 이유가 뭔지 마음 열고 들으면 이유가 보입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화가 나는 이유가 뭡니까? 징병으로, 위안부로, 강제노역으로, 끌려가 죽고 병들고, 상처입고,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사과를 하지 않잖아요? 돈 몇 푼 줄 테니 먹고 떨어지라 하잖아요? 사과다운 사과 하지 않았으면서 사과했다 하잖아요? 맞은 사람 마음이 풀어져야 사과지 때린 사람 자기 기준대로 한 것이 사과입니까? 고통과 억압 가운데서 터져 나오는 백성의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거 외면하면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원로들은 들어주라고 합니다.

 원로들은 또 좋은 말로 대답하라고 조언합니다.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믿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인격적이라야 합니다. 특히 잔인하거나 무례(無禮)하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모셨던 여러 목사님들 중에 두 분이 기억납니다. 한 분은 항상 명령조였고 부교역자들에게 굉장히 무례하게 말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지시대로 하기는 해도 다들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다른 한 분은 매우 인격적으로 아랫사람을 대하셨습니다. 살다보면 당시에는 죽고 사는 문제처럼 보여도 한참 지나고 나면 털털 털어버릴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그 분은 이것을 잘 아시는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의 나이가 같습니다. 똑같은 세월을 살았는데 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 정말 사려 깊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 안에서나 사회에서나 맺는 모든 인간관계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야 합니다. 갑질? 하나님 백성과는 관계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인간관계 맺어보십시오. 실패하지 않습니다. 원로들은 힘없는 백성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좋은 말로 대답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이런 현명하고 하나님 말씀의 원리를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 용기있는 원로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때로 바른 말 하는 사람을 귀찮아하고 듣기 싫어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 아직 은혜가 나에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서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큰 복입니다.

 

 

 

3. 어리석은 자문을 따르다 파국으로 치닫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지혜로운 자문을 버렸습니다. 8절과 13절에 버렸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쓰고 있는데, 이 버리다는 말은 아주 고귀한 보물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있음에도 어리석은 사람은 애써 망할 길을 찾아갑니다. 이때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사람은 그 길로 쭉 가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이 심판의 방법입니다. 결국 자기의 악한 고집대로 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4912절 말씀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하셨습니다.

 원로들의 지혜로운 자문을 버린 르호보암은 자기와 함께 자라난 참모들과 의논합니다. 젊은 참모들은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합니다. 10~11절입니다.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10,11)

 

 들어주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포실한 소리 못하도록 짓밟아버리라고 합니다. 남편 잃고 자식 잃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피눈물 섞인 하소연을 편해서 하는 넋두리로 취급합니다. 다시는 그런 소리 못하도록 전갈채찍으로 후려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야 할 이스라엘 왕이 할 소리입니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만천하에 드러내야할 이스라엘 왕이 품을 마음입니까? 이건 출애굽 당시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퍼부었던 겁박(劫迫)입니다. 르호보암은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인지 세상의 방법인지, 시쳇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하고 그대로 합니다. 지금까지도 죽지 못해 살아왔는데, 앞으로 더 지옥 같은 인생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는데 좋아할 사람 어디 있습니까?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백성들은 다윗에게 저주를 퍼붓고는 북쪽 열 개 지파가 따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나라가 두 동강 나는 비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감이 되지 않으니 갈릴 수밖에요.

 

 

 

맺는 말

 

 

 

 말씀에 무지하면 이렇게 됩니다. 꿩 잡는다고 다 매는 아닙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듯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살 길이 열립니다. 성경은 이런 자문을 하는 자들을 일컬어 왕과 함께 자라난 소년이라고 합니다. 이때 르호보암 나이가 41세였습니다. 같은 또래입니다. 그런데 왜 소년이라고 합니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이 먹었어도, 남의 아픔에 공감(共感)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사람보다 자리가 중요하고 돈이 중요한 줄 아는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생명 없는 물건에는 공감이 잘 되면서 생명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이 어려운 것은 병든 마음입니다. 천박한 힘의 논리와 덩치의 논리만 믿고 날뛰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에서 잘 났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공감이 안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 백성은 세상적으로 성공하면 할수록 더욱 낮추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망하면 망하리라는 각오로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버텨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공감하시고, 때가 되면 올리십니다.

 왕이나 지도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은 오로지 백성의 애환을 듣고 공감하고 백성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만 하면 하나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차 말씀드리는 바이지만 여러분, 신앙은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공감해달라고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에 먼저 공감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바람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감을 받는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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