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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상 강해1 인간의 악함과 하나님의 섭리 
본문 열왕기상 2:1~9 (구약510) 
날짜 2017-02-12 
설교자 전용표 목사 

 

 

  차를 타면 유독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의 장모님이 그런 분입니다. 제 아내가 어렸을 적에 친척집에 가기 위해 장모님과 버스를 타면 장모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집니다.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몸이 휘청휘청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곡예수준으로 주무시는데, 제 아내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서 내리는지 모르는데 엄마는 쿨쿨 잠만 주무십니다.

 여담으로 장모님은 주무시다가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것은 주무시는 어머니로 인해 그토록 불안한 시간을 버스 간에서 보냈지만 길을 잃지 않고 이렇게 만나야 될 사람 만나서 잘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들인지 모릅니다. 제 기억으로 경제와 정치는 항상 불안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불안정한 인간 손에 의해서만 돌아가지 않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攝理)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열왕기서 앞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열왕기서는 왕들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로 되어있습니다. 노쇠한 다윗 왕이 솔로몬에게 왕 위를 물려주는 사건부터 나라가 북쪽과 남쪽으로 갈라지고 난 후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각각 앗수르제국과 바벨론제국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의 왕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왕 19명과 남쪽 유다 왕국의 왕 20명, 총 39명의 왕들에 대한 선지자적인 평가를 다룬 성경입니다. 열왕기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관점에서 사람을 평가하시는가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공의실현을 유언하는 다윗

 

 

 

 열왕기서는 노쇠한 다윗이 우여곡절 끝에 솔로몬에게 왕권을 물려주는 장면과 솔로몬이 자신의 왕권을 강화시켜 나가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오늘 봉독자가 읽은 부분은 다윗의 유언입니다. 그 내용은 첫째, 담대하라. 둘째, 말씀의 원리를 따르라. 셋째, 공의를 실현하라로 요약됩니다. 왕이라는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자리입니다. 왜 외로운 자리라야 하는가? 공평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특정사람들과 특별히 더 친하거나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집안사람들과도 멀어져야 하고, 청탁을 하기 위해 금은보화를 선물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과도 멀어져야 합니다. 왕이 가까워져야 하는 대상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백성들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왕은 측근들에게는 냉정해지고 먼 발치의 백성들에게는 따뜻해져야 합니다. 이것을 하려면 담대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담대하라는 첫 번째 유언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담대해질 수 있는 비결은 원리와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꾸 사사로운 이익에 약해지면 나중에 책임질 일이 많이 생깁니다. 담대할 수가 없습니다. 원리와 원칙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응답해 달라고 부르짖고, 길을 보여 달라고 답답해하는데, 주님은 이미 말씀 속에 대부분의 문제에 대한 응답과 답을 담아두셨습니다. 응답해주시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응답대로 살지 않는 불순종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왕은 사울처럼 신비한 방법으로 응답을 구하는 이상한 신앙에 빠져서는 안 되고,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가르침에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공의를 실현하라는 유언입니다. 이것이 오늘 강론을 통해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다윗은 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두 사람은 처단하라고 유언합니다. 은혜를 베풀어야할 사람은 바르실래의 아들들입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쳤을 때 먹을 것을 갖다 주며 도왔던 사람입니다. 처단하라고 한 두 사람은 요압과 시므이입니다. 요압은 다윗과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인물이자 군사령관입니다. 그런데 죽이라고 합니다. 왜 일까요? 5절을 봅시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5)

 

 요압은 다윗을 도와 이스라엘의 기틀을 마련한 공(功)도 있지만 공을 덮고도 남을만큼의 과(過)가 있던 자입니다. 그는 다윗이 품으려고 했던 사울의 군장軍長 아브넬이라는 사람과 아마사라는 사람을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과 권력을 혼자 독차지하려는 목적에서 교묘히 암살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요압은 다윗을 위해 일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요압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일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자신이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때로는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암살하기도 하였습니다. 권력의 화신(化身)입니다. 권력욕을 늙어서도 버리지 못하여서 나중에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였을 때 아도니야편에 붙기도 하였습니다.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모두가 편해지고 자기자신도 살 길이 열리는데, 사람은 어리석어서 죽을 때까지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다윗은 솔로몬더러 이런 사람은 결국 자기를 위한 욕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망칠 사람이니까 정리하라고 한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시므이입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부하였던 자로서 사울파의 우두머리노릇을 하던 인물입니다. 이 사람을 처단하라고 하는 이유가 8절에 나옵니다. 8절을 봅시다.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8)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 반역으로 도망칠 때 저주를 퍼붓던 자입니다. 그때 다윗이 봐 준 적이 있지만 이제 솔로몬에게 그 죄값을 치르게하라고 합니다. 시므이는 사울 치하에서 권력을 차지하고서는 수십 년 간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호의호식하던 대표적인 구세대 기득권세력으로서 시편1편에서 말씀하는 대표적인 악인(惡人)입니다. 이런 자들이 한 지역을 독차지하고 버티고 있는 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음으로 처단하라고 한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사사로운 보복일까 아니면 공의의 실현일까?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고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은 공의의 실현입니다. 왕의 가장 큰 본분은 공의의 실현입니다. 어떤 나라이건 그 나라가 건강하게 세워지려면 과거를 청산하는 공의가 바탕 되어야 합니다.

 

 

 

2. 섭리로써 도우시는 하나님

 

 

 

 그런데 아무리 공의 실현이 중요하다해도 이것이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정말이지 역사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 그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셔야만 그 나라에 공의가 서고 올바른 나라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빼어난 지혜로 구시대의 악인들을 처단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 아버지가 언급하지 아니한 자신의 정적들까지 제거합니다. 먼저는 아도니야를 제거합니다. 13~25절에 나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이 제거하라고 명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도니야는 세력을 모아서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가 실패하였던 인물입니다. 솔로몬 입장에서 보자면 약속되어 있던 자신의 왕권을 탈취하려던 정적입니다.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을 수종들었던 아비삭이라는 여인을 탐하다가 결국 솔로몬의 철퇴를 맞고 맙니다. 아버지를 수종들었던 여인을 탐한다는 것은 단순한 여색(女色)을 탐한 것이 아니라 왕권의 정통성(正統性)이 자기에게 있음을 표출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한 번 왕권에 도전해보겠다는 사전 포석(布石)인 것입니다. 왕권에 대한 어리석은 야망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장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이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치 못하고 계속 인간적인 방법을 쓰다가는 그 끝마침은 비참함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나면 사망을 낳습니다(약1:15). 내 욕심이 말씀을 이기면 내가 죽는 것이고, 내 욕심이 말씀 앞에 항복하면 내가 사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비아달과 요압을 처단 합니다. 아비아달은 대제사장인데,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왕위찬탈을 적극 주도한 죄를 물어 그의 대제사장직을 박탈하고 추방합니다. 아비아달은 엘리제사장의 손자입니다. 엘리제사장집안이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을 통해 ‘엘리집안의 제사장직을 박탈시키겠다’라는 심판의 말씀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경고의 말씀을 들은 집안 사람이라면 정말 조심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윗대가 정도를 걷지 않아 이런 경고의 말씀을 들었다면 자신은 신중을 기해서 정도를 걸어야 했습니다만 결국 권력에 줄 서다가 경고의 말씀이 경고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는 결과를 맛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 오래 전 하신 말씀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헛되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단선적(單線的)이지 않고 복선적(複線的)입니다. 인간의 짧은 머리와 이해력으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섭리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요압은 권력을 한 손에 잡고 휘둘렀던 인물이지만 결국 자신의 힘에 너무 취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에 순복할 줄 모르다가 결국 그 교만으로 인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11:2)고 하셨습니다. 어렵다가 잘 되기를 시작하면 그때부터 더 엎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은 마지막으로 시므이를 제거합니다. 시므이는 사울파의 우두머리 격으로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칠 때 저주를 퍼부었어도 다윗이 살려준 적이 있는 인물입니다. 시므이가 제거되는 사건은 매우 교훈적입니다.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과거의 죄를 물어 기드론 시내를 거너는 날에는 죽는다는 금족령(禁足令)을 내립니다. 여기에는 세력 규합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음은 물론입니다. 시므이는 우연한 일로 목숨이 달린 금족령을 어기고 맙니다. 도망친 종을 잡으려다 그만 기드론 시내를 넘고 만 것입니다. 시므이에게 있어 기드론 시내는 족쇄인 동시에 어쩌면 은혜의 테두리입니다. 원래 죽었어야 하는 사람인데, 살려둔 것입니다. 기드론 시내 안에만 거하면 앞으로도 생명이 보장됩니다. 하지만 소유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그만 은혜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로마서 26에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시므이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셨는데, 그 사용하신 재료는 시므이 자신의 무자비함과 탐욕이었습니다. 결국 처리하지 못한 자기자신의 무자비함과 탐욕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임하게 하는 덫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겠습니다.

 

 

맺는 말

 

 

 섭리(攝理)라는 말은 한자로는 ‘다스리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Providence’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앞에, 미리’를 의미하는 ‘프로(pro)’라는 말과 ‘보다’라는 뜻의 말인 ‘비데레(videre)’가 합쳐져서 된 말입니다. 그 뜻을 풀이하면 ‘미리 아시고 다스리시고 돌보신다’가 됩니다. 최근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와서 산간지역은 고립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설주의보가 내리면 강건너 불보듯이 하면 큰 일 납니다. 제정신 박힌 아버지라면 시내에 나가서 한 두 주 버틸 수 있는 생필품 정도는 장만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보면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자 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미리 아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바로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나 개인이 진실하게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달리 섭리하십니다. 진실하게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사람 마음에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살고자 하는 심령을 부어주심으로써 그 사람이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일을 당할 때에도 그 일이 결국은 신실한 신앙을 갖도록 하시는 재료가 되게 하십니다. 반대로 교회나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채 인간의 탐욕과 정욕을 좇아 나아갈 때에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으로 인해 더욱 완악하고 교만하게 되도록 내버려 두심으로서 결국 멸망과 심판에 이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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