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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품는 교회 (듣기)

2017.01.10 23:22

양승훈전도사 조회 수:57

제목 세계를 품는 교회 
본문 사도행전 12:1~3 (신약208) 
날짜 2017-01-01 
설교자 전용표 목사 

  올 한 해 교회 표어를 ‘세계를 품는 교회’로 정하였습니다.

 한국 최초의 교회는 1884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솔내)에 세워진 ‘소래교회’입니다. 최초의 개신교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해가 1885년이니까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교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소래교회는 서양선교사가 아닌 한국 사람의 손으로 세운 자생교회였습니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만주를 오가는 인삼 장사인 서상륜(徐相崙, 1848~1926)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만주에 갔다가 열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스코틀랜드 의료 선교사 헌터(Hunter. JM)에게 치료를 받았고 헌터의 동료 선교사였던 존 매킨타이어(John Mcintyre)와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1882년 그는 최초의 한글 번역 성경인 누가복음을 갖고 국경을 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나중에 외가가 있던 황해도 송천리에 와서 전도활동을 하게 됩니다. 친척이나 동네 사람 몇이 서상륜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초가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 최초의 교회 소래교회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듬해 20명이 모이고,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서상륜의 동생 서경조 등이 세례를 받으면서 드디어 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한해 우리교회가 세계를 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왜 더 넓은 지역을 바라보고 나아가서 세계를 품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使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

 

 이 사명 받은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모여서 우리끼리 재미나게 어울리는 단체가 아니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관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세계를 품고 기도하고 기회를 살려 복음을 전하는 구원선(救援船)입니다. 이러한 구원선의 역할을 잘 감당하였던 교회가 바로 시리아 지역에 세워졌던 안디옥교회입니다. 시리아 안디옥교회는 굉장히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시리아 안디옥교회가 아름다운 이유는 규모가 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규모로 따진다면 예루살렘 교회가 훨씬 컸습니다. 그러나 세계 선교의 역사는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일어나지 않고 시리아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선교의 초석을 놓은 것은 분명하지만 세계와 열방을 품고 가열차게 나아갔던 교회는 시리아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시리아 안디옥교회가 이렇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첫째. 어려운 일에 순종하는 교회

 

 

 시리아 안디옥교회가 세계선교에 크게 쓰임 받은 이유는 이해불가한 일에 순종해 내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2~3절)

 

 이 교회는 매우 뜨겁고 열정적인 교회로서 예배를 드리는데 금식까지 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였습니다. 이번에도 금식하면서 예배를 드리는데 성령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여기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은 나중에 가보면 ‘세계 선교’입니다. 세계 선교의 일을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세우라는 말은 이 둘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세우시네!’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시리아 안디옥교회의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건 이해하기도 힘들고 순종하기는 더더욱 힘든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시리아 안디옥교회는 스데반의 순교 때 흩어졌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중 일부가 세운 개척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먼저 세우고 그 이후 예루살렘 교회에서 담임목회자가 파송되어 옵니다. 이 때 초대 담임목회자로 파송되어 온 사람이 당시 사도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으로서 목회를 참 잘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을 보면 바나바의 사역의 결과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큰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그러자 바나바는 혼자서는 이 숫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 길리기아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려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담임목사 사울은 부목사가 되어 둘이서 열심히 시리아 안디옥교회를 목회합니다. 시리아 안디옥 교회는 결국 바나바와 사울이 차포(車包) 역할을 하는 교회입니다. 둘이서 일구어낸 작품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성령께서 담임목사인 바나바와 부목사인 사울을 선교사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뭔가 잘못 들은 것이겠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불합리한 말씀을 하셨겠어?” 아마 많은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까진 시기상조야! 우리가 개척교회 신세를 면한 지 얼마 됐다고?” 갈등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어떻게 합니까? 순종해 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반드시 갈등도 생깁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은 내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우리의 이기심과 악한 본성을 거스르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반드시 갈등이 일어납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갈등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1년을 말씀을 들어도 갈등을 겪은 적이 없다? 그러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았거나 잘못 들은 것입니다. 세상을 끊는 결단을 요구하실 때, 더 깊은 헌신과 신앙의 도약을 요구하실 때 갈등을 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갈등을 겪게 만드시는 말씀, 뭔가 자기네 생각과 다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다 떨어진 사르밧 과부에게 낯선 사람이 찾아옵니다.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이 낯선 사람이 와서 대뜸하는 말이 먹을 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떡 한 조각 만들어 먹을 밀가루와 기름밖에 없는데 그것 해 먹고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하는 말이 기가 찹니다.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먼저 나한테 달라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해하기 힘든 요구지요. 믿음이 없다면 욕을 태바가지 퍼부을 요구입니다. 그러나 이 사르밧 과부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가 요구하는 한 데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통에서 밀가루가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병에서 기름이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주어질 때, 뭔가 갈등할 수밖에 없는 말씀이 주어질 때, 감사하십시오. 주님은 그런 일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리아 안디옥 교회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님의 음성에 순종을 해냅니다. 그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그 순종이 있었기에 시리아 안디옥 교회는 먼저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가 감당하지 못하였던 세계선교의 중심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반계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모든 것을 품는 넓은 가슴의 교회

 

 

 시리아 안디옥 교회가 남다른 순종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가슴이 넓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넓다는 것은 마음이 넓다는 말입니다. 이 교회는 신분의 높낮이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교회였고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오로지 주를 위한 일에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교회가 시리아 안디옥교회입니다. 1절에 나오는 이 교회의 지도자들의 이름을 한 번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절)

 

 먼저 고향들이 매우 다양했습니다. 바나바는 지중해에 있는 섬 구브로가 고향입니다. 섬사람입니다. 섬사람은 섬사람 특유의 기질이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라고 나오는데 구레네는 북부 아프리카입니다. 아프리카 사람이에요. 그런가 하면 바울은 터키의 남부지역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평안도 제주도 충청도 사람들이 다 섞여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됐습니까? 되지 않았습니다. 마찰이 없었습니다. 오늘날까지 한국교회가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역색입니다. 예수를 믿어 하늘나라의 친백성들이 되었으면서도 아직까지도 ‘경상도 전라도’ 따집니다. 세상 정치인들이 퍼트려 놓은 지역감정을 극복하지 못한 겁니다.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씻음 받고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된 사람들은 이제 고향을 떠나서 지역을 떠나서 다 형제자매된 자들입니다. 지역감정이 왜 필요합니까? 주님 일 하는데 어디 출신인가가 뭐 중요합니까?

그런가 하면 피부색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라고 나오는데 니게르라는 말은 검다는 뜻입니다. 피부가 검은 색이었습니다. 흑인이었단 말입니다. 흑인도 있고 백인도 있고 흑인 백인 섞인 사람도 있었지만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든가 소외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배운 것도 다르고 신분도 다 달랐습니다.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 출신으로 오늘날로 친자면 박사학위가 여러 개 있었던 사람입니다. 마나엔 같은 이는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나옵니다. 헤롯의 친동생은 아니지만 같은 유모에게서 자랐으니 신분이 높은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지체 높은 양반, 상류층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때문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은 교회 안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기준들은 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의인이면 얼마나 의인이고 죄인이면 얼마나 죄인입니까? 잘 나면 얼마나 잘 났고 못 나면 얼마나 못났습니까? 사람이 가진 기준은 전부 상대적이고 거기서 거기입니다. 인생의 불행과 괴로움이 실은 이런 기준들 때문입니다. 자유케 하는 복음을 진정 경험한 사람은 남을 판단하는 갖가지 기준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이래야 합니다. 가지고 못 가지고 때문에 서로 어려워하는 것 없어야 하고, 많이 알고 적게 알고 때문에 선이 갈리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오로지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과 일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차별을 없애고 하나 되는 교회, 주님은 이런 교회를 쓰십니다. 같은 일을 해도 이런 교회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품지 못하는 교회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세계를 품을 수 없습니다. 흉내만 낼 뿐입니다. 세계를 품는 성도, 교회의 첫걸음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품는 것입니다. 세계를 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가슴이 넓은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뜻을 맑게 하는 교회

 

 

 세계를 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뜻이 올발라야 합니다. 세계를 품는 교회라는 표어는 상당히 허황(虛荒)되고 또 업적주의(業績主義)로 흐를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쓰이기도 하는 표어입니다. 한국교회가 언제부터인가 선교열풍이 불었습니다. 선교가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목적들이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며 해외선교지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하는 일을 하려할 때에는 뜻이 발라야 합니다. 다른 교회하기 때문에 경쟁심(競爭心)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해외에 교회 하나 건축했다며 자랑하려는 마음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가 경쟁심으로 선교하면 선교지의 교회들도 경쟁심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이름을 내려는 공명심(功名心)으로 하면 선교지의 교회들도 공명심이 이끌리는 교회가 됩니다. 뭔가 남을 돕거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할 때에 뜻을 더없이 맑게 해야 합니다. 내면을 돌아보고 가꾸는 작업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세계를 품는 교회로 오랫동안 쓰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자, 2,3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2,3)

 

 안디옥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禁食)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말이 쉬운 것 같지만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금식을 어떤 때 합니까? 뭐가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 뭔가 간절히 얻기를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주로 합니다. 하지만 안디옥교회가 금식한 이유는 주를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원래 금식은 기도응답의 도구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 내 자아(自我; ego)를 꺾기 위해서 하는 도구였습니다. 주님의 사십일 금식을 보십시오. 그 기도의 결과는 주님께서 물질과 명예와 권세의 유혹을 꺾으신 것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철저하게 마음의 뜻을 맑게, 올곧게 하는데 힘을 쏟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뜻을 세워놓고 ‘하나님, 우리가 뜻을 세웠으니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능력을 부어 주시사 이루어지게 해주시면 됩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들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경쟁심도 아니었고, 이름을 내고자 하는 공명심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비고 빈 마음에 진실히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었고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업적을 위해 정신없이 에너지를 밖으로만 쏟다가 내면이 빈약해지기도 하고, 내면의 정서적 안정을 추구하느라 밖의 일은 뒷전이 되기도 합니다. 두 가지가 같이 가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나 진실한 신앙의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안과 밖이 같이 갑니다. 오히려 말씀을 붙들고 기도를 힘쓰면서 내 속을 다스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밖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아이디어를 주시고 방법을 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진정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순수한 마음을 품게 되면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동안 내면을 가꾸는 일에 더욱 힘을 쏟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모습으로 가야 합니다.

 

 

 

맺는 말

 

 

 소래교회는 개척 2년 만에 교인이 7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예배 장소가 협소하여 증축을 두 번씩이나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인 수는 200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소래교회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제하고 이웃 마을들에도 교회를 세우는 등 순수한 뜻으로 주님의 뜻을 받들었기 때문입니다. 장연읍, 송화, 은율, 풍천, 문화, 해주, 옹진 등 인근 7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여 세웠습니다. 거기에 공명심이나 어떤 복받기 위한 조건은 전혀 없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순수함만이 있었습니다.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하니 교회가 세워진 곳마다 미신이 사라지고 투전이 사라지고 온갖 죄의 온상들이 사라지니 마을마다 분위기가 달라지고 기쁨이 넘쳐나는 순수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교회도 이처럼 세상에 희망을 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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