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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히브리서강해5 흔들리지 않는 반석 
본문 히브리서 7:11~28(신약359) 
날짜 2016-10-23 
설교자 전용표 목사 

 

  주중에 어떤 목사님과 함께 대화하면서 저의 목회생활을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먼저 담임목회 하기 전에 깨어지는 과정을 먼저 밟았다는 점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특별한 고난의 과정 없이 하나님께서 담임목회의 길을 열어주신 분들이 계신 반면 담임목회의 길을 열어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한 연단의 과정을 먼저 밟도록 하신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편하게 쓰실 수 있도록 부드럽고 순종적인 분들은 주로 고난의 과정을 생략하시고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고, 자아가 강해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까다로운 목사님들은 고난 수업을 거친 후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우리교회에 담임목사로 오기 전 고난의 과정 수업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덜 되어서 받은 수업이었지만 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수업이었습니다.

 다음은 목회가 뭔지, 목회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에서 배울 수 있는 좋은 목사님 두 분을 만났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는 저의 모교회 목사님이시고 두 번째는 약목교회 목사님이십니다. 제 모교회 목사님은 교회를 개척해서 한 교회에서만 38년 목회를 하시면서 교회를 건강하게 부흥시키고 은퇴하신 분이고 약목교회 목사님은 아직 현역에 계신 분입니다. 이 두 분은 목회하시면서 문제가 없는 분들이고 또 목회를 하시면서 특별한 방법을 쓰지 않는데도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을 해 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분이 목회하시는 스타일이 비슷한 점이 많은데, 제가 두 분의 목회비결 중 비슷한 점을 추려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속도조절능력이었습니다. 목회는 너무 빨리 가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느리게 가서도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조급하게 이루려다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너무 천천히 가서 모든 것이 흐지부지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두 분은 적당한 속도로 가면서 결국 원하는 것을 하나씩 이루어냅니다. 두 번째는 강약조절능력입니다. 목회는 너무 강해도 안 되고 너무 물러서도 안 되더라고요. 너무 강하면 자꾸 부딪히고 오래 가지 못하고 너무 무르면 교회 안에 사공이 많아져서 시끄러워집니다. 이 두 분은 적당히 강합니다. 외유내강입니다. 세 번째는 거리유지능력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게 됩니다. 가깝게 지내면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만 뭐지 않아 이런저런 문제가 생깁니다. 너무 멀어도 문제입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그것도 모든 성도와 거리가 일정해야 합니다. 누구와 더 가까워서도 안 되고 더 멀어서도 안 됩니다. 모두가 가깝게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면 모두와 멀리 거리를 두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것이 목회입니다. 이 두 분은 거리조절에 있어서 탁월합니다. 결국 두 분의 목회비결은 인간이 가진 죄성을 깊이 이해하였기에 나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저는 두 분이 가진 목회비결이 목회자들이 두고두고 따라야할 목회의 정석(定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금방 반짝하고 마는 목회방법을 가진 목사님을 만나지 않고 길게 하는 목회방법을 가진 분들을 만났다는 것이 굉장히 감사합니다. 물론 그분들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이런저런 실수가 많지만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흔들리지 않고 길게 가는 것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목회를 하는 사람은 목회철학이나 방법을 정할 때 단번에 뭔가를 이루려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도 돈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목표를 둘 때 흔들리지 않고 길게 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우리의 영혼의 문제는 더하지 않겠습니까?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진리 위에 우리 영혼을 맡겨야 합니다.

 

 

 

1.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

 

 

 오늘 말씀은 핍박을 피해서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히브리서 성도들에게 기독교의 예수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완전한 제사장이 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들은 ‘유대교에도 제사장 있다! 예수는 보이지도 않고 막연하지만 유대교에 있는 인간 제사장들은 눈에 보이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더 실제적으로 좋다’라고 말을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흠이 많고 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완전한 통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구약에 등장하는 두 계통의 제사장을 비교해서 논증(論證)해 나갑니다.

 구약에는 두 계통의 제사장이 나옵니다. 하나는 레위계통제사장이고, 또 하나는 멜기세덱계통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계 많은 레위계통의 제사장이 아닌 완전무결한 멜기세덱계통의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온전한 중보자가 되신다고 합니다. 6장 20절을 찾아서 읽습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6:20)

 

 구약에는 레위지파 중 아론의 혈통만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레위계통의 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구약에는 레위계통이 아닌 아주 특별한 제사장 한 명이 더 나옵니다. 바로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멜기세덱 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왕을 물리치고 그에게 포로로 잡혀가던 조카 롯을 비롯해 가나안지역의 주민들을 구출해 올 때 아브라함을 축복해주었던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때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며 겸손히 그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영원 전부터 세워두시고는 그 구원의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슬쩍슬쩍 내 비추셨습니다. 그래서 진짜 구원자가 이 땅에 오셨을 때 깨달을 눈과 귀가 열린 사람들은 보고 믿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모형론(模型論)>이라 하고 이 때 구약에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있거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닮아 있는 사건들을 일컬어서 <모형(模型)>이라 합니다. 멜기세덱은 여러 점에서 예수그리스도와 닮아 있어서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구약에서 미리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쓰임 받았던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멜기세덱도 예수님‘처럼’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었습니다(시편 110편 4절). 멜기세덱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영원한 존재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점 또한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예수님과 같습니다. 또 구약성경은 멜기세덱이 제사장이긴 하지만 레위계통의 제사장들이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이 제사장직을 이어받은 것처럼 자식에게 제사장직을 물려준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영원히 지속되는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지금 히브리서기자는 멜기세덱을 예로 들면서 예수님이 흠 많은 레위계통의 제사장이 아닌 시작도 끝도 알 수 없고 영원성(永遠性)과 완전성(完全性)을 가진 인물이었던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인간 구원의 조건 : 흠없는 제사장의 중보가 있어야 함

 

 

 

 히브리서 성도들 뿐 아니라 여러분과 저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온전한 제사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레위계통의 제사장은 다 흠이 있습니다. 11절을 봅시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11)

 

 레위계통의 제사장들은 전부 흠 많은 인간들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과 같습니다. 거룩하게 제사를 집례하지만 집에 들어가서는 부부싸움도 하고 자녀들에게 부족한 부모이기도 하고 또 죄를 짓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는 그들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존재가 우리의 구원의 중보자가 될 수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분에게서 은혜 받았다고 해서 목회자들을 너무 높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려고 말씀 전하는 시간에 그분을 쓰셨을 뿐입니다. 똑같은 인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습관이 사라진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목사가 우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제사장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흠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느냐? 여러분 어떤 과학자가 산소에 관해서 과학적인 설명을 1시간을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대체 저런 설명이 먹고 사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며 따분해 하거나 졸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데 붙박혀 있는 우리에게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는 산소는 사실 우리 생명과 질결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인 제사장의 자격문제가 실은 이와 같습니다. 현재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믿음이 장성하다는 것은 어떤 체험에 자꾸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원리, 구원의 원리에 믿음을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3.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중보자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자격이나 능력으로는 구원을 이루거나 영광가운데 계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에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보자인 제사장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나니”라고 하신 로마서 말씀이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전적 무능력함을 말씀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오늘은 종교학강의를 조금해야겠습니다. 종교를 분류할 때 흔히 저등종교(底等宗敎)와 고등종교(高等宗敎)로 구분을 짓습니다. 저등종교는 우환을 면하고 복 받는 것만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미신 같은 것으로서 수준이 낮다 이겁니다. 고등종교는 인간의 근본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득도, 해탈 등 종교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준이 높다 이겁니다. 세상 사람들의 분류로는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가 모두 고등종교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고등종교들이 모두 타락해서 오로지 돈 많이 버는 것만 추구합니다. 엉망진창입니다. 고등종교를 또다시 자력구원(自力救援)의 종교와 타력구원(他力救援) 종교 두 가지로 분류를 합니다. 깨달음, 득도, 해탈 등 각기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종교의 핵심은 구원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구원을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자력구원종교이고, 내 힘으로는 이룰 수 없고 누군가의 공력(功力)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타력구원종교입니다. 불교나 도교 힌두교 등은 다 내 힘으로 깨달아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자력구원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내 힘으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효력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타력구원종교입니다. 유교는 학문에 가깝기 때문에 뺐습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자력구원종교로 시작했던 불교와 힌두교 도교가 결국 시간이 지나자 타력구원종교가 됩니다. 불교도 부처를 신으로 만들어서 부처의 공력으로 극락왕생을 추구하는 종교가 되었고 힌두교도 브라흐마를 믿어 구원을 받는 종교가 되었고 도교도 깨달음의 종교로 출발하였지만 온갖 잡다한 신을 떠받드는 타력구원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하면 원래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고 달리 말해서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인간에게는 중보자인 제사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완전한 제사장의 도움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고, 영혼의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3장 23~24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깨달음과 구원은 다릅니다. 인간 영혼은 깨달았다고 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물질이 최고인 것처럼 되어버린 시대일수록 깨달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이 구원은 아닙니다. 저도 한 때 명상을 하면서 깨달음을 추구한 적이 있지만 인간 영혼의 문제는 깨달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깨달음으로는 영혼의 목마름이 완전하게 채워지지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만날 때에 채워집니다. 나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 예수 앞에 완전히 항복하여 예수 안에 잠길 때에 영혼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자신을 제물삼아 단번에 드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붙들 때에 우리의 죄가 해결되고 우리의 과거가 해결됩니다. 예수를 붙들 때 평생토록 내 발목을 잡던 과거 지었던 죄의 권세가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를 붙들 때 지금도 여전히 반복해서 짓는 죄, 그로 인해 양심의 찔림을 이기지 못하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25)

 

 

 그러므로 예수를 힘입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자격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격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오늘 주님의 자격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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