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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히브리서강해4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본문 히브리서 5:11~6:12(신약357) 
날짜 2016-10-16 
설교자 전용표 목사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사시면서 고난과 고통을 많이 당하셨고 또 유혹도 많이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십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가 되시려면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진짜 대제사장이라야 하고, 둘째는 그분이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력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결국 이 주제입니다. 5~7장까지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탁월하시다, 완전하시다는 것을 다루고, 8~10장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가 구약의 어떤 제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실 수 없도록 하는 완전한 효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다룹니다. 이것이 히브리서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 마땅히 선생이 되었어야 함에도... : 성숙하지 못한 현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생은 영원히 산다는 의미도 있지만 원뜻은 ‘하나님께로부터 난다, 하나님의 것을 덧입는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 곧 생기(生氣)가 내 속에 충만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豊盛)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하셨는데 하나님의 것이 나에게 풍성하게 임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여러분, 영생은 너무나 실제적인 것입니다. 예수를 알수록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심령이 건강해집니다. 예수를 알수록 인격이 좋아지고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예수를 알수록 지혜가 생겨서 인생을 실패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알수록 세상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 모든 것을 경험한 사람이기에 히브리서 성도들에게 예수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문제는 히브리서 성도들이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11절을 봅시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11)

 

 설교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성경을 성경대로 풀어서 먹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아는 만큼 내면에 힘이 생기고 인간을 이해하는 깊이가 깊어지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상을 보는 통찰력(通察力)이 생깁니다. 성경을 알면 기복이 심하던 신앙이 견고(堅固)해집니다. 이 성경말씀을 깊이 있게 전해주고 싶은데 제일 안타까운 것은 성경에 관한 관심이 적거나 잘 알아듣지 못할 때입니다.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히브리서 성도들이 이제 갓 신앙의 첫걸음을 떼어서가 아닙니다. 믿은 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12)

 

 믿은 지 오래 되어서 지금쯤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어야하는데 여전히 신앙의 초보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은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단단한 음식은 ‘책망이 있고 바르게 하는 말씀’입니다. 부드러운 젖은 그저 좋은 소리만 해 주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말씀에 입각해서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미성숙하면 종합판단능력(綜合判斷能力)이 없습니다. 마치 멋진 티셔츠를 보고 샀는데, 이것이 집에 있는 다른 옷이나 신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티셔츠를 입으려면 바지와 신발을 거기에 맞춰서 다 새로 장만해야 합니다. 노련한 사람은 집에 있는 다른 것들과 조화를 생각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물건을 구입합니다. 지금은 좋아보여도 이것이 나중에는 좋지 않게 될 수도 있고, 몇 몇 사람에게는 좋은데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장성한 사람은 이런 것을 전체적으로 판단하는 종합판단능력이 있습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이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있습니다. 예수를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유익이고 힘인지 모릅니다. 있는 자는 더 받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더욱 풍성히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2.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 성숙해야 하는 이유

 

 

 

 믿은 지 오래 되었어도 자라지 못한 히브리서 성도들에게 초보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1,2)

 

 길게 말씀하지만 핵심은 신앙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초보신앙을 버리고 성숙한 신앙으로 발돋움하라! 이 말씀입니다. 잃어버린 신앙의 목표를 만들고, 성숙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은 매너리즘(mannerism ; 형식주의)입니다. 그냥 대충 이제 알 것 다 알고 하니까 신앙이 건성 건성해도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신앙의 무덤입니다.

 예전에 유남규 현정화의 영향으로 탁구가 인기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탁구열풍이 불었는데 철웅이라는 후배가 탁구를 제일 잘 쳤습니다. 청년들이 방학이면 매일 탁구장에 출근을 하다시피했는데 1등은 무조건 철웅이였습니다. 우리는 철웅이를 넘을 수 없다는 집단체면 같은 것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경섭이라는 후배가 수원삼성에 취직이 되어 수원에 가서 한 달을 지내다가 내려왔는데, 이 후배가 철웅이를 이기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철웅이라는 상한선에 스스로가 묶여서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반해 경섭이는 이 울타리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한계선을 깨고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틀을 깨고 자라야 합니다. 정체되어 살아가는 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이겨내고 자라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완전한데로 나아가라! 목표를 성숙한 신앙에 두십시오. 성숙한 신앙은 스스로 해야 가능합니다.

누구에게 듣는 신앙, 남이 먹여주는 신앙으로는 자랄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해야 자랍니다. 우리나라는 주입식교육이 문제입니다. 공부도 운동도 모두 주입식(注入式)입니다. 지식을 구겨 넣습니다. 운동방법도 구겨 넣습니다. 처음에는 서구의 아이들보다 두각을 드러내지만 머지않아 역전당합니다. 창의적인 것이 나오지 않기에 더 이상 발전도 없습니다. 주입식은 남이 해 주는 것 받아먹는 식입니다. 자기 것이 없어요. 더 문제는 신앙까지도 주입식으로 해결하려는 데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하는 제자훈련도 필요합니다만 결국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스스로 말씀보고 스스로 기도하고 스스로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실컷 제자훈련 받았는데 여전히 스스로 못한다면 제자훈련 실패입니다. 스스로 해야 자랍니다.

 

 자라지 않으면 제자리걸음입니까? 아닙니다. 자라지 않으면 있는 신앙도 다 까먹고 훨씬 형편없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4~6절을 봅시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는 것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참여 한 바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말씀의 맛을 경험했다는 것이고 천국을 확신하기도 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렇게까지 하고서도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시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본문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구원받고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이 어떻게 타락해서 다시는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구원도 취소될 수 있단 말인가? 이 본문을 너무 확대해석해서 교리적으로 따져들면 곤란해집니다. 성경이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문학적인 기법들을 몰랐을 때에는 이 본문을 교리적으로 풀려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사용하는 다양한 문학적 기법들을 알고 난 뒤에는 성경학자들이 이 본문을 충격요법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충격을 주는 수사법(修辭法), 즉 레토릭(rhetoric)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 엉망으로 하다가는 하나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면 어떻게 할래?’ 이런 식입니다. 뒤의 9~10절을 보면 곧바로 격려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더 이해가 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9,10)

 

 교리적으로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자라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은 양심이 더 악해집니다. 세상에 나가보면 엉망으로 살면서도 ‘우리 어머니가 권사인데, 나도 청년회 임원까지 다 해봤다, 알 것 다 안다’하는 사람 있습니다. 누구든지 머리로만 아는 신앙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신앙이 그래서 위험합니다. 가슴이 있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이스라엘에서 20여년 사시면서 이스라엘을 연구하신 한 목사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 600만명이 죽었지요. 홀로코스트라고 합니다. 그 비극을 겪은 유대인들이 감옥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감옥 안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사는 삶을 가르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분이 세상의 주인이시다!’ ‘아버지,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우리 곧 있으면 가스실 가서 죽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하던 데서 구해주셨단다’ ‘그런 하나님이 왜 지금은 우리를 구해주지 않나요?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악이 저질러 질 수 있단 말이예요?’ 곧 가스실로 끌려가서 처참하게 죽을 어린아이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의미해 보입니다. 모순과 극한의 악이 가득한 포로수용소는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순도 허용하실 수 있으며 그 모순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자기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의 악함에 대해 깊은 교훈을 주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심어줍니다. 그리고 가슴에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죽음을 맞이하게 만듭니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입니까?

 오늘 우리는 갈수록 기본이 무너지고 야비한 술수와 힘의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말이 더 설득력을 얻는 세상입니다만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 굳건한 신앙입니다. 그분은 악으로 악을 이기신 분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신 분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과 악이 가득한 곳일수록 이 예수를 통해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형식주의를 이길 힘도 예수를 다시 붙드는 길밖에 없고 점점 악해지는 세상을 이길 힘도 예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3. 믿음의 승리자들을 본받으라 : 성숙의 징검다리

 

 

 

 그러기 위해서는 게으르지 말고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12)

 

 한 번 착한 일을 하였다해서 그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꾸준히 착한 일을 할 때 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앙도 꾸준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모델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쉽게 쉽게 건성건성 신앙생활 하는 사람보지 마시고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 진짜 그리스도인 같은 사람을 보고 본 받으십시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본받고 싶은 신앙인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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