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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히브리서강해2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본문 히브리서 3:1~19(신약353) 
날짜 2016-10-02 
설교자 전용표 목사 

  지난주에 두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히브리서를 받아보던 성도들의 상황(狀況)이었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천사보다 못한 육체(肉體)의 모습으로 오시게 된 이유와 목적이었습니다. 첫사랑의 뜨거움을 잃어버리고 냉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히브리서 성도들에게 뜻하지 않은 로마의 박해가 닥쳐왔습니다. 공포스러운 박해 앞에 히브리서 성도들은 급격히 흔들리게 되고 급기야 핍박이 없는 유대교로 돌아가서 마음 편히 신앙생활 하자며 공동체로부터 이탈(離脫)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이에 대해 신실한 영적지도자인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못해 보이는 육체로 오신 이유가 모든 사람을 위해 대신 죽이시고 육신의 연약함에 붙들려 종살이하는 자들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교에서 신처럼 떠받드는 모세와 예수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왜 예수라야 하는가를 논증(論證)하면서 마음을 완고(頑固)하게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1. 비교할 수 없는 예수

 

 

 

 먼저 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1,2)

 

 우리가 믿는 도리(道理)의 사도(使徒 ; ἀπόστολος)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합니다. ‘사도’는 ‘특별한 사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하는데, 예수님을 사도라고 한 이유는 예수님이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으셨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이 일들을 함에 있어서 예수님은 그 옛날 모세처럼 신실하게 일하셨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모세는 얼마나 충성스런 일군인지 모릅니다. 애굽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냈고, 홍해바다를 갈랐으며, 척박한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여 40년 동안 굶어죽지 않게 했으며, 하나님 말씀인 율법을 공포하여 오합지졸이던 이스라엘이 나라다운 풍모(風貌)를 갖추게 했습니다. 거기다가 이스라엘이 범죄 하여 심판을 받아야할 때마다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려 용서받게 해 주었습니다. 무슨 문제이든 결국에는 해결해 주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의 신(神) 같은 존재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모세가 승천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모세 승천기’같은 외경(外經)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모세조차도 집으로 친다면 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 예수그리스도는 집을 지으신 분입니다. 또 모세가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어도 모세는 단지 종으로서 충성한 정도입니다. 반면 예수그리스도의 충성은 종이 아니라 주인의 아들로서 충성입니다. 5~6절 상반절입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5,6a)

 

 종과 아들은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능력 있고 큰일을 이루고 기여한 바가 있더라도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핍박이 없는 유대교로 돌아가자! 거기엔 모세가 있지 않느냐?’라고 하는 자들에 대해 모세 아닌 모세 100명을 가지고 와도 예수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며 예수님 자리에 모세를 갖다 놓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선언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고 교회의 창시자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어떤 존재도 예수님과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예수님 자리를 대신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가 타락하고 진리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이 교회에서 예수님을 치웁니다. 예수님 자리에 유명목사가 앉아있고, 예수님 자리에 업적이 많은 사람이 앉아 있고, 예수님 자리에 영향력 큰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예수 없어도 프로그램으로 잘 돌아가는 교회, 재정력으로 잘 돌아가는 교회가 된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비극입니다. 이것을 더 이상 축복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재앙입니다. 교회가 치워버린 예수를 세상의 처세술이나 리더십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쏟아진 책들이 「최고경영자 예수」「예수의 비즈니스」「멘토 예수」같은 책들입니다. 예수를 연구해보니 거기서 무궁무진한 처세술(處世術), 성공술, 리더십기술들이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처세술이나 리더십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교회가 예수를 제대로 붙들지 못하니까 일어난 해프닝입니다.

 오늘 교회에도 예수가 중심에 계셔야 하고 내 삶에도 예수가 중심에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완고하게 되지 말라

 

 

 

 믿음이 식어지고 어디든 유리한 쪽으로 넘어가려고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히브리서 성도들에게 저자는 완고(頑固)하게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7~8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7,8)

 

 하나님의 말씀에 번번이 거역하던 광야 백성들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격노하게 하여 응당한 대가를 치루지 않았느냐? 너희는 그들처럼 하지 말라! 시편 95편을 인용하여 아주 강한 어조로 권면합니다. ‘완고하다’는 말 ‘스크레뤼노’는 ‘말라서 단단해지다’는 뜻입니다. 어렸을 적 소백산 끝자락 벽촌에서 물고기 잡고 놀 때 크다고 해봤자 어린애 손바닥만 한 붕어가 다였습니다. 어느 날 영주 장(場)에 다녀오신 어머니 장보따리에서 어른 팔뚝만한 고기가 나왔습니다. 말린 명태였습니다. 마르고 딱딱했지만 모양새하며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물고기였습니다. 물에 넣으면 꼭 다시 살아서 움직일 것 같았습니다. ‘저 큰 물고기가 우리집 고무다라이에서 헤엄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고대하고 고대했지만 그놈은 끝내 가족들 뱃속으로 들어갔지 살아나지는 않았습니다.

 완고하게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은혜와 은사가 나와는 소용없게 됩니다. 부드러운 마음이라야 합니다. 언제든 은혜의 단비가 쏟아지면 헤엄쳐 갈 수 있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히브리서 성도들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 마음이 완고해졌지만 오늘 우리시대는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절로 굳어집니다. 거기다가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줄만한 시간적 여유들이 너무 없습니다. 시간이 너무 팍팍하게 돌아갑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을 굳어지게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마음이 완고해지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부드러워야 은혜가 임합니다. 몽골에서 사역하시는 어떤 선교사님의 글에 그 교회에 푸릅에르덴이라는 청년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 청년은 울람바토르대학에 다니는데 꿈이 돈 많이 벌어 부자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모가 교회를 다녀보라 권해서 교회에 갔더니 한국인 선교사가 성경을 하나 준 것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는데 예수님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읽고선 ‘등록금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들어주시면 하나님 있는 것이고 안 들어주시면 하나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뭔가 기적 같은 일을 바랐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하고 교회에 발걸음을 끊었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주일학교 학생이 ‘예수 선생님 교회 안 가세요?’라고 하는 말에 마음이 찔려 다시 교회를 갔습니다. 아마 얼마 간 다니던 교회에 일손이 부족하니까 주일학교 일을 도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시 교회에 다니다보니 성경이 깨달아지고 마음에 믿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졸업반이 되어서 마지막 등록금을 내게 되었는데, 이번에 다시 기도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였습니다. 지역 국회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지난 번 선거 때 선거운동으로 도와줘서 고맙다면서 대학 등록금을 내주겠다는 전화였습니다.

 주일학교 어린이의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완고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에 은혜의 단비가 쏟아집니다.

 

 

 

3.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결국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박해 앞에서 믿음이 점점 약해지고 마음도 점점 굳어지고 있는 히브리서 성도들을 보면서 이름 모를 영적지도자가 내린 진단(診斷)은 그들이 예수를 놓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겨낼 수 있는 길은 다시 예수를 되찾는 길밖에 없는데, 예수를 되찾는 방법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봅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1)

 

 예수가 어떤 분인지, 그 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 분의 성품이 어떠한지 생각하라! 그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면서, 묵상하고 깨달아가면서 생각하라! 밥상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라! ‘깊이 생각하라’는 말 ‘카타노에사테’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런 뜻입니다. 밤에 개울가에 마실 나가서 개울물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야생오리(흰뺨검둥오리)를 보고 있는데, 멀지 않은 풀숲에 길고양이가 잔뜩 웅크리고 앉아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 보였습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리들의 경계가 늦추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맹수의 모습이었습니다. 몰입된 고양이의 모습이 깊이 ‘깊이 생각하다’라는 ‘카타노에사테’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어도 처음 예수 믿을 때 알았던 예수에서 조금도 더 깊어지거나 더 넓어진 것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반성해야 합니다.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지셨지!” 그게 다이면 곤란합니다. 그것은 출발입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를 묵상하고 공부하고 만나고 해서 예수에 대한 앎이 더 풍성해져야 합니다. 10년을 예수 믿었으면 1년 예수 믿은 사람보다는 예수에 관해 깨닫고 아는 것이 10배는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이지 종교생활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그러고 그 도를 행하며 살려는 것을 교(敎)라고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예수교’는 예수를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처럼 살려는 교입니다. 예수를 안만큼 예수처럼 사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보면서 놀랍고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웃다가 우시고 화내시다가 위로하시고 자유자재(自由自在)이십니다. 울어야 할 때 울 수 있고,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할 줄 알며, 분노해야할 때 대의를 위해 나설 줄 알며, 참아야할 때 소처럼 묵묵히 견딜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이 점이 너무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부러워한다고 해서 저절로 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하루를 살면서 단 5분 10분이라도 예수를 생각하십시오. 예수님 앞에 있다 생각하시고 눈을 감고 예수님께 나 자신을 비춰보십시오. 경쟁하던 마음, 분을 삭이지 못하는 마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마음, 유혹에 이끌리던 마음이 예수님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부끄러워집니다. 나의 잘못으로 회개하는 순간 모든 분주 복잡했던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마음에 고요가 찾아옵니다. 이것이 안식입니다. 예수를 묵상할 때 예수 안에 머무를 때 평안이 있고 안식이 찾아옵니다.

 그물에 많이 걸렸다고 좋은 것 아닙니다. 거기에 신다버린 신발이며 콜라병이며 못 먹는 물고기가 가득하다면 바쁘게 그물질한 것이 다 헛수고입니다. 시간을 내서 선별작업을 해야지 않겠습니까? 헌 신발? 쓰레기통! 못 먹을 물고기? 백 마리 천 마리라도 물에 던져야 합니다. 놔두면 죽어서 악취만 날 뿐입니다. 오직 값진 물고기, 의미 있는 물고기만 골라야 합니다. 예수 앞에 앉아서 예수를 묵상하면 예수님께서 선별작업을 해 주십니다. 너 오늘 바쁘게 살았다면 값진 것을 많이 건지지 못했구나! 이건 버려야 한다! 나중에 독이 될 뿐이야! 저건 지금은 하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값진 것이 될 터이니 간직하도록 하여라!

 힘 중에 가장 센 힘이 홀로 있을 수 있는 힘입니다. 예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을 꼭 가지면서 예수를 묵상할 때 오는 풍성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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