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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강해1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이유 (듣기)
2016.09.30 10:57
제목 | 히브리서강해1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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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히브리서 2:5~18(신약353) |
날짜 | 2016-09-25 |
설교자 | 전용표 목사 |
어떤 교회는 목사님은 성도들 재우는데 전문가인데 사찰집사님은 반대로 성도들 깨어 기도시키는데 전문가입니다. 목사님은 어찌된 일인지 설교만 했다하면 성도들이 전부 잡니다. 사찰집사님은 운전만 했다하면 성도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도를 합니다. 천국 갔더니 사찰집사님은 면류관 쓰시고 목사님은 개털모자 썼다나요? 오늘부터 몇 주간 히브리서를 살펴볼 것인데, 제가 개털모자 쓰게 될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는 신구약 66권 중에서도 어려운 측에 속하는 성경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구약의 제사장제도나 제사법에 근거해서 논증(論證)하고 있는 관계로 구약성경을 모르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히브리서가 구약의 제사장제도나 제사법을 많이 인용하는 이유는 히브리서 서신을 받아보는 사람들이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이름도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는 유대인들의 원래 이름입니다.
히브리서를 누가 썼는지는 모르고 단지 추측할 뿐입니다만 히브리서를 받아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많은 단서들이 있습니다. 일단 그들은 원래 유대교를 믿는 자들이었다가 누군가의 전도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굉장히 뜨겁고 열정이 있어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엄청난 핍박(逼迫)을 받아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핍박이 지나가자 믿음은 오히려 식어버려서 자라나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하였습니다. 강골(强骨)신앙에서 약골(弱骨)신앙으로 신앙체질이 한없이 약해졌을 때 생각지 않은 박해(迫害)가 또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마 네로황제 때 일어난 박해일 것입니다.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해 도시의 2/3가 불타버리자 극도로 악화된 민심은 황제 네로를 탄핵하려는 분위기로 치닫습니다. 네로는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을 퍼트려 기독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분노한 로마인들의 민심을 달래려고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원형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와 곰의 먹이로 주어 잔인하게 죽이는 광란(狂亂)의 학살극을 벌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체포되면 일단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신앙이 약해진 마당에 이런 핵폭탄급 박해가 시작됐으니 기독교인들은 하루하루가 공포스럽고 살얼음판입니다.
상황이 이정도 되자 유대인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차라리 유대교로 되돌아가자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아니, 유대교나 기독교나 똑같은 하나님 믿는 것 아니냐? 목숨 걸고 믿을 필요가 어디 있냐? 그냥 속 편하게 유대교로 돌아가자, 유대교 방법으로 하나님 믿으면 된다!” 이것이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천주교는 제사 지내도 되고 술담배 해도 뭐라 안하는데 왜 기독교는 제사도 안 된다 술담배도 안 된다하면서 힘들게 하나님 믿으라 그러느냐? 차라리 천주교 가서 편하게 하나님 믿고 싶다!” 비슷합니다. 거기다가 믿음이 식어지자 예수그리스도가 구세주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의심이 들었습니다. “천사보다 못한 육체를 가진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기독교신앙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인데 예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니까 다른 것들까지 흔들립니다. “유대교에 있을 때는 짐승을 잡아 바치는 제사를 드리니까 예배가 실감이 나고 좋았는데 기독교는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설교 듣는 것뿐이니까 뭔가 진한 맛이 없는 것 같아!” 짐승을 잡아 바치는 제사는 실감이 나는데 비해 기독교의 예배는 너무 단순하고 부족해 보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유대교에는 엄숙한 성전(聖殿)이 있어 뭔가 거룩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 기독교는 가정집 같은데서나 모이니까 그런 분위기도 없고....!” 당시 유대교는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버티고 있었고 각 지역에도 예루살렘 성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멋을 부린 회당(會堂;συναγωγή)이 있었는데 반해 기독교는 당시까지만 해도 예배당 건물이 없고 비교적 넓은 집을 가진 성도의 가정집에서 모였습니다. 신앙이 뜨거울 때는 이런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신앙이 식어지다보니 모든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듯 심각한 박해 속에서 유대교로 돌아가서 생명의 위협이 없이 편하게 종교생활 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던 성도들에게 극약처방(劇藥處方)으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어떤 답변을 주시겠습니까? “신앙생활 하다가 목숨까지 위태로워진다면 안 될 일이지! 신앙생활 잠시 중단하고 박해가 지나가면 그때 다시 와서 신앙생활 해라! 꼭 와야 돼! 알았지?” 뭐 이런 정도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히브리서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 물러나지 말고 박해 받는 자리에 머물러 있으라’ 였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궁극적 대답은 예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 때문에 살고 예수 때문에 죽는 종교입니다. 예수가 처음과 나중입니다. 교회가 건물도 있고 조직도 있고 프로그램도 있어도 예수 없으면 사교단체일 뿐입니다. 건물도 없고 조직도 없고 프로그램이 없어도 예수가 있으면 진정한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은 먼저 예수님이 왜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오셨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가 육체로 오신 이유 : 사랑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천사가 인간보다 월등히 영광스러운 존재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누추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 되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인간 예수가 사람이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냐? 사람들이 인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신격화 시켜서 믿는 것뿐이다!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기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이 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9절입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9)
죄의 대가로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인간 대신 죽기 위해, 죽을 수 없는 존재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시려고 육체를 가진 인간이 되셨다! 죽지 않는 존재이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시려고 우리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같아지는 것입니다. 병든 저 사람을 위해 같이 병이 들어버리고 죽을 저 사람을 위해서 같이 죽어버리는 것이야말로 겁나는 사랑이고 무서운 사랑입니다.
대학교수를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신 신영복선생님의 글에 보니, 감옥에서는 이기기만 하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고, 주기만 해서도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더랍니다. 한 번 이기면 한 번 져야 친구가 되더랍니다. 도움을 베풀기만 해서는 안 되고 도움을 받기도 해야 친구가 되고요. 같아져야 하는데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코스를 밟은 사람이고 대학교수로 살아온 사람이 평생 뒷골목인생 살다 감옥 온 사람들과 같아진다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고상함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에 베인 고급스러움을 버리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같아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람과 같아지는 것도 이처럼 어려운데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과 같아지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같아지기 위해서 죽음이 가능한 육체가 되셨습니다.
2. 그가 육체로 오신 이유 : 형제로 삼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왜 육체로 오셨는가? 그 이유를 11~13절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11)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거룩하지 않은 우리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우리들이고, ‘다 한 근원에서 났다’는 것은 한 분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는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예수님과 우리는 형제 관계가 되었습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지 않던 자들이기에 하나님 자녀 노릇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될 뿐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영원한 간격이 있어 도저히 불가능입니다. 예수님의 형제가 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비유’를 보면 모범생 큰아들이 탕자 동생을 동생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동생이요 형제로 기꺼이 받아들이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이 되셨습니다.
어떤 청년이 있었는데 엄마가 뇌출혈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재혼을 하였습니다. 새엄마는 마음씨가 고운 분이라 친자식처럼 대해줍니다만 죽어도 새엄마를 어머니로 부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엄마가 차려준 밥은 먹지 않습니다. 밥상 위에 밥은 건드리지도 않고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빨래도 절대로 안내놓고 자기가 빨래 다 합니다. 천성이 고운 새엄마는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소리 한 번 듣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러다가 이 아들이 급성신부전증이 와서 투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식을 받지 못하면 죽게 될 정도로 상태가 나쁩니다. 신장을 구할 길이 없습니다. 새 엄마가 신장 한 개를 의붓아들인 이 청년에게 떼어줍니다. 이식수술이 무사히 끝이 나고 전신마취에서 아들도 깨어나고 새엄마도 깨어납니다. 그때 아들이 새엄마를 보면서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진짜 어머니로 모실게요!’라고 합니다. 이때 이 순간에 이 ‘어머니’라는 말은 수백 톤의 무게를 가지는 가슴 저미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형제여!’라고 부르실 때 그것이 거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끊어지는 고통과 생명을 바치는 사랑이 통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는 것은 그 자체가 은혜요 복음인 것입니다.
3. 그가 육체로 오신 이유 : 종노릇 하는데서 놓아주시려고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그저 하늘보좌에 앉아계시지 않고 피조물인 인간의 혈과 육을 가지고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었는가? 그 세 번째 이유를 14, 15절에서는 한평생 육신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14~15절을 읽습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14,15)
최근 지진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불안해합니다. 불안하기는 한데 ‘죽으면 죽는 거지! 죽으면 천국 가면 되고!’ 이런 간 큰 생각도 한편으로는 있습니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것이 부모님과 아이들입니다. 나는 지진 나서 죽으나 교통사고로 죽으나 어차피 한 번 죽는 것 지금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는데, 물론 좀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어야겠지요?^^ 그런데 나 죽으면 부모님은 어떻게 되고 자식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이거 생각하면 살아야겠더라고요. 이것이 뭡니까? 육체(肉體)에 매여 사는 것입니다. 육체에 매여살기에 마음대로 못합니다. 우리가 육체에 매여 살기에 때로는 주님 뜻대로도 못 삽니다. 살아야 할 줄 알면서도 약해지는 겁니다. 때로 마귀는 우리가 육체를 가진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교묘하게 압박(壓迫)을 가해 옵니다. 그 앞에서 한없이 약해질 때가 있어요. 나중에 돌아서서 보면 내가 평생 육체에 매여 종노릇하다시피 산 것을 깨닫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가 임하고 예수의 영이 임하시면 우리가 육신에 매여 살던 것을 이길 수가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는 그런 강력(强力)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혈과 육을 가진 인간으로 오셨지만 육체에 얽매여 종노릇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여 참인간을 살아내셨습니다. 육체의 연약함을 가졌으나 연약함으로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살아내셨기에 예수의 영이 임하는 곳에는 그 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는 환경의 문제, 습관의 문제, 죄의 문제, 중독의 문제, 관계의 문제, 과거사의 문제 등 우리를 얽어매는 그 어떠한 문제라도 능히 끊어놓을 수 있는 강력함이 있습니다.
부목사 시절, 담임목사님이 몽골에 2주 동안 단기선교를 가셨습니다. 싫겠습니까, 좋겠습니까? 위에 사람 없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담임목사님 안 계시는 동안 장례가 한 건 발생했는데, 장례식 따라는 다녔어도 직접 집례를 해봤어야지요? 땀이 바짝바짝 납니다. 거기다가 돌아가신 분이 유명인사다보니 조문객도 많이 오고 조문 오는 교회들도 여럿 있는 것이 얼마나 긴장되고 힘이 들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장례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일 낮 설교! 들을 때는 쉽게 보였던 주일 낮 설교가 그렇게 힘든 것인지 처음 느꼈습니다. 부교역자니까 수요설교 주일오후 설교를 할 기회는 많았지만 주일 낮 설교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주일 낮 설교는 이상하게 달라요. 영적부담감과 중압감이 굉장합니다. 두 주 주일 낮 설교 하고 나니까 몸이 헬쑥해졌습니다. 두 주 지나서 담임목사님 돌아오시니까 이제는 해방입니다. 그토록 짓누르던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깊이 묵상하면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를 사모하고 영접하는 곳에 얽매였던 모든 사슬들이 끊어집니다. 예수를 깊이 묵상하고 예수가 깊이 임하는 심령 되시고 얽어매는 모든 인생의 사슬들이 끊어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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