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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사기강해18 삼손의 외로운 투쟁 
본문 사사기 15:1~13(구약 386) 
날짜 2016-08-21 
설교자 전용표 목사 

  사람이 보기에 들에 잡초는 그야말로 잡초들입니다. 하지만 황사가 일어나는 황량한 사막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저 산야(山野)를 덮고 있는 잡초들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요즘처럼 두 달 간 계속된 불볕더위로 대지가 벌겋게 달아오른 때에 저 잡초라도 없었으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요즘처럼 잡초가 고마운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잡초의 생명력에 또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누군가 잡초의 생명력을 인간에게 접목시키는 기술만 개발한다면 그 사람은 역사에 남을 지도 모릅니다. 잡초를 다른 시각에서 한 번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보는 눈을 달리하면 잡초도 능히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화단에서 곱게 길러진 화초나 전문 조경사가 전문적으로 기른 멋진 나무보다 실은 저 무성한 잡초와 잡목들이 대지의 원래 주인들, 주인공들이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 주인공과 엑스트라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죽을 때 말을 많이 하고 죽지만 엑스트라는 쉽게 죽습니다. 정말 진한 감동을 주는 영화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입니다. 희극은 웃음을 주지만 비극은 인생의 깨달음을 줍니다. 희극이 주는 재미는 머릿속에 남지만 비극이 주는 감동은 영혼에 깃들입니다. 희극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남들에게 부러움을 갖게 하지만 비극의 요소를 품고 사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인생을 생각게 하는 감동을 끼칩니다.

 오늘 설교는 8.15 광복절이 얼마 전에 지난 관계로 삼손의 비극적 인생과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를 아울러 생각을 해 본 설교입니다.

 

 

 

 

1. 삼손의 동역자

 

 

 

 내기에 져 단단히 화가 나 돌아갔던 삼손은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처갓집에 팽개치고 온 아내를 되찾고자 갑니다. 이때가 밀 거둘 때라고 했으니 아마 추수 때였나 봅니다. 삼손은 빈손으로 가지 않고 염소 새끼 한 마리를 가져갑니다. 화를 이기지 못해 갓 결혼한 신부를 버려두고 본가(本家)로 가버린 것이 못내 미안했겠지요. 그런데 반겨야 할 장인(丈人)이 아내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자기 딸이 소박(疏薄)맞은 줄 알고, 결혼식 들러리 섰던 블레셋 사람 중 하나에게 줬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동생이 더 예쁘니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삼손은 아내 찾으러 갔다가 뚜껑이 열려버렸습니다.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고 선전포고를 합니다.

 혼인한 아내를 빼앗겼으니 삼손은 블레셋을 칠 수 있는 분명한 명분(名分)이 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삼손은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방법으로 적진을 향해 돌격합니다. 어디서 잡았는지 여우 300마리를 잡아서 두 마리씩 꼬리를 묶고 그 사이에 횃불을 달아서 딤나들판에 풀어놓은 것입니다. 딤나는 아주 기름진 평야지대입니다. 추수철 누렇게 익은 황금들판에 꼬리에 불을 단 여우 300마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니까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아 그 너른 들판을 순식간에 다 태워버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과연 이런 방식의 전쟁이 실제로 가능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데 동양 역사에도 ‘화우지계’(火牛之計)라는 고사(古事)가 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에 연(燕)나라와 제(제)나라가 싸울 때에 제나라의 전단(全端)이라는 장수가 소 천 마리의 꼬리에 불을 붙여서 적진으로 돌진시켜서 대승을 거둔 사건이 있는데, 이를 ‘화우지계’라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인도의 코끼리부대와 싸울 때 말에 불을 붙여 달리게 한 화공법(火攻法)을 썼었습니다. 삼손이 훨씬 이전의 사람이니 삼손이 원조인 셈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삼손이 그 짧은 시간에 여우 300마리를 포획할 수 있었던 비결’을 궁금해 하는데 이런 것을 일컬어 ‘헛다리짚기’라고 하지요. 이 사건의 핵심(核心)은 ‘삼손이 어떻게 여우 300마리를 잡을 수 있었나’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중 그 누구도 삼손을 돕지 않았기에 삼손이 동원할 수 있는 군대는 말 못하는 짐승들뿐이었다는 점입니다. 삼손은 계속 혼자입니다. 정복자(征服者) 블레셋에 맞서 싸우는 외로운 독립투사(獨立鬪士)입니다. 의로운 일에 함께 하는 이 하나 없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삼손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삼손에게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보릿고개 이야기를 해주니까 듣고 있던 손자가 “할아버지, 밥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먹지 그랬어?”라고 했다지요? 주식(主食) 외엔 대체식량(代替食糧)이 없던 당시, 무르익은 들판이 잿더미가 되는 국가적 재앙(災殃)을 당한 블레셋은 즉시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를 합니다. 조사를 했더니만 범인(犯人)은 삼손이고 원인제공자는 삼손의 아내와 장인임이 밝혀졌습니다. 격분한 블레셋은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삼손은 아내와 장인을 죽인 블레셋 사람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좀 더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敢行)합니다. 8절은 꽤 큰 싸움이 있었고 이 싸움에서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무찌르고 에담 바위틈에 은신했다고 보도합니다. 8절을 한 번 볼까요?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8)

 

 ‘정강이와 넓적다리’는 힘을 상징하는 관용적 표현으로써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였다’는 말은 ‘힘 꽤나 쓰는 사람들을 무찔렀다’는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혼자 싸우지만 번번이 승리를 이루어내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젊은 사자를 때려잡은 체험을 통해 약속하셨던 것을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2. 블레셋의 분열책(分裂策)

 

 

 

 곡창지대를 불태워 국가적 손실을 입힌 삼손에게 싸움에서도 패하자 블레셋은 약이 바짝 오릅니다만 삼손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블레셋은 삼손을 잡아오도록 삼손의 동족인 유다지파 사람들에게 압박을 가합니다. 9~10절을 봅시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가득한지라 유다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온 것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하는지라(9,10)

 

 ‘일주일 말미를 줄테니 삼손을 잡아오라! 만약 잡아오지 못하면 대신에 너희들을 요절낼 것이다!’ 이런 협박입니다. 독재자나 제국주의자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지요.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마키아벨 리가 쓴 「군주론」에 보면 ‘분열책’(分裂策)이라는 통치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힘이 강하면 분열을 시켜서 힘을 분산시킨 뒤 하나씩 하나씩 잡아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모든 독재자나 남의 나라를 잡아먹은 정복국가들은 모두 이 방법을 썼습니다. 중국도 ‘이이제이’(以夷制夷)라 하여 오랑캐를 통해 오랑캐를 친다는 전략을 오랫동안 사용해서 주변국들을 제압하지 않았습니까? 중국은 자기들 빼고는 모두 오랑캐라 불렀습니다. 동쪽에 있으면 동이(東夷), 서쪽은 서융(西戎), 남쪽은 남만(南蠻), 북쪽은 북적(北狄)이라 부르면서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하고 서로 치고 박도록 뒤에서 조종하면서 오랫동안 주변나라들 위에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잡아먹은 후 썼던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민족을 갖은 방법으로 분열을 시켜서 하나 되지 못하게 해 놓습니다. 하다못해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퍼트려서 같은 민족끼리 서로 미워하게 하고, 또 ‘너의 민족은 당파싸움 하다가 망한 나라로서 절대 하나 되지 못하는 아주 나쁜 민족성을 가진 질 낮은 민족이다’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주입을 해서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분열책이자 민족성말살정책(民族性抹殺政策)입니다. 여러분, 우리민족이 그렇게 형편없는 민족 아닙니다. 하나 되지 못하는 민족성을 가진 민족 아닙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가 800년입니다. 신라는 1000년입니다. 고려가 500년 역사, 조선의 역사가 500년이 넘습니다. 중국이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만 중국에는 400년 500년 이어졌던 왕조가 거의 없습니다. 한나라가 겨우 400년 역사였고,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전부 300년 전후밖에 안 됩니다. 진시황의 중국대륙을 통일해서 세운 진나라 겨우 17년 만에 망하였고 우리나라 고구려를 쳐들어왔던 수나라는 30년 만에 망한 나라입니다. 하나 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400년 500년 800년 1000년을 이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당파(黨派)는 당파싸움이 아니라 왕이 독재정치를 하지 않고 당(黨)이 있어서 당이 논쟁을 통해서 정치를 하는 오늘날 정당정치(政黨政治)와 같은 것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정당정치를 이룩한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도 우리민족이 더 빠릅니다. 여러분 일제의 잔재(殘滓)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민족은 결코 못난 민족이 아닙니다. 일제가 뿌려놓은 가라지를 거둬치우면 정말 좋은 민족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왜 분열책을 쓸까요? 하나 되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하나 된 힘은 그 어떤 독재자도 무너뜨릴 수 있고, 그 어떤 강력한 제국주의국가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쁜 정치인들은 항상 교묘히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전라도 경상도로 나눠서 싸우도록 하고, 세대별로 싸우도록 하고, 이념가지고 싸우도록 하고, 남자 여자도 서로 혐오하고 싸우도록 합니다.

 사사기 13장 1절에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40년 지배했다고 했으니 일제(日帝)가 우리민족을 지배한 것보다 깁니다. 블레셋이 썼던 방법이 바로 이 분열책입니다. 서로 잡아다가 갖다 바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본도 우리나라 독립투사들 탄압할 때 누구를 앞세웠습니까? 조선사람들을 앞세웠습니다. 국내에서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 체포할 때도 그러했고, 만주에서 광복군이나 독립군과 싸울 때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일본육군사관학교(日本陸軍士官學校)나 만주군관학교(滿洲軍官學校) 출신 장교들을 야전부대지휘관으로 임명해서 앞장세웠습니다. 고문할 때도 우리나라 형사들 중 고문전문가들을 앞세워서 고문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민족끼리 사랑할 수 없습니다. 증오와 저주가 뿌리내리게 됩니다.

 지금 블레셋이 유다를 압박해서 삼손을 잡아다 바치라 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가 공동체를 허물어뜨릴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분열책입니다. 갖가지 구실을 만들어서 서로 하나 되지 못하게 합니다. 서로 동역자의식이 아니라 경쟁자로 여기게 합니다. 서로 싸우다가 힘을 더 소진해 버리고, 정작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힘을 써야할 때는 남아있는 힘이 없도록 만듭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3. 비극의 주인공 삼손

 

 

 

 오늘 본문에서 가장 어이없고 실망스러운 장면이 바로 유다가 삼손을 잡아서 블레셋에게 넘겨주는 장면입니다. 유다사람들은 블레셋의 협박에 굴복해서 3000명의 결사대를 구성해서 삼손이 숨어있는 에담바위틈으로 옵니다. 찾아와서 한다는 말을 보십시오. 11절 앞부분을 읽습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11a)

 

 “삼손 너는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통치하고 있는 걸 모르느냐? 어쩌자고 블레셋 사람들 신경을 건드려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느냐? 너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졌다!”

 

 우선 유다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민족의 주체의식(主體意識)은 하나도 없고 블레셋의 통치를 당연하게 여기는 식민지근성(植民地根性)에 찌들어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의식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점입니다. 누가 세상의 통치자이십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나라와 민족은 식민지를 살든 말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편하면 되고, 내 먹고 사는데 지장 없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니까 힘센 자 앞에서는 바른 소리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비굴하게 살았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으면서 저항(抵抗)해야할 때 저항하지 못하고 비굴하게 순응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오히려 불의(不義)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면서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유다의 모습입니다.

노예근성에 찌든 유다사람들이 보기에 삼손은 불순분자(不純分子)이자 세상을 요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블레셋의 통치아래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괜히 삼손이 설쳐대는 바람에 평화가 깨어지고 있다 이겁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삼손은 독립투사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도 아닙니다. 그저 평화를 깨는 테러분자일 뿐입니다. 블레셋을 물리치려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 삼손인데 유다사람들은 자기들만 다시 편안해질 수 있으면 그런 삼손도 잡아서 바칠 수 있다 이겁니다. 아주 이기적인 평화주의자들입니다.

 사사기 1장을 보면 가나안 정복전쟁에 선봉장에 섰던 지파가 유다지파인데, 지금은 가나안족속에게 동족을 잡아다 바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영적자부심을 완전히 상실해버렸습니다. 3천 결사대를 모았으면 차라리 삼손을 도와 블레셋과 한 판 붙어보는 편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는 명예를 선택하는 것이 비굴한 굴종(屈從)의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더 슬픈 장면은 삼손이 유다 사람들 손에 체포되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인계되는 장면입니다. 삼손으로서는 도저히 동족과는 싸울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삼손의 인생이 어쩜 이럴까요? 너무 외로운 인생인데다가 그토록 동족 위해 목숨 걸고 싸웠건만, ‘너 때문에 우리가 위험해졌다며’ 잡아서 넘기다니요? 삼손의 인생이야말로 비극(悲劇)의 연속입니다. 혼자입니다. 결혼이 실패합니다. 민족을 위해 나서도 아무도 함께 해 주지 않고 오히려 핍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블레셋의 지배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블레셋의 분열책에 놀아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잡혀죽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런 삼손의 불굴의 버티기와 저항정신(抵抗精神)이 결국 사사시대 암흑기를 몰아내는 한줄기 빛이 됩니다.

 부산 남포동 근처에 골목상권이 있는데, 거기서 어린 자녀들 홀로 키우는 젊은 새댁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조직원들이 관리하는 지역으로써 조폭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하고 향응접대를 하지 않으면 발붙이고 장사하기가 힘듭니다. 젊은 새댁에게도 압박이 들어오지만 상납하지 않고 버팁니다. 상납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몸까지 요구합니다. 남편 없는 여인에다 얼굴도 예쁘니 뒷골목의 왈패들이 가만 놔둘 리가 있겠습니까? 순순히 순응하지 않는 새댁을 주먹으로 가격하고 피투성이 되자 머리채를 잡고 골목을 끌고 다니기도 합니다. 1년 2년을 그렇게 해도 죽기살기로 버팁니다. 어떤 때는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집게로 겁탈하러 덤벼드는 깡패의 지져서 경찰에 잡혀가기도 하면서 버팁니다. 나중에는 조직원들이 두 손 두 발 다 듭니다. ‘저 X은 감당이 안 돼!’ 피흘려가며 버틴 끝에 자유(自由)를 쟁취합니다.

 비극적인 요소가 많은 인생일지라도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주도하는 질서와 세상풍습에 길들여지지 않고 저항하며 버틸 때에 비극적인 인생은 비극적인 인생으로만 끝나지 않고 세상을 감동시키는 인생으로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5천년 역사가 침략의 역사입니다. 고통이 많은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서서 바른 것을 추구하는 민족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21세기에 세계를 선도(先導)하는 민족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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