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home
  • 주일설교

제목 사사기강해14 암흑의 시대 분열의 시대 
본문 사사기 12:1-7 
날짜 2016-07-24 
설교자 전용표 목사 

  바리새인들이 주도하는 이스라엘의 신앙분위기는 참으로 암울했습니다. 이런저런 많은 항목을 마련하여 그것을 지키는 자기들은 한껏 치켜세우고 사는데 바빠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마구 정죄의 화살을 쏘아댔습니다. 그들이 주도하는 신앙생활과 성전에는 생수라고는 찾아볼 길 없었으며 기쁨의 샘은 말라있었습니다.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나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암울한 세상에서 노예와 방불한 삶을 마지못해 사는 이들에게 찾아와 한바탕 잔치를 벌였습니다. 구원이 선포되고 병이 낫고 귀신이 도망가고 함께 먹고 마시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분이 가는 곳마다 파티가 열리고 축제가 시작됐습니다.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는 가운데 과거가 치유되고 앞날의 희망이 싹텄습니다.

 지금도 예수의 영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함이 넘칩니다. 치유의 역사가 임합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성령으로 잔치가 벌어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축제가 없는 교회는 쇠락(衰落)하고 축제가 넘치는 교회는 흥왕(興旺)하게 됩니다. 올 여름 행사들이 진실로 말씀축제 성령축제의 장이 되어 시들했던 우리 심령이 비온 뒤 힘 있게 치켜든 들풀처럼 살아나기를 축원합니다.

 

 

 

 

1. 에브라임의 특권의식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 비류(匪類)들의 우두머리에서 일약 이스라엘의 전체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만 자신의 성급한 서원으로 인해 딸을 불태워 인신제사(人身祭祀)로 드린 상황이기에 기쁨보다는 쓰라린 마음이 더 컸습니다.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입다의 심기를 크게 뒤흔드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온 것입니다. 1절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1)

 

 입다가 싸우러 갈 때에 자기네 지파를 부르지 않아서 이 승리의 영광에서 자기들만 소외(疏外)되어서 기분이 몹시 얹잖다는 것입니다. 아니 입다와 입다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건 뭐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에 휩싸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입다의 말을 들어보면 입다가 에브라임 사람들을 불렀는데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2,3절을 보세요.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나는 너희가 도와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2,3)

 

 항상 그렇듯이 한쪽 말만 들으면 안 되고 양쪽의 말을 다 듣고 판단해야 하는 법입니다. 부르지 않아서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불러도 오지 않았던 것이고, 전쟁이 끝나니까 나타나서는 딴죽걸기를 하는 겁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 때도 똑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삐뚤어진 특권의식(特權意識)에서 비롯된 에브라임 지파의 못된 습성(習性)입니다. 에브라임 자부심이 강했던 지파입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을 굶주림에서 구원했던 요셉이 자기네 지파 조상입니다. 가나안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모든 백성에게 땅을 나누어 준 불세출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자기네 지파출신입니다. 이것이 특권의식이 된 것입니다. 너네가 누구 덕에 먹고 살았는데?” “우리 여호수아 아니면 무슨 수로 땅을 얻고 집을 마련했겠어?” “이 나라가 누가 세운 나라인데? 이것이 다 누구 것인데?” 이런 특권의식과 기득권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는 에브라임 지파사람들이, 길르앗이라는 보잘 것 없는 지방출신에다 기생의 자식이고 잡류(雜類)들의 우두머리출신인 입다의 부하로 출전(出戰)하겠습니까? 어림없지요. 그래서 ‘전쟁 났다 도와 달라’ 할 때 외면한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니까 승리의 주역인 입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건 더 못 참겠는 거예요. 주도권은 항상 자기들에게 있어야 하고 주도적 역할을 남이 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 ‘칼을 물고 죽을지언정 저런 창녀의 자식을 상전(上典)으로 모시고는 못 산다!’하고는 불사르겠다고 몰려 온 겁니다. 세종대왕 때에 측우기와 자경루를 만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던 천재적 인물 장영실을 아실 것입니다. 장영실이 입다와 꼭 마찬가지로 기생출신이었는데 그 재주가 너무 뛰어난 것을 알아본 세종대왕이 천출(賤出)인 장영실을 면천(免賤)시키고 벼슬까지 주어 등용(登用)한 것입니다. 하지만 천출이 벼슬까지 하는 것을 아니꼽게 본 사대부 양반출신의 기득권자들이 결국 장영실을 몰아내고 죽여 버립니다. 그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일은 특권의식이나 기득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일에 특권의식이나 기득권처럼 방해되는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아야할 대표적인 옛사람의 습성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딜 가든 종의 정신으로 살아야지 특권의식이나 기득권의식을 가지고 살면 안 됩니다. 세례요한을 보십시오. 자기스승보다 예수께 세례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얹잖아 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뭐라고 하였습니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주님이 우리에게 모범으로 주신 세례요한은 당대 최고의 선지자였으면서도 철저히 내려놓고 종의 모습을 취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주도권에 민감하게 살아갑니다.

 말의 주도권에 민감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럿이 모였을 때에 남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면 속이 불편해집니다. 결정권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면(前面)에 드러나서 주도해 나가는 것은 아닌데 어쨌든 자기 방식대로 일이 결정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속이 불편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딴죽걸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자리의 주도권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방식대로 일이 되든 안 되든 그런 건 민감하지 않은데 자리에는 유달리 민감한 경우입니다. 이 외에도 관심의 주도권, 영향력의 주도권 등 얼마나 많고 다양한 경우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참 다양한 방법으로 주도권에 집착(執着)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주도권은 결국 하나님 뜻에 합한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쫓기는 자요 사울은 쫓는 자였습니다. 칼자루가 사울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서를 읽어보면 주도권이 사울에게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다윗에게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어려움과 억울함이 있어도 다윗이 하나님 뜻에 합한 인생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니까 하나님께서 사울이 주도권을 행사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히 막으시고 쫓겨 다니는 약자였던 다윗이 주도권을 쥐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 쓰는 방법으로 주도권을 쥐려고 하면할수록 더없이 초라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방법으로 주도권 쥐려고 애쓰도록 내버려두고 하나님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은 그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려고 애를 쓰면 됩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무게중심이 나에게로 쏠리는 시점이 찾아옵니다. 기도를 부탁해옵니다. 속내를 털어놓기를 시작합니다. 인정하기를 시작합니다. 방법을 의논하러 찾아옵니다. 결국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입다의 포용력 부족

 

 

 

 도망친 놈의 후손, 불살라버리겠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입다의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콕콕 찌릅니다. 입다는 쫓겨난 상처가 있지 않습니까? 무남독녀(無男獨女)를 불태워 죽게 한 아픔이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 기드온은 그래도 성격이 좀 유한 편이어서 에브라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지만 입다는 유한 편이 아닙니다. 가만있지 못하고 또 다시 군대를 모아서 에브라임 지파와 전면전을 단행하고 맙니다. 상황은 입다 쪽으로 기울어지고 에브라임 사람들은 자기네 땅으로 도망을 치려고 요단 나루턱을 건너려고 합니다. 그때 입다는 요단 나루터를 장악하고는 도망치는 에브라임 사람 색출(索出)작전을 폅니다. “잠시 검문검색이 있겠습니다. ‘쉽볼렛’이라 해 보십시오!” 평양사람들은 ‘지읒’발음이 잘 안 되다보니 ‘정거장’을 ‘덩거장’이라고 하고, 경상도 사람은 ‘의사’를 ‘으사’라고 하고 ‘죄’를 ‘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역대대통령 중에는 ‘확실히’를 못해서 ‘학실히’라고 했던 분도 있잖아요? 이와 마찬가지로 에브라임 사람들은 ‘쉬’라는 발음을 못해서 ‘시’라고 발음하는데, 그러다보니 ‘곡식 열매’라는 뜻의 ‘쉽볼렛’을 ‘쉽볼렛’이라 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해버립니다. 여기에 착안을 해서 에브라임 사람을 색출한 것입니다. 검문소를 설치해 놓고 사투리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조리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6절을 보면 이렇게 해서 입다가 죽인 에브라임 사람이 몇 명이라고 나옵니까? 6절을 한 번 읽어볼까요?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6)

 

 42,000명! 엄청납니다. 민수기 26장에 인구조사 한 것을 보면 에브라임지파의 장정수가 32,500명입니다. 그때로부터 300년 가까이 지났으니 사람이 늘기는 늘었겠지만 그래도 42,000명이 죽었다는 것은 에브라임 지파의 존폐(存廢)가 걱정되는 숫자입니다. 입다가 얼마나 독을 품고 인정사정없이 죽였는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은 입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후 가장 크고 결정적으로 한 일이 바로 동족(同族)을 학살하는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원인제공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했습니다만 다른 길도 있지 않았습니까? 반대와 비판을 수용해 내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입다도 쫓겨나서 돕 땅에 거할 때는 잡류들을 받아들이는 포용력(包容力)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힘이 생기면 생길수록 포용력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더 좁아져 버렸습니다.

 포용력이라는 측면에서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어집니다. 입다처럼 가면 갈수록 포용력이 없어지는 사람, 더 좁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이 방법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왔는데, 내 말 들어라!’ 이런 식입니다. 반대로 다윗처럼 갈수록 더 넓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후 사울파의 핵심인물들을 제거하기보다는 다 끌어안고 갑니다. 나중에는 압살롬반란군의 괴수 아마샤까지 요직을 줍니다.

 입다와 다윗의 차이는 하나님 앞에 서는가 서지 않는가의 차이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족함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성령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채워주심을 받지 못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니까 모두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으로 여겨지고, 모두가 귀한 동역자요 내 인생의 자원으로 느껴집니다. 성령으로 채워지니까 마음이 두 배 세 배 확장되어서 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하는 포용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만 마음을 넓히기 위해서는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야 하는 영역입니다.

 여러분 욕심을 좀 가지십시오. 20평에 사는 사람이 18평으로 가려고 애를 씁니까, 30평으로 가려고 애를 씁니까? 집 평수는 욕심을 부리면서 마음의 평수에는 왜 욕심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은 적어도 그곳에서 가장 넓은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3. 분열의 시대 화합의 시대

 

 

 

 입다에 관한 기록을 보면 정작 중요한 암몬과의 전쟁사건은 짧게 기록하고 있는 반면 입다의 서원과 에브라임지파와의 갈등과 전쟁에 관해서는 매우 길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특이합니다. 왜일까요? 사사시대가 깊어지면서 나타난 중요한 문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족속보다는 동족끼리 싸우는 일이 더 잦아졌다는 것을 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외부세력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부적인 분열과 갈등, 다툼이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 때 에브라임지파와는 싸움을 피했지만 싸움에 협조해주지 않는다하여 브누엘과 숙곳 사람들은 죽였습니다. 그들은 요단동편 땅에 사는 동족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아버지의 업적을 등에 업고 스스로 왕이 되었을 때 그것 때문에 또 동족끼리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입다가 에브라임지파를 학살하였고, 나중에는 레위인의 첩이 살해된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11지파가 베냐민지파를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하는 비극이 또 발생합니다. 사사시대가 중반을 넘어서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나타난 현상은 분열과 갈등, 다툼이었습니다. 사소한 다툼이 아니라 원수처럼 헐뜯고 서로를 짓밟는 살벌한 싸움이었습니다.

 이제 싸움의 대상(對象)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저 악한 가치관으로 무장한 세상과 그 세상 이면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의 권세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내 경쟁자가 주된 싸움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어느 시대건 나타나는 자기파멸적(自己破滅的) 현상입니다. 좀 뒤틀리면 여지없이 적으로 간주해서 싸우고 죽이는 일도 불사(不辭)하는 현상이 교회 안에 나타납니다. 그러니 평안이 있겠습니까? 예리하게 성경을 보시는 분들은 발견하셨겠지만 입다의 기록에는 ‘몇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 평안이 사라진 시대, 그게 사사시대입니다.

 문제가 없는 교회는 겨우 좋은 교회이지만 문제를 극복해내는 교회는 위대한 교회입니다. 사람이 모이는데 문제가 없을 수야 있나요? 크고 작은 문제가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입니다. 그러나 은근슬쩍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정면으로 해결해 내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초대교회도 히브리파성도들과 헬라파성도들이 나뉘어서 갈등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상에서 완전체교회란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교회는 그것을 어쨌든 해결해 내고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켜내지 않습니까? 이것이 초대교회의 위대함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소소한 일들은 있기를 바라는 목사입니다. 그래야 신앙이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교회가 문제를 해결해내는 일에 성숙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교회는 위대한 교회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번호 제목 본문 날짜 설교자
158 [05-15] 사사기 강해5. 사사 옷니엘 사사기 3:7~11  2016-05-15  전용표 목사 
157 [05-22] 사사기 강해6. 사사 에훗 사사기 3:12-23  2016-05-22  전용표 목사 
156 [05-01] 사사기 강해4. 다음세대 다른세대 (듣기) 사사기 2:6-10  2016-05-01  전용표 목사 
155 [04-24] 사사기 강해3. 길갈인가 보김인가 (듣기) 사사기 2:1-5  2016-04-24  전용표 목사 
154 [04-17] 사사기 강해2. 단지파의 선택 사사기 18:1-31  2016-04-17  전용표 목사 
153 [04-10] 사사기 강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듣기) 사사기 17:1-6  2016-04-10  전용표 목사 
152 사사기강해21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삼손 (듣기) 사사기 16:21~31(구약 390)  2016-09-11  전용표 목사 
151 사사기강해20 치명적 약점에 발목잡힌 삼손 (듣기) 사사기 16:1~22(구약 388)  2016-09-04  전용표 목사 
150 사사기강해18 삼손의 외로운 투쟁(듣기) 사사기 15:1~13(구약 386)  2016-08-21  전용표 목사 
149 사사기강해19 라맛레히가 엔학고레로 (듣기) 사사기 15:14~20(구약 388)  2016-08-28  전용표 목사 
148 사사기강해16 위험한 곡예를 일삼는 삼손 사사기 14:1~18(구약 383)  2016-08-07  전용표 목사 
147 사사기강해17 꿀에 취해 실패할지라도 (듣기) 사사기 14:10~20(구약 386)  2016-08-14  전용표 목사 
146 사사기강해15 특권인가 사명인가 (듣기) 사사기 12:8-15  2016-07-31  전용표 목사 
» 사사기강해14 암흑의 시대 분열의 시대 (듣기) 사사기 12:1-7  2016-07-24  전용표 목사 
144 사사기강해13 입다의 위험한 거래 (듣기) 사사기 11:29-40  2016-07-17  전용표목사 
143 사사기강해12 약하니까 강하다 사사기 11:1-11  2016-07-03  전용표 목사 
142 맥추절 설교 끊어살기의 정수 (듣기) 사사기 11:1-11  2016-07-10  전용표 목사 
141 최선인가? 순종인가? 사무엘상13:8~15  2023-10-01  임재형 목사 
140 우리는 동역자입니다 사도행전11:24~26  2023-10-08  임재형 목사 
139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사도행전 9:31  2024-06-02  임재형 목사